“입양, 걸어다니는 복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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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걸어다니는 복음입니다”
  • 공종은 기자
  • 승인 2010.04.28 13: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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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촌 평성교회 고성제 목사 한혜경 사모 부부
“어느 날 TV를 보았습니다. 이 땅에 버려져 가장 차별받으며 어렵게 살아가는 혼혈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혼혈인에게 얼마나 배타적인지. 우리 부부, 눈물을 글썽이며 마음에 부담감을 느꼈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말했습니다. ‘우리 입양할까?’”


# ‘혼혈아’라는 이유로 입양 거부된 아이 ‘영은’이


평촌 신도시에서 목회하고 있는 고성제 목사. 2년 전, 53세의 조금 이른 나이에 할아버지가 됐다. 이 할아버지 고 목사에겐 지금 10살 된 딸이 있다. 고 목사 부부와는 다르게 이목구비가 또렷한 이국적인 딸아이다.

고 목사는 한국인. 그렇다고 아내인 한혜경 사모(52세)가 외국인인 것도 아니다. 혼혈아를 입양했다. 10년 전. 아득하지만 그날의 감격이 생생하다. 입양이 쉽지 않은 때. 더군다나 외부에 노출된 목회자가, 그것도 혼혈아를 입양했다. ‘영은’이. 이 예쁜 아기를 영은이라고 이름 지었다.

참 어려운 아이였다. 갓난아기 때 다른 집으로 한번 입양됐다가 ‘혼혈아’라는 이유로 거부됐던 아이. 고 목사 부부가 입양한 때는 영은이가 19개월 되던 때. 입양기관에서도 ‘신생아’ 입양을 제안했지만 ‘하나님이 주신 아이’로 여기고 입양을 결정했다. 그렇게 어렵다는 ‘연장아 입양’이었다. 하지만 망설임은 없었다.
‘왜 입양을 결정했는지’를 물었다. “죽어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뭘 하다 왔느냐?’고 물으시면 대답할 게 없을 것 같았다. ‘설교 준비하고 설교 하다가 왔다’고밖에 할 말이 없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하나님 앞에, 자신 앞에 부끄러웠다는 고 목사는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것을 구체화시킨 것이 입양이었다”고 고백했다.

입양을 결정하기 전 교회 수련회에서 가슴을 때린 말씀이 있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는 것”이라는 야고보서의 말씀이었다. 이 말씀이 힘이 됐고 입양을 결정했다.

그 때부터는 둘만의 시간이 되면 입양 이야기만 나누었다고 한다.
“심방을 갈 때도, 같이 차를 타고 어딜 가면서도 입양 이야기만 했습니다. 귀가가 늦어지는 아이들을 기다리면서도 입양 이야기를 나누었고, 한도 끝도 없는 입양 이야기가 시작됐습니다.”
고 목사 부부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잠이 들고 아침을 맞았다.

# 입양은 우리 보다 ‘그 아이의 인생’을 위한 것

이런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입양이 현실로 다가왔다. 그랬다, 입양은 현실이었다. ‘경제적인 부담은 어떡하지?’,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만약에 아이가 방황하고 문제를 일으키면 어떡하지?’ 어느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부담이었다. 고 목사 부부라고 이를 피해가지는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아이의 방황에 대한 두려움. 고 목사 부부는 문제가 있으면 어떡하나 하고 생각하지 말고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라고 말한다.

“정말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입양이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아이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염려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불편함에 불과한 것이지만 그 아이에게는 인생이 걸린 문제입니다. 우리 자신을 위한 그 어떤 염려도 그 아이의 운명이 바뀌어야 한다는 이 사실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습니다.”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행복한 고 목사의 가정. 교인들의 가정을 심방하면서 느낀 것이 ‘행복한 가정이 없다’라는 것이었다. “교인들의 가정과 비교하면 우리 가정은 너무 행복했습니다.”

‘이 행복을 우리만 누리고 말 것인가’를 고민했다. 부부가 닮았기 때문일까. ‘우리들만을 위한 행복이 아니다. 이 행복을 누군가와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결론에 함께 도달했다.

고 목사 부부. 이미 두 아이를 잘 길러냈다. 하지만 두 아이를 기르고 나니까 후회가 많았단다.

“‘이제 아이를 기르는 것이 뭔지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이 기르는 것에 대한 노하우가 생겼는데, 더 이상 이 노하우를 어디다 써먹을 데가 없더라구요. 참 아쉬웠습니다.”

두 아이를 잘 길러냈던 노하우. 고 목사 부부만의 노하우, 어디다 써야 했다. 이런 부모를 만난 영은이는 너무 행복한 아이다.

# “내 인생에 제일 잘 한 일이 입양입니 다”

반듯한 목회자. 두 딸의 아버지. 부족할 것 없던 고 목사가 왜 입양을 선택했을까. “입양은 걸어 다니는 복음입니다.” ‘입양이 뭐하고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서슴없이 “복음”이라고 대답했다.

“내가 전했던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복음이 입양을 통해 구체적으로 나타났습니다. 내가 어떤 과정을 통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게 됐는지에 대한 실제를 경험하는 행위입니다.”

영은이를 입양한 고 목사. 어찌 기쁜 일만 있었겠는가. “마음이 아팠던 것은 아이에게 엄마의 가슴을 느껴보라고 가슴을 열어주어도 아이는 엄마의 가슴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몰랐습니다. 아무도 가슴을 열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엄마에 대한 기억이 그랬는데 아빠는 어땠겠는가.

“아빠는 아이의 마음에 아예 없는 존재였습니다. 아빠는 본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는 그런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아빠를 얼마나 구박했는지 모릅니다.”

입양 후 1년 동안 영은이와 한 자리에 눕지를 못했다. 이날만을 기다렸는데 발치에서 잘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는지. 밤마다 꿈꾸었지만, 화도 났지만 화내지 않았다. 늘 웃었다. 영은이와 눈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눈길이 마주치면 무조건 환하게 웃었다.

이러기를 1년. 어느 날 영은이가 “아빠!” 하면서 고 목사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그냥 눈물이 났습니다. 너무 감격스러웠습니다.” 다른 말은 필요 없었다. 자기와는 너무 다르게 생긴 고 목사를 아빠라고 부르는 영은이가 너무 고맙고 예뻤다.

고 목사는 이 상황을 뒤집으면 바로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모습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도 이와 같이 시간이 걸리는 것이구나. 내 결심이나 내 노력이 아니었구나. 하나님께서 나를 자녀로 입양하시고는 이처럼 한없이 기다리며, 미소로, 사랑으로 부으셨기 때문이구나.’ 고 목사는 입양을 한 후 이런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한혜경 사모. 고 목사가 입양을 결정했다고 해도, 아이를 기르는 것은 고스란히 여자의 몫. 청천벽력일 수 있었다. 하지만 한혜경 사모도 고 목사를 너무 닮았다. “교회가 달리보이더라”는 말로 입양의 상황을 설명했다. “힘들었다”는 말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던 기자의 허를 찔렀다.

“영은이를 입양하고 나니 성도를 보는 눈, 교회를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시작은 영은이로부터였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사랑을 주셨는지를 체험으로 알게 됐습니다.”

고 목사도 “내 설교가 변했다”고 고백했다. “성도들이 어떤 행동을 해도 밉게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영은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됐고, 성도들을 위해 축복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입양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열린 거죠.”

고 목사 부부는 입양을 통해 오히려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며 신나했다.

“내 인생에 제일 잘 한 일이 입양입니다. 영은이가 ‘행복하다’는 고백을 할 때, ‘너무 좋다’는 고백을 할 때의 그 짜릿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인생에 있어 제일 잘 한 일이 입양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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