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연명치료 중단’ 법 제도 정비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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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연명치료 중단’ 법 제도 정비 시급하다
  • 정재용
  • 승인 2009.06.30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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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문제’ 누구의 의해서도 결정될 수 없어

국내 최초로 존엄사가 시행된 가운데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김 할머니가 자발호흡으로 일주일(6월 30일 현재) 넘게 생명을 이어가고 있어 연명치료 중단의 판단기준을 놓고 큰 논란이 일고 있다.

대법원으로부터 불필요한 연명치료 중단이 허용된 김 할머니의 인공호흡기는 지난 23일 가족들과 의료진들의 입회하에 제거됐다. 이후 서울대학병원에서는 연명치료를 거부한 2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실질적인 존엄사가 벌써부터 자행되고 있어 법조계와 의학계의 관련법과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는 목소리들이 높아지고 있다.

우선 공공연하게 지적되고 있는 것이 ‘과연 존엄사라는 표현이 옳은가’에 대한 논란이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기까지 법원에서는 단 한번도 ‘존엄사’라는 용어가 거론된 적이 없다. 존엄사는 통상적으로 임종단계에 들어선 환자가 인공호흡기나 심폐소생술 등의 연명치료를 받지 않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게 한다는 뜻으로 사용돼왔다.

하지만 이번 사건과 같이 죽음으로 연결되지 않는 결정에서도 존엄사라는 용어가 사용되면서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했을 뿐 아니라 약물투여 등으로 조기 사망에 이르게 하는 안락사도 ‘존엄사’로 해석되는 등 생명경시 현상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 서울대 법의학과 이윤성교수는 “존엄사라는 용어는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고 지적하고 “앞으로는 ‘말기환자에 대한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이라는 객관적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정확한 용어사용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할머니의 연명치료가 중단된 이후 인공호흡기를 떼어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던 연세의료원 측은 인공호흡기 제거 이후에도 생명을 유지하는 환자 가족들로부터 과잉치료였다며 이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더해지면서 또 다른 법정공방에 휘말리게 됐다.

하지만 주치의 박무석교수는 “인공호흡기 제거를 위해 수차례 자발호흡을 시도했으나 불가능했었다”며 “너무 무리하게 자발호흡을 시도하는 경우 무호흡으로 인한 경련 및 추가적인 뇌손상, 사망 위험까지 발생할 수 있었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결국 자발호흡을 위해 인공호흡기를 제거했을 경우 발생되는 문제, 인공호흡기를 통해 생명을 연장했을 경우 모두 병원 측의 책임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 또한 연명치료에 대한 판단 기준이 불분명한데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서울대 내과 허대석교수는 “현대 의학은 연명치료 기술이 발달해서 맹장수술처럼 시술판정을 쉽게 내릴 수 있는 간단한 일이 아니다”며 “만약 응급실에서 연명치료가 무의미한 환자에게 귀가를 추천하면 진료거부가 되고 연명치료를 중단하면 살인죄가 적용되지만 가정에서 사망할 경우 자연사가 된다”며 의학의 본질을 빗겨가고 있는 법의 허점을 지적했다.

이처럼 명확하지 않은 판단 하에 연명치료를 중단하려는 환자들이 늘어가고 있지만 관련법과 제도가 빠른 시일 안에 마련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지금까지 말기암 환자에 대한 사전의료지시서 도입 등이 시행되고 있지만 이마저도 환자 본인의 의사를 100%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학계는 현재 식물인간 상태로 병원에 입원중인 환자가 3천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대학교의 조사에 따르면 환자의 96%가 ‘임종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기를 원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정작 26%의 환자들만이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알고 있고 사전의료지시서에 서명을 하는 것도 대부분 가족 등 대리인인 것으로 드러나 환자의 상태를 알리기를 꺼리는 우리사회 풍토에서는 사전의료지시서가 자리 잡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안양샘병원 박상은원장은 “환자의 상태를 알리는 문화가 서구적이기는 하지만 우리도 바뀌어야 한다”며 “생명의 문제는 환자 본인의 의사가 아니라면 가족, 의사, 판사 어느 누구의 의해서도 다수결로 결정돼서는 안 된다”고 전했다.

이번 논란에서 가장 큰 딜레마에 빠지고 있는 것은 연명치료를 중단하기에 앞서 연명치료가 정말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판단이 환자와 보호자들의 경제력과 결부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명치료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환자 가족들 대부분이 정부지원이 절실한 것으로 나타나 경제력을 배제한 연명치료 중단 결정에 대한 논란은 쉽게 불식되지 않을 것이라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서울대 법의학과 이윤성교수는 “많은 문제점들이 지적되고 있지만 가장 먼저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사형제도도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이 있듯이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에 의학계와 법조계에서 그에 맞는 기준을 세우는 일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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