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세대가 떠나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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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세대가 떠나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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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3.03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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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돈 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은퇴하신 장로님이 얼마 전 소천하셨다. 항상 맨 앞자리에서 부인과 함께 예배를 드리시던 장로님이시다. 흰머리가 잘 어울리셨고 온화한 인상으로 보는 이들에게 은혜를 주시던 분들이다. 두 분은 주일이면 아침 1,2,3부 예배와 오후예배까지 그 자리를 지키며 설교 말씀에 귀를 기울이셨다.

설교가 진행될 때면 펜을 들어 꼬박꼬박 그 내용을 적으시고 진지한 표정으로, 때로는 흐뭇한 표정으로 설교를 동행하시곤 하셨다. 그 연세에도 피곤함을 모르시고 꼿꼿한 자세로 예배를 지키시는 그 분들은 교회의 영적 중심이셨다. 그런데 그 분이 돌아가신 것이다.

재작년 어느 주일에 필자가 주일예배에 설교를 하게 되었다. 협동목사이기에 오후예배 설교는 가끔 했어도 주일예배 설교는 처음이었다.
2부와 3부 예배에서 설교를 하는데 첫 예배 설교를 잘 마치고 마음에 기쁨을 얻고 있었다. 성도들의 반응도 좋았고 설교자인 본인도 흡족했다. 3부 예배에서 설교단에 올라섰다.

그런데 그 장로님 부부가 맨 앞자리에서 볼펜을 손에 쥐고 또 나를 온화한 표정으로 올려다보고 계신 것이 아닌가. 항상 2부 예배를 드리고 있었기 때문에 이 분들이 전 예배에 참석하고 계시다는 것을 그 때까지 몰랐던 것이다.

그 때부터 수백 명이 아니라 이 두 분이 설교하는 내내 마음에 걸렸다. 똑같은 설교를 두 번 듣는 이 분들에게 괜히 죄스러운 마음이 든 것이다. 이러한 마음으로 좀 위축되고 3부 예배 설교가 좀 모자라게 되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럴 일은 아니었다. 말씀을 사모하고 은혜를 사모하는 그분들에게는 들은 설교를 다시 들어도 깨달음이 되고 감동이 되기에 그렇게 앉아 계시는 것인데 혼자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내가 설교할 때만 그러신 것도 아니고 매 주일을 그렇게 보내시는 분들인데 혼자 놀라고 당황한 것이다. 이 일을 겪고 그 분들을 다음 주부터 보니 더욱 감동이 되었다.

신앙생활을 어쩜 저렇게 하실까. 듣고 또 들어도 말씀을 꿀송이처럼 받아들이시는 분들, 만나고 또 만나도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배에 참석하시는 그 분들을 보면서 저런 간절함이 어디 또 있을까 싶은 것이다.
그러시던 장로님이 떠나시고 나니 마음에 드는 생각이 은혜의 세대가 저물고 있구나하는 위기감이었다.
한국 교회가 오늘날 이렇게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그러한 은혜의 세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매일 새벽에 교회로 달려와 기도하고, 주일이면 온전히 하루를 교회에서 보내고, 수요일과 금요일 저녁도 하나님께 드릴 줄 알았던 세대들, 교회가 건축이라도 하면 집을 팔아 바치고 금비녀라도 뽑아서 바치던 그 세대들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있는 것인데 이제 그 분들이 교회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이제 교회는 누가 지킬 것인지.

요즘 목회자들을 만나면 교회에서 일할 사람이 없다는 한탄이 많다. 모든 사람이 바쁘고 분주하여 교회에 봉사하는 사람이 없다. 주부들도 왜 그리 바쁜지 전화 통화 한 번 하기도 어렵다는 한탄도 있다.
금요철야가 어렵다고 해서 저녁기도회로 짧아지고, 주일저녁도 힘들다고 해서 주일오후로 바뀐지가 벌써 오래다. 주일도 오후 4시만 되면 교회의 불이 다 꺼지고 텅빈 것이 한국 교회의 표상을 보는 듯해서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이성적으로는 너무 교회에 오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성도들의 생활이 교회에만 있으면 세상에서 주어진 사명은 어떻게 이루겠는가.

또 교회만 열심하다보면 가정을 돌볼 새도 없을 텐데 걱정이 되기도 했다. 또 믿음 좋다는 분들이 사회생활에서는 적응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을 때면 괜실히 마음에 안타까움이 일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 합리적으로 변한 이 교회가 과거에 비하여 더 좋은 교회가, 아니 하나님 나라에 가까운 교회가 된 것일까. 교회를 떠난 그들이 세상에서 바른 기독교인으로서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이렇게 변한 교회에 대해서 한국 사회는 좀 더 존경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을까. 사랑하는 장로님의 소천으로 마주하는 한국 교회의 현실에서 좀 무거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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