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서(42)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문명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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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서(42)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문명 차이
  • 승인 2008.02.1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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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블레셋의 문명 차이 : 블레셋 문화와 문명이 훨씬 뛰어남


 



일반적으로 알려지기로는 블레셋 사람들이 히타이트 지역의 철사용을 이스라엘에 소개한 민족으로 이해된다. 이것은 이 당시 블레셋의 문화나 문명의 발전이 이스라엘의 문화나 문명의 발전보다 훨씬 뛰어났음을 말하는 것이다.


19절에 의하면 블레셋 사람들은 자신들만이 만드는 철제 무기를 이스라엘 사람들도 만들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이스라엘 온 땅에 철공이 없었으니’라는 19절의 표현은 이스라엘의 문명이 아직 철제 사용이 소개되지 않았음을 말하며, 20절의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각기 보습이나 삽이나 도끼나 괭이를 벼리려면 블레셋 사람들에게로 내려갔었는데’라는 표현은 문명적으로 이스라엘이 블레셋 보다 못함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21절에 의하면 철제를 사용하더라도 항상 블레셋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함을 의미한다. 19절의 철공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하라쉬’는 그 의미가 인위적으로 무엇을 만드는 모든 사람을 포괄하는 것이다. 따라서 목수, 기술자, 석공, 새기는 자 그리고 만드는 자 등을 모두 포함하는 호칭이다.


특히 21-22절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전쟁 무기는 고사하고 농기구를 만들어 쓸 때에도 항상 블레셋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기 때문에 문명적인 측면에 이 당시 이스라엘은 블레셋에게 종속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예속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그 어떤 희망도 찾을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음을 보여준다.


19절에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기본적인 무기를 엿볼 수 있다. 즉, 창과 칼을 철로 만들 때는 항상 블레셋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아직 이스라엘에서는 병거를 만들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2절을 근거로 비록 이스라엘이 철로 칼이나 창을 만들기는 했지만 이것은 사울과 요나단만 가졌으며, 나머지 병사들은 청동제 칼이나 창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20-21절에서는 이스라엘의 농기구들로 보습, 삽, 도끼, 괭이, 쇠스랑, 쇠채찍 등을 철로 만들었음을 보여준다. 21절의 쇠채찍으로 번역된 것은 히브리어의 ‘다르본’을 번역한 것으로 다르본의 의미는 가축을 모는 채찍을 의미한다. 그런데 쇠채찍으로 번역된 것은 히브리어 다르본에 ‘하찌브’라는 명사가 있기 때문인데 히브리어 ‘하찌브 다르본’은 쇠채찍으로 번역하기 보다는 ‘날카로운 가축을 모는 채찍’(sharpen goad)을 의미한다.


괭이로 번역된 히브리어 원어는 ‘핌 라마하레쇼트’인데 마하레쇼트는 괭이를 뜻하지만 ‘핌’이 무엇을 뜻하는지 불분명하다. 그러나 학자들은 ‘핌’을 땅을 갈아 일으킬 때, 쟁기나 극젱이의 술바닥에 맞추어 끼우는 삽 모양의 쇳조각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핌 라마하레쇼트’는 괭이에 끼우는 쇳조각으로 이해한다. 또한 쇠스랑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원문은 ‘슐로쉬 킬숀’으로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세 가지로 된 쇠스랑’(three-pronged fork)이다.


23절에서 블레셋 군대가 믹마스(Michmash)에 이르렀는데 믹마스는 블레셋 사람들은 군대를 철수시킨 진지(17절)를 지키려고 믹마스와 게바를 가르는 협곡 가장자리에 전초 기지였다.


사무엘상 14장은 요나단이 블레셋을 습격한 것을 기록하고 있다. 이 사건은 특별한 신학적 목적을 기록한 것이다. 즉, 아무리 전략적으로 불리하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도우시면 이스라엘이 승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14:1-5은 앞으로 전개될 사건의 배경을 묘사하고 있다. 즉, 요나단의 행동이 하나님이 도우신 것이며, 전혀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이 행하여 주셨음을 강조하는 부분이다. 따라서 이 부분은 전체 14장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1절의 기록에 의하면 요나단의 전쟁은 계획된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적진을 공격하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요나단은 자신의 계획을 사울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사실 전장에서 이런 일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의 극적인 반전을 통한 승리를 묘사하기 위하여 택한 방법이다.


1절에서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그의 아버지’라는 표현이 함께 쓰인 곳으로 특히 요나단이 사울의 아들임을 분명하게 밝힌 첫 번째 성경의 구절이다. 1절에서 ‘자기의 무기 든 소년’이라는 표현에서 소년이란 히브리어 ‘나아르’는 단순한 소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청년’을 뜻하며, 더 나아가 ‘군인’을 의미한다. 따라서 요나단은 자기의 무기를 든 청년에게 말하였다.


그런데 1절에서 요나단이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로 건너가는 이유가 등장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무기를 든 자’들의 역할은 정보를 수집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6절에 의하면 요나단이 블레셋 진영으로 건너가는 것은 단순한 정보수집 차원 이상의 일을 위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사무엘상 14:1-5을 구조적으로 살펴보면 14:1과 6절이 연결되며, 2-5절은 중간에 삽입된 내용이다. 내용상으로 보면 1절의 요나단이 블레셋 진영으로 건너가고자 결심한 것과 6절의 무기든 자들에게 요나단이 한 말이 연결된다.


2절은 당시 사울이 기브아 근처 미그론에 600여 명의 군대와 함께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미그론을 고유명사로 이해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미그론’을 일반명사로 이해하여 타작마당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따라서 2절의 의미는 사울이 기브아 근처 타작마당에 600여 명의 군대와 함께 있었다는 뜻이며, 이 타작마당은 군대의 진영으로 사용된 것을 의미한다.


사울이 ‘석류나무 아래 머물렀고’라는 표현은 에셀나무 아래(삼상 22:6)나 ‘종려나무 아래’(삿 4:5)와 같이 사법행정적인 중요성을 띠는 곳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울의 군대가 13:2에 의하면 믹마스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울은 기브아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믹마스와 기브아 사이의 거리는 약 6.5km 이내의 거리이다. 따라서 사울은 기브아 근처의 타작마당에 있으며, 사울의 파수꾼들은 믹마스에 위치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16절에 의하면 사울의 파수꾼들이 기브아에 위치하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일부 학자들은 2절의 기브아를 기브아 대신 게바(Geba)로 이해하려는 학자들이 있다. 이렇게 되면, 사울은 게바에 위치하고 있으며, 파수꾼은 기브아 그리고 사울의 나머지 병력은 믹마스에 위치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600명의 군사와 함께 있다는 표현에서 600명은 앞에서 13:2의 2천 명에 비해 매우 적은 수를 나타낸다. 따라서 사울이 매우 적은 수의 군대와 함께 있음을 나타낸다.


3절에 의하면 엘리 제사장 가문이 무너지고 그 뒤를 이어서 이가봇의 형제인 아히둡의 아들이 제사장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 아히야는 이 전쟁에서 사울의 군대 이동에 관한 자문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특히 신탁을 사울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러한 현상은 고대근동의 전쟁과 제사장과의 관계에서 흔히 발견되는 것이다.


4절은 요나단이 블레셋 군대 진영으로 건너가려는 두 지역의 이름이 등장한다. 즉, 보세스(Bozez)와 세네(Senneh)이다. 보세스라는 지명의 의미는 ‘수렁인 곳’(the miry one)이라는 의미이고, 세네는 ‘가시덤불’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요나단이 건너려는 지역이 건너기 매우 어려운 지역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5절의 기록을 통하여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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