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달라고 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경쟁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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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달라고 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경쟁력입니다”
  • 최창민 기자
  • 승인 2010.04.21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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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인과 함께 하는 기독교 사회적 기업 ‘동천’


서울시 노원구 하계동에는 아주 특별한 모자공장이 있다. 직원 63명 중 40명이 장애를 안고 있는 사회적 기업 ‘동천’이 바로 그곳이다. 동천은 단지 장애인이 많아서 특별한 것이 아니다. 장애를 부각시키지 않는 철학, 가족과 같은 조직문화, 자활과 변화를 이끄는 회사 덕분에 이곳에 다니는 취업 장애인들은 누구보다 행복하다. 동천모자가 가진 철학과 가치관이 우리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직원 절반 이상이 중증·여성장애인인 동천에서 만든 모자를 많은 유명 브랜드 업체들이 선택한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장애인들이 만들어서 도와주려는 것이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고정관념. 동천모자의 경쟁력은 오히려 장애를 통한 동정심에 의존하지 않는 것에 있다.

성선경 대표(70)는 “도와달라고 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경쟁력”이라고 말한다. 동천모자는 일반 업체들과 공정한 경쟁에서 당당히 이기고 자립했다. 그 비결에 대해 성 대표는 “장애인들이 오히려 더욱 꼼꼼하고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쓴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장애인들은 품질이 낮은 제품을 만든다는 것은 잘못된 선입견”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런 철학을 갖게 된 것은 아니다. 초창기 동천모자는 저가상품 시장을 공략했다. 장애인들이 만드는 모자라는 점을 의식해 소극적인 경영전략을 짰던 것이다. 그러나 3년이 지나도록 적자를 면하지 못하자 모자 사업을 중단할 생각까지 했다.

그때 한 직원이 모자의 고급화를 제안했다. 초기에는 비용이 많이 들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고급화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것. 성선경 대표는 “숫자는 작지만 역으로 고급 모자를 만들어보기로 했다”며 “그 후부터 여기저기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회사가 활기를 띄었다”고 말했다.

고급화 전략을 선택하면서 대기업 공모에서도 샘플 디자인이 당당히 선택되는 등 점차 수주가 늘어났다. 지금은 디자이너도 채용했고 샘플 모자 기술자도 고용했다. 현재 동천은 EXR, HEAD, CONVERSE, RAPIDO 등 유명 브랜드와 거래하고 있다. 또 서울시, 우체국, 한국전력 등 공공기관 및 기업과도 계약을 체결했다. 몇몇 대기업은 나중에서야 장애인들이 만든 모자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고 한다. 일반기업과 경쟁해서 당당히 이긴 것이다.

이 같은 성공을 바탕으로 최근에는 재생 카트리지 사업으로 범위를 넓혔다. 모자 사업의 특성상 가을, 겨울 등 비수기에 재정 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대책인 것이다. 지난해에는 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도 생산설비에 집중 투자해 매출액도 신장했다. 향후 화이트보드, 게시판 등의 사업에도 진출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동천은 지금껏 노사 갈등도 없었다. 이윤추구, 경쟁보다는 함께 살아나는 한 가족과 같은 조직문화 때문이다. 장애인들을 위해 설립된 회사인 만큼 모든 시스템과 시설도 그들에 맞춰져 있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걱정, 고민도 함께 나누며 돌보고 있다. 가족도 해결해주지 못하는 문제를 직업재활 훈련을 통해 해결하고 있는 것이다.

“똑똑하고 좋은 학벌을 가진 건강한 사람들은 취직을 할 수 있지만, 중증 장애인, 여성 장애인들은 직장을 갖기도 어렵고, 애써 취업해도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동천모자가 만들어진 배경에는 장애인 학교인 동천학교가 있었다. 30년 째 동천학교에서 일했던 성선경 대표는 졸업생들이 마땅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하다가 모자 사업을 생각했다. 단순 작업에서 고도의 집중력을 보이는 지적장애인들의 특성을 활용해 모자를 만들자는 생각은 정확히 적중했다.

성 대표는 사회적 기업 동천이 이들이 새로운 삶과 꿈을 설계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취업 장애인들이 처음 1,2년은 눈에 띄는 변화를 느끼지 못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엄청난 변화가 온다”며 “소외되고 위축된 삶에서 자신감을 회복해 일반인과 다를 게 없는 삶을 살게 된다”고 말했다.

폐쇄적인 삶을 살던 장애인들이 결혼도 하고, 애인도 만나고, 취미생활도 갖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삶의 희망을 찾게 되고 생활비를 벌어 저축해 재산을 축적하면서 도움 없이 자립할 수 있게 되는 것이 가장 큰 변화다.

성 대표는 “그냥 놔두면 나라에서 도움 받으며 살 수밖에 없는데, 도움 없이 세금을 내는 국민으로 바뀌는 것”이라며 “사회적 기업의 성공은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매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성선경 대표는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기도는 내 생활의 일부다. 동천모자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섬세하신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누가 봐도 불가능한 일”이라며 “끊임 없이 모자 주문이 들어오고 회사가 하루하루 발전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고백했다.

성 대표는 또 “하나님께서 장애인을 많이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하나님은 선한 목적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절대로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도와주시는 분”이라고 말했다.
소망교회를 25년 동안 다녔던 성 대표는 3년 전부터 동천학교 강당에 개척된 이한교회(신기형 목사)를 섬기고 있다.

직장 내 장애인 대부분은 교회에 나가고 있지만 몇몇 친구들을 전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성 대표는 “사회적 기업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소자본으로 시작하기에는 위험부담이 크다. 결국 사회적 기업은 대기업이나 교회에서 할 수 밖에 없다”며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긴 시간과 많은 자본이 투자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장애인들을 배려하는 교회가 많아지고 있고 인식도 많이 달라졌다”며 “일하는 장애인이 많아질 수 있도록 교회가 나서서 사회적 기업을 위한 기도와 함께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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