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관과 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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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관과 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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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2.1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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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찬 목사<백석신학교 학장>


인간은 누구나 “내일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미래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이 미래관을 크게 둘로 나눌수 있다. 하나는 비관론이요, 다른 하나는 낙관론이다. 비관론은 날이 갈수록 점점 장래가 암담하여 결국에는 멸망한다는 관점이요, 낙관론은 날이 갈수록 점점 좋아져서 결국에는 회복되고 더 좋은 세계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비관이 잉태하면 절망을 낳고, 절망이 장성하면 죽음을 가져온다. 그래서 키에케골 학자는 “절망은 곧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까지 하였다. 반대로 낙관이 잉태하면 소망을 낳고, 소망이 장성하면 큰 비전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어떤 경제학자는 한때 한국 경제가 살아나면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어나는 것”과 같다고 비관적으로 말했다. 그러나 한국경제는 어려워도 세계에서 가장 빨리 경제불황을 극복해가고 있고, 오히려 불황극복의 원인을 다른 나라에서 배우러 오고 있다. 이제 G20의 주도국이 되었다.

지나친 낙관은 방심과 타락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친 비관은 죽음과 멸망을 가져오고 만다. 경제뿐 아니라 인생관, 국가관, 미래관등 우리는 많은 시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중요한 것은 현실을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시각을 가지고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은 장래의 사람의 운명, 가정의 운명, 국가의 운명과 신앙인의 최후까지 결정짓는 요인이 된다. 깁슨이 쓴 ‘로마의 흥망성쇠’라는 책을 보면 어떤 위기를 맞이했을 때 비관적으로 대응한 민족과 나라들은 지구상에서 사라져갔고, 긍정적으로 대응한 민족과 나라들은 살아남아 새로운 세계를 건설했다는 결론을 얻었다.


창세기에 나타난 창조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실 때의 두 용어가 특징적이다. 하나는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창1:5)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1:4)”이다. 6일간의 창조기간동안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었다고 날수의 관점에 절대 긍정을 말씀하고 있다. 저녁이 되었다가 아침이 되는 것이 첫째 날이요, 마지막 날이다.

지금 나의 당한 현실과 교회 상황과 국가형편이 저녁 같아도 아침이 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다. 하나님은 모든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시지 않고, 절대 낙관적으로 보셨다.

우리의 미래에 대한 절망하는 비관 눈을, 하나님의 미래에 대한 소망의 낙관 눈으로 개안 수술을 한번 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의 미래는 인간에 의해 결정되어지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에 의해 결정지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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