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84) 악인이 선행의 모델이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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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84) 악인이 선행의 모델이 된 이유
  • 승인 2007.12.3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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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한 청지기 비유: 악인이 선행의 모델이 된 이유




돌아온 탕자의 죄악이 단순히 아직 생존해 있는 부친의 곁을 떠난 것이 아니라 그 재물을 허랑방탕하게 사용한 것, 즉 재물의 낭비라는 점은 그 다음에 이어지는 불의한 청지기 비유(눅 16:1-9)에서도 강조되어 나타난다. 본래 헬라어 본문에서는 장과 절의 구분이 없었으므로, 아마도 저자 누가의 의도에는 재물의 낭비란 주제를 중심으로 이 두 이야기, 즉 탕자의 비유와 불의한 청지기 비유를 한데 묶어 전달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증거로 우선 눅 16:1에 접속사 “또한”(de)이란 단어를 들 수 있고, 두 번째로는 “낭비”(diaskorpizo)란 동일한 단어가 양 쪽 비유에서 함께 사용된 것을 들 수 있다(눅 15:13, 16:1). 아울러 비록 낭비란 단어가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이어지는 부자와 나사로 비유(눅 16:19-31)에 등장하는 부자의 사치스런 생활(“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즐기는” 삶, 눅 16:19) 역시 재물 낭비의 한 증거로서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 누가는 세 개의 연속적인 비유에서 특별히 부유한 자들의 재물 낭비를 거론함으로써, 그 공동체 내의 부자 성도들의 각성을 촉구하려는 의도를 가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증거들은, 특별히 가난한 자에 대한 배려를 강조하는 누가복음에서 부자들의 재물 낭비는 죄악으로 간주될 수 있을 만큼 큰 문제이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불의한 청지기 비유가 재물의 낭비 주제를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비유의 전부는 아니다. 사실 이 비유는 독일 신학자 율리허(Julicher)의 표현 대로, “해석의 십자가”라고 불릴 만큼 이해에 어려움이 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일 터인데, 첫째는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9절의 난해함과, 둘째는 주님이 어찌하여 불한당(不汗黨) 같은 부정직한 청지기를 사용하여 선한 행실의 모델로 삼았느냐? 하는 것이다. 첫 번째 질문과 관련하여, 주님의 이 말씀은 재물에 대한 보편적 가치 평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러하다면, 모든 지상의 재물은 악한 것이 되고 마는데, 그렇다면 구제나 선행을 위한 재물 또한 악한 것이냐는 반론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딤전 6:10(“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을 고려할 때, 재물 그 자체는 가치중립적(value free) 것이로되, 소유자의 사용 방식에 따라 악한 것도 될 수 있고, 선한 것도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비유에서 말하는 불의한 재물이란 재물 자체를 불의한 것으로 규정한 것이 아니라, 비유 내에서 청지기가 자신의 것이 아닌 남(주인)의 재물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두 번째 질문의 취지는, 어떻게 위탁 받은 주인의 재산을 낭비하다가 발각되어 해고 통보를 받은 상태에서(2절) 주인의 채무자들의 빚을 자기 멋대로 탕감해 줌으로써 또 다시 주인의 재산을 낭비한 불의한 청지기를 그의 주인과 주님이 모두 칭찬하며 선행의 모델로 제시하느냐 하는 점이다(8-9절). 여기서 우리는 8절의 칭찬이 청지기 자신에 대한 도덕적 칭찬이 아니라 청지기가 해고 후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취한 행동에 대한 평가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즉 불의한 세상 사람들도 자신의 미래를 그토록 준비하는데, 빛의 아들인 그리스도인은 더더욱 자신의 장래를 더 잘 준비해야 되지 않느냐는 교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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