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사회는 원래 냉랭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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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사회는 원래 냉랭한 곳이다
  • 승인 2009.09.30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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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람들은 사회를 바라보면서 너무 냉랭하다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하루하루 살아간다. 그런가하면 어떤 사람은 교도소로부터 형을 마치고 사회에 나왔다가 다시 범죄를 저지르고 교도소행을 택한다. 사회가 너무 차갑다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디뎠다가 사회가 너무 냉랭하다고 탄식한다. 그러다가 우울증을 앓든지 아니면 더 심한 증상을 얻어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목숨을 끊는 대신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끊는 길을 택한다. 그런 현상을 두고 반사회적 인격 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라고들 말한다.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끊는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연쇄살인을 하되 10여명, 20여명, 혹은 30여명, 혹은 그 이상의 사람들을 죽인다. 아무튼 요즈음 많은 사람들은 사회를 바라보며 찬바람이 세다고 말하며 죽지 못해 살아간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사회를 바라보고 냉랭하다고 탄식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사회를 따뜻하게 하지 못하고 더 냉랭한 사회를 만들며 살아간다. 그저 자신은 사회를 위하여 한일 없이 사회가 너무 냉랭하다고 말하고 불평과 불만을 토하면서 살아간다. 그래서 그 사회를 더욱 차갑게 만들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시각을 바꾸어야 한다. 사회를 바라보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베드로는 물위를 걸으시는 예수님을 보고 자신도 물위를 걸어보고 싶다고 소원했을 때 예수님께서 걸으라고 허락하셨는데 베드로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걷는 동안 바다를 걸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베드로는  바다의 풍랑을 바라보다가 빠지고 말았다(마 14:30).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면 사랑이 들끓는 용광로를 경험할 수가 있다(요 3:16; 롬 8:31-39).

우리는 먼저 예수님 앞에만 나와도 벌써 엄청난 은혜를 받는다. 탕자는 아버지를 향해 발걸음을 돌렸을 때 아버지의 눈에 띠었다. 아버지는 탕자가 돌아올 때 탕자가 자기의 입으로 아버지 앞에 돌아왔다고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아버지는 멀리서 탕자의 발걸음을 보고 아들인 줄 먼저 알아보았다. 성경은 탕자가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고 있을 때”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다”고 말씀한다(눅 15:20). 그저 우리가 예수님에게 돌아만 가도 은혜가 임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다음 차례가 필요하다.

우리가 얼마나 악질적인 인간인지를 고백하는 순서가 필요하다. 탕자는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라고 고백했을 때(눅 15:21) 아버지는 한량없는 은혜를 베풀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탕자에게 입혔고 손에 가락지를 끼웠으며 발에 신을 신겼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았다(눅 15:22-23). 우리가 예수님 앞에 감히 설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해야 한다. 우리는 너무 더러워서 감히 눈을 들어 바라볼 수도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아뢰어야 한다(눅 18:13-14).

백부장은 예수님 앞에서 자신의 형편을 살피고 자신이 예수님 앞에 나아갈 수도 없고 또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실만한 자격도 없다고 고백했다.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라고 말씀드렸다(눅 7:6-7). 이 때 예수님은 군중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고 극찬하셨다(눅 7:9).

우리는 이제부터 예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 우리의 무가치함을 고백하고 계속해서 기도하여 성령의 불덩이가 되어 이 사회를 뜨겁게 만드는 일에 앞장서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얼마 전 태안 앞바다가 기름유출사고를 만났을 때 봉사자들은 바닷가의 기름을 걷어내고 또 기름 묻은 바위를 씻어냈다. 얼마나 흐뭇했는가.

우리는 그리스도 앞에서 자신들을 뜨겁게 만들기 위하여 매일 그리스도의 말씀을 읽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으로부터 힘을 얻고 기도로 힘을 얻어 사회를 뜨겁게 만들고 살만한 사회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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