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서(17) 어린 사무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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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서(17) 어린 사무엘(3)
  • 승인 2007.07.16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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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사무엘(3)  하나님의 음성을 깨닫지 못한 사무엘


 

이상을 뜻하는 히브리어는 ‘하존’이다. 즉, 하나님의 예언을 뜻한다.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는 말의 의미는 ‘예언이 선포되지 않았다’ 혹은 ‘예언이 널리 퍼지지 않았다’(에인 하존 니프라츠)라는 뜻이다.




2절은 엘리의 신체적인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즉,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는 ‘그의 눈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였다’(에이나브 헤헬루 케호트)이다.




이처럼 1-2절에서 사무엘이 성전에 머물러 있던 시대의 종교적 상황이 체험적인 신앙의 시대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즉, 하나님과 만나지 못했던 시대임을 말해준다.




3절은 여호와의 등불이 아직 꺼지지 않았을 때 사무엘이 여호와의 전(헤이칼 아도나이)에 누워 있었다. 아직 사무엘이 제사장이 아니며 더구나 대제사장이 아닌데 어떻게 법궤가 있는 여호와의 전에 누워있었느냐 하는 질문이 제기된다. 내용상 아직 사무엘은 제사장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다. 특히 사무엘은 제사장 가문의 후손이 아니다. 그런 사무엘이 어떻게 성소에 거하게 되었는가 하는 질문은 신학적으로 매우 어려운 질문이고, 시대착오적인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성서 내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다음의 이유로 설명할 수 있다. 엘리 제사장이 성소 근처에서 잠을 잔 것과 사무엘이 법궤가 있는 성소에서 잠을 자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함이다. 출애굽기 25:22에 의하면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성서 내적인 기록과 조화를 위하여 사무엘이 성소에서 잔 것으로 기록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4절은 하나님을 신인동형동성론적으로 묘사하여 하나님이 사람처럼 사무엘을 부르신다. 그러나 5절에 의하면 사무엘은 이 부름이 하나님의 부르심인 줄 깨닫지 못하여 엘리에게로 달려간다. 이 구절을 통하여 초기 사무엘은 아직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할 줄 몰랐음을 보여준다.




6-7절에서는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신다. 그러나 7절처럼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이기 때문에 사무엘은 하나님의 음성을 깨닫지 못하였다. 이 7절은 앞의 3절에서 언급했던 문제를 다시 야기한다. 즉, 어떻게 여호와도 모르던 자가 하나님의 성소에서 잠을 잘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8절에서는 세번째로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셨을 때 엘리가 이 부름이 하나님의 부르심인 줄 깨닫고 다시 네번째 하나님이 부르실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설명한다. 즉, 사무엘이 네번째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면 하나님께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말 할 것을 가르친다.




10-14절에서는 사무엘이 엘리가 가르쳐 준 방식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즉, 하나님의 신탁이 사무엘에게 임한 것이다. 신탁의 핵심은 엘리 가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이야기이다. 심판의 내용은 13절에 의하면 영원히 심판하시겠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엘리가 아는 죄, 즉 엘리의 두 아들이 지은 죄를 의미한다. 즉, 하나님의 제사를 업신여긴 죄이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은 엘리의 두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하나님이 엘리의 집에 내리는 저주는 엘리 가문의 속죄를 받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즉, 죄 사함의 은총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무엘상 3:10-14은 1절에서 엘리에게 하나님의 음성이나 이상이 보이지 않던 시대에 사무엘에게 하나님의 신탁이 임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대언자의 역할이 엘리에서 사무엘로 옮겨가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하나님의 계시가 사무엘에게 임하였다는 것은 사무엘의 지위를 예언자와 같은 지위로 높여주는 것을 의미한다.




사무엘상 3:15-21은 엘리 제사장이 사무엘에게 하나님의 신탁을 묻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사무엘은 엘리 가문에 대한 부정적인 신탁이었기 때문에 이것을 엘리에게 감히 말할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그러나 엘리는 사무엘에게 간절히 부탁하여 하나님의 신탁이 무엇인지를 듣게 된다.




15절의 ‘여호와의 집의 문을 열었으나’라는 표현은 어린 사무엘이 엘리 가문의 몰락이라는 엄청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일상적인 일을 계속하였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사무엘은 하나님의 이상을 엘리에게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전하지 않았다.




16절에서 엘리는 사무엘에게 간곡하게 부탁한다. 본문에서 사무엘을 ‘내 아들’(브니)이라고 부르는 것은 혈통적인 아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아모스 7:14의 ‘선지자의 아들’(벤 나비)의 ‘벤’과 같은 의미이다. 이 경우 히브리어 ‘벤’은 아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에 소속된’의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아모스 7:14의 ‘선지자의 아들’이란 ‘선지자에 속한 자’라는 뜻이다. 이와 같이 엘 리가 사무엘을 ‘내 아들’(브니)이라고 부른 것은 ‘나에게 속한 자여’라는 의미이지 혈통적인 아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17절에 의하면 엘리는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하신 말씀을 정확히 알고 싶었다. 따라서 숨기면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벌을 내리시기를 원한다는 말을 한다. 17절의 ‘하나님이 네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는 표현은 구약성서에 여러 차례 나타나는 표현으로서 저주의 맹세 어구이다. 사무엘상 3:17 뿐만 아니라 룻기 1:17과 사무엘상 14:44, 20:13에서 같은 표현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엘리의 말을 들은 사무엘은 자신이 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속일 수 없었다. 그 결과 18절에서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말한 것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전달하였다.


 


사무엘상 3:19-4:1a은 사무엘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결론 부분에 해당한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처음으로 계시를 들려주신 이후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임한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져 사무엘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선지자로 인정받았음을 보여준다.




19절은 사무엘이 선포한 하나님의 계시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고 말함으로써 사무엘은 하나님이 세우신 이스라엘의 예언자임을 강조한다. 신명기 역사가는 사무엘에게 이러한 능력이 있는 것은 하나님이 사무엘과 함께 하셨기 때문, 즉 임마누엘 신앙으로 해석한다(아도나이 하야 이모).




20절은 따라서 온 이스라엘 사무엘이 여호와의 예언자로 세워졌음을 인정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신명기 역사가의 예언과 예언자에 대한 이해를 반영한다. 신명기 역사가에게 있어서 예언은 그것이 성취될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인정받게 되며, 예언자 역시 그가 선포한 말씀이 그대로 되어 질 때 그가 참 예언자임을 인정하였다.




신명기 18: 21-22에 이러한 신명기 역사가의 신학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즉, ‘네가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그 말이 여호와께서 이르신 말씀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라 만일 선지자가 있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제 마음대로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즉, 성취함이 없으면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이 아니라고 이해하였다.




20절에서 전체 이스라엘을 표현할 때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라는 표현은 신명기 역사가가 즐겨 사용하는 표현 가운데 하나이다.




21절은 사무엘상 3:1과 정 반대의 상황이 벌어졌다. 1절에서는 하나님의 이상이 보이지 않았는데 21절에서는 하나님의 이상이 사무엘에게 나타났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사무엘이 새로운 시대를 여는 참 예언자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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