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35강) 철저한 순종과 헌신의 아름다운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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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35강) 철저한 순종과 헌신의 아름다운 열매
  • 승인 2009.08.27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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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선교사 파송




최초의 이방인 교회인 안디옥 교회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지도자들로 말미암아 풍성한 유익을 얻고 있었다. 사도행전 13장 1절에 언급된 다섯 명의 지도자는 비록 다른 기능을 갖고 있었다 할지라도 여전히 그들 사이의 공통분모는 그리스도에 대한 강한 믿음이었다.

먼저 선지자에 대해서는, 구약의 선지자들이 경험한 신령한 영감의 은사는(신 18:18-20; 벧후 1:21) 신약에서도 경험되었다(행 2:17-18; 고전 14:29-32; 엡 3:5). 선지자들은 사도 바울이 제시하는 목록에서도 사도 다음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전 12:28-29; 엡 2:20; 4:11). 이 교회의 실질적 지도자인 바나바는 예루살렘 교회의 파송을 받고 안디옥으로 내려왔다가(행 11:22), 부조를 갖고 예루살렘 교회로 되돌아왔다(행 12:25).

이처럼 그는 안디옥 교회에서 인정을 받는 지도자였다.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은 그 이름을 놓고 볼 때 유대적 배경을 가졌던 것으로 보이며, ‘니게르’(라틴어로는 ‘검은’, black)라는 단어를 볼 때는 북아프리카 출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구레네 사람 루기오는 라틴식 이름이다. 안디옥에 오게 된 두 번째 그룹의 전도자들 가운데 일부는 리비아의 수도 구레네 출신이었다(행 11:20; 6:9). 마나엔은 히브리어로는 ‘메나헴’이다. 헤롯 안디바의 젖동생으로 왕궁에서 자라난 유대 귀족이었다.

이들의 명단은 아마도 그들이 교회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순서에 따라 기록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이 목록 중 제일 먼저 등장하는 바나바는 사실상 안디옥 교회의 성장에 있어 매우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했던 지도자로서, 구태여 오늘날로 말하자면 한 지역교회를 대표하는 ‘담임 목사’ 혹은 일명 ‘당회장 목사’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 교회를 대표할만한 그러한 지도급 인사가 성령 하나님께서 명하시자 선교사로 파송되어 갔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교훈을 오늘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사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교회에서 선교사로 파송되어 나가는 사람은 담임 목사가 아니다. 대개는 선교사 후보생을 교회가 선발하여 훈련시켜 파송하는 것이다. 그리고 담임 목사들은 자신의 교회가 파송한 선교사들이 사역하는 곳을 기회를 얻어 방문하고 격려할 뿐이다. 그런데 초대교회 중 하나인 안디옥 교회의 상황은 오늘 우리들의 상황과는 전혀 달랐다.

즉 담임 목사에 해당하는 지도자가 성령님이 명하시자 기꺼이 선교사로 파송되어 나가 온갖 고난과 역경을 흔연히 감당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철저한 순종과 헌신이 있었기에 초대교회는 날마다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오늘날 한국의 교회에서 왜 초대교회만큼의 성장과 부흥이 발견되지 않는가? 그 중 한 이유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보여준 그만큼의 순종과 헌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최초의 기독교 선교사로 교회의 파송을 받은 바나바와 사울은 이제 이방인들에게 나아가 복음을 선포하게 되었다. 그런데 소위 바울의 제 1차 선교여행은 주의 깊은 계획의 결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지도자들이 예배하던 중 성령 하나님의 주도적인 역사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다(행 13:4). 비록 안디옥 교회가 그들을 선교사로 파송을 했지만, 그것은 애초부터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그러면 바나바와 바울은 제 1차 선교여행 때 왜 갈라디아 지방으로 갔을까? 첫째, 성령 하나님이 그들을 인도하였다. 둘째, 그들은 소식을 전달하는 데 사용되는 로마 제국의 통행로를 따라 갔다. 이것은 그들의 여행을 쉽고도 편안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알다시피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속담처럼 군사적 통치를 위해 잘 만들어진 도로를 통하여 두 사도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고 나아갔던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로마의 문명은 결국 복음 전파를 위한 쓸모있는 도구의 하나였던 것이다.

셋째, 그들은 가능한 많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인구가 집중된 문화의 중심지, 즉 도시들을 방문했다(참고, 롬 15:19). 이것은 2차, 3차 선교여행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기 위한 실질적 동기가 그 이면에 깔려 있었다.

넷째, 그들은 회당이 있는 도시들을 방문했는데, 이는 그곳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기를 기대하는 마음에서, 그리고 그들이 복음을 모든 이에게 전하는 것을  도와주리라는 기대에서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도들의 기대와는 달리 유대인들은 오히려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는 사도들을 미워하고 시기하여 온갖 핍박을 가하였다. 그리하여 결국 사도들은 유대인들에게 먼저 복음을 증거하다가 그들이 거절할 때 이방인들에게 나아가 복음을 전파하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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