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영성적 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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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영성적 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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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9.09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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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엽목사<기독교정화운동 대표>


한국 교회에는 현재 네 가지 영성이 있다고 본다.

그 첫째는 극좌적인 입장으로써 이성적 혹은 사회복음주의적 영성이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바 가난한자와 병든 자와 집 없는 자, 혹은 노동자 농민들을 돌보아 주어야 하며 같이 나누라는 이념을 가지고 인권운동, 복지운동, 구제운동 등에 주력하는 영성이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실천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믿고 있다.

둘째는 개혁주의적 영성이다. 성령의 역사와 그 능력과 변화들을 익히 알고 회개운동을 주로 하며 성령의 감동 감화 운동을 주축으로 진행한다. 그러나 정작 성령의 나타남이나 은사 등은 싫어하며 저급한 것으로 취급하며 멀리한다. 성령의 역사는 환영하되 은사주의나 잘못된 이단사이비 운동 등은 경멸의 대상이 된다.


셋째는 말씀적 영성이다. 말씀의 영성은 말씀자체가 능력이며 하나님의 영이라는 신앙이다. 말씀을 생명같이 고집하며 그대로 믿고 진행하고 회개하면 실제로 능력이 나타나며 기적의 역사도 나타난다. 말씀대로 붙잡고 행하는 것이 성령이요 진리라는 것이다.

다음은 오순절적 영성이다. 오순절의 영성은 은사는 강조하며 숭앙하되 은사주의는 아니다. 오순절의 대표적 신학자인 로드만 웰리암스의 조직신학 제3권은 소위 은사론인데 거기에는 은사주의는 없었다. 그 책의 겉면에 은사주의라는 말을 썼지만 아무리 살펴보아도 은사주의는 없었고 은사를 강조한 부분은 많았다. 그리고 이 오순절적 영성에는 한국의 전래적인 부흥운동이 그 주축을 이루었다고 보아야 한다. 부흥운동의 흥왕은 은사의 나타남과 기적의 보이심의 역사에서 그 성패가 갈라짐을 우리는 한국의 부흥사(復興史)에서 익히 인지하는 바이다.

그러면 이 영성들의 지속적인 흥왕의 옳은 길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나는 단호히 계시 실증주의적 영성이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계시 실증주의는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지상에의 개입적 역사가 증명되는 한에서의 영성이라는 말이다. 영성이라는 말들을 아직도 완전하게 정리해서 말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 영성이라는 말을 그리스도의 영성적 인격이라고도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정의한다면 너무도 정적(靜的)정의이다. 영성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결코 정적 관계가 아니다. 살아계신 분과의 관계이기 때문에 동적이어야 하고 관계적이어야 하고 소통적이어야 한다. 질의 응답적이어야 한다.

이것이 영성이다. 우리는 자칫하면 영성을 국어사전에서처럼 어의를 말하기 쉬우나 어의로 표현되는 영성은 영성의 관념적 정의이지 에녹이 한것과 같은 하나님과의 동행적 영성은 아니다.

어쨌든 이런 의미에서 금후의 영성적 방향은 하나님께서 인간사회에 구체적으로 그리고 현재적으로 역사(개입)하시는 현재적 상황성을 전제로 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류의 영성 충만이라는 자의식적 충족에 빠져서 인간적인 거짓 영성에 안주할 수도 있다. 만일 우리가 이 하나님의 객관적 개입 사실의 실증성을 상실하고 영성을 고집할 때에는 필연코 극좌적 영성은 사회주의 운동과 혼동될 것이다.

만일 개혁주의적 영성이 교회를 지배하게 된다면 손발을 묶어놓은 성령운동만 강조되어 자연히 성령운동은 시들어 버릴 것이다.

또한 말씀적 영성운동을 고집한다면 자칫 바리새주의의 외식주의와 형식주의(儀式主義)에 빠져 한국교회는 자기속임의 형식주의 영성에 떨어질 것이다. 그리고 만일 영성이 은사주의에 빠진다면 현실을 외면하는 신비주의와 사이비 신앙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날 것이다.

이와같이 신학적(말씀적) 깊은 분별과 성령님의 자유로운 운동을 보장하는 영성만이 한국 교회가 앞으로 계속 부흥의 축복을 누리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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