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21강) 고난을 통해 얻게 된 위대한 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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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21강) 고난을 통해 얻게 된 위대한 결실
  • 승인 2009.05.1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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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지는 하나님의 교회




스데반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고, 메시야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 스데반의 말(행 7:56)은 공회 앞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과 유사하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막 14:62, 마 26:64; 눅 22:69). 스데반의 환상은 예수님의 주장을 지지했고, 신성모독 죄로 주님을 죽인 유대 지도자들을 격노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스데반의 말을 참지 못했고, 그리하여 돌로 쳐 죽이고 말았다.

스데반의 죽음은 그 죽음을 지켜보았던 사울 바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후에 바울은 세계적으로 역사적으로 가장 위대한 선교사가 되었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비록 스데반은 일찍 죽었지만 그는 바울과 같은 위대한 선교사를 낳게 하는 한 알의 밀알이 되었던 것이다.

스데반이 죽을 때 한 말은 십자가상에서 예수님이 한 말씀과 매우 유사했다(눅 23:34).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님과 같이 고난 받는 것을 기뻐했는데, 이는 그 이름을 위해서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김 받았다고 스스로 생각했기 때문이다(5:41). 스데반은 주님처럼 고난 받고자 했으며, 심지어 그를 죽이는 살인자들을 위해 용서를 구하기까지 했다(행 7:60). 성령 또한 스데반이 원수들을 사랑한 것처럼 행동하도록 우리를 도와줄 것이다.

성전과 율법을 무시하여 신성모독 죄로 처형된 스데반으로 말미암아 초대교회에는 큰 박해가 발생하였다. 그리하여 예루살렘의 성도들은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사도”들은 박해에서 제외되었다는 사실이다(행 8:1). 이것은 아마도 히브리파에 속했던 사도들이 성전과 율법을 존중히 여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반대로 이를 무시했던 헬라파 그리스도인들이 박해의 주요 대상이었을 것이다.

8장 1절부터 12장 25절까지는 교회의 점진적인 확장을 기록하고 있다. 스데반의 순교는 결코 헛되지 않았다. 그의 사후 유대교 지도자들은 이제까지 율법을 지켜왔던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초대교회 성도 가운데서 보다 급진적인 헬라파 유대인들은 핍박을 피해서 예루살렘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세계를 향한 교회선교의 시작이 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알려지지 않은 피난민들은 팔레스타인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여러 동네와 마을 지나가면서 복음을 전파했고, 그리하여 순교자들의 피가 교회의 씨앗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메시지가 오직 유대인들에게만 전달된 것은 아니었다. 누가는 성령의 화목케 하는 능력을 통해서 복음의 장애물들이 어떻게 하나씩 차례대로 무너지게 되었는가를 매우 훌륭하게 보여주고 있다. 헬라파 일곱 지도자 중 하나인 빌립은 멸시 받았던 사마리아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했고, 아프리카 내시를 믿음에 이르도록 이끌었다.

베드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유대인들의 미움의 대상이었던 로마 군대의 장교를 교회 안으로 인도했다. 이처럼 복음은 다메섹, 베니게와 구브로에까지 전파되었고, 수리아의 수도 안디옥은 이방 기독교의 중심지가 되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안디옥이 소아시아와 그리스를 통해서 로마 제국의 수도에까지 이르게 되는 선교사역의 선봉(先鋒)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선교사역은 한 때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도록 선동했던 다소 출시의 사울을 통해서 수행되었는데, 그는 기독교로 개종한 뒤 가장 용감한 전도자가 되었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스데반의 순교 이후 예루살렘 교회는 유대인들로부터 큰 박해를 받게 되었고, 그 결과로 강제로 예루살렘을 떠나 흩어지게 되었다. 이로써 1장 8절의 주님의 지상명령이 성취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박해는 복음전파를 촉진했고, 하나님은 성도들의 고난을 통해서 위대한 결실을 얻게 되었다. 이렇게 볼 때 주의 명령은 교회의 자발적인 계획에 의해서가 아니라, 핍박을 통한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로 성취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예루살렘 교회의 자발적인 전도를 기다리지 않고, 박해란 수단을 통해서 강제로 흩어지게 만듦으로써 복음이 각처로 전파되도록 만드셨다. 만일 그들이 예루살렘이 전부 복음화 된 후에 다른 지방으로 가고자 했다면 이는 그들이 오산이었다.

왜냐하면 사실 지금까지 예루살렘은 여전히 복음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선교와 관련하여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된다.


즉 국내 전도와 해외 선교는 전후(前後)의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함께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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