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서(29) 왕정정치 개막으로 급변하는 이스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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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서(29) 왕정정치 개막으로 급변하는 이스라엘
  • 승인 2007.10.24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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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진보세력 정치적 갈등 심화




따라서 사무엘상 8:10~17에 기록된 왕의 제도에 관한 것은 왕을 세움으로써 백성들이 입게 되는 여러 가지 불이익을 열거함으로서 백성들의 왕 요구를 약화시키려는 의도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19절에 의하면 백성들은 사무엘의 설득에도 뜻을 굽히지 않고 왕정 제도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이스라엘의 이런 급격한 변화에 대한 거센 반대가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사무엘의 말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왕정의 독재정치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사무엘은 왕정은 강압적인 압수와 착취, 재물의 강탈 등이 왕권의 특징임을 강조했다.



따라서 사무엘상 8:18에서는 “그 날에 너희가 너희 택한 왕을 인하여 부르짖되 그 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지 아니하시리라”고 말했다. 사무엘의 말은 왕정이 형성되면 왕에 의한 전제정치가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사무엘의 태도는 사무엘상 12:2~3의 “누구의 소를 빼앗았느냐 누구의 나귀를 빼앗았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누구의 손에서 받았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라 하니….”라는 말에서도 잘 나타난다.



왕정이 세워지면서 나타나는 뚜렷한 변화는 왕과 백성 사이의 관계 변화이다. 왕과 백성 사이는 계약관계로 변화되었다. 왕국이 형성되면서 백성들의 구성원들이 매우 다양해졌다. 특히 다윗 시대에는 정복 전쟁의 승리 결과 영토가 확장되었다. 이 과정에서 특정 도시에 거주하던 가나안 민족이나 겐 족이나 기브온 족속처럼 자신들의 민족적 정체성을 상실하고 이스라엘의 정치제도 안으로 흡수되는 민족이 생겨났다.



따라서 다양한 민족이 혼합되는 결과를 초래하였고, 이러한 국제화의 결과로 이방민족과 문화의 유입과 함께 솔로몬 시대의 인종적 종교적 다원주의의 원인이 되었다. 이처럼 다민족 왕국으로 발전하는 것은 이스라엘 안에서의 사회 경제 문화 종교 차이를 수반하였다. 이러한 과정에 백성들의 역할은 점점 감소되었다. 군인에 있어서도 전문적인 용병이 고용됨에 따라(그렛 사람과 블렛) 백성들의 역할은 감소되었다. 따라서 왕국에 대한 백성들의 영향력은 점차 감소하였다.



왕국의 형성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가장 큰 변화였다. 왕국의 형성으로 전통적인 정치체제를 지지하는 집단과 새로운 왕정체제를 지지하는 집단 사이의 갈등이 빚어지기 시작하였다. 사무엘을 중심으로 한 수구 보수 세력의 전통적인 체제를 유지하려는 움직임과 새로운 왕권의 형성을 요구하고 이를 지지하는 집단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생겨났다.



사무엘은 왕정제도의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왕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분명히 나타낸다. 그러나 백성의 지지를 받는 신흥 왕권 지지 세력은 주변 국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강력하고 중앙집권화 된 절대 왕권이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따라서 사무엘의 왕권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와 협박 혹은 회유에도 불구하고 왕정제도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고대 이스라엘의 왕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강화되고 중앙집권화 되었는가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왕권의 형성이 전통적인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킨 것은 사실이었다.



사무엘상 8:19~22에서는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백성들의 완강한 요구를 들어주라고 말씀하시며, 이를 백성들에게 선포함에 따라 백성들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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