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미래? 하나님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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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미래? 하나님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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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6.25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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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창목사<서초교회>


미래에 대하여 생각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우선 과거와 현재의 경험에 근거해서 미래를 예측하는 인간 세상의 보편적인 방법이 있다.

과거 경험에 근거해서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경험에 근거하여 통계 자료를 만들고 거기서 나타난 흐름을 분석하여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다.

그런데 경험과 통계와 흐름에 근거하여 미래를 바라보는 방식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지적 판단 능력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니까 그렇게 예측된 미래는 과거나 현재와 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미래이다. 과거의 경험을 통하여 그려보는 미래이기 때문이요, 과거의 사건을 시간적으로 저 앞에다 옮겨 놓은 것과 비슷한 미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새로운 미래는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근본적으로 새로운 미래, 성경 말씀이 전하는 하나님의 미래는 어떤 것인가? 예수님에 대하여 이런 생각을 해보자. 골고다 십자가까지 걸어오신 예수님의 과거 경험들을 다 모아 놓았다고 생각해보자.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잉태될 때부터 아주 곤란한 상황에 놓이셨다. 결혼을 안한 처녀가 잉태한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 탄생 직후에 헤롯은 아기 예수를 찾아 죽이려 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태어나자마자 애굽으로 도피하셔야 했다. 예수님의 성장 과정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렇게 행복한 삶을 사신 것은 아니다.

삼십 세 즈음부터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실 때,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았지만 반대와 핍박도 대단했다. 그렇게 삼년 정도 일하시다가 마침내 체포되셨고, 십자가 판결을 받으셨다. 그래서 십자가를 지셨고 조롱과 멸시와 고통 중에 골고다 동산을 오르셨다. 바로 그 골고다까지 걸어오신 예수님의 경험들을 모아서 통계 분석하여 결론을 내리면 그리고 예수님 이전 선지자들이 살아온 경험들을 모아서 미래를 예측하면, 나사렛 예수에게 주어질 것은 절망과 죽음밖에 없었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제자들까지도 그러한 미래 예측에 근거해서 모두 다 도피하고 만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나사렛 예수의 미래는 절망과 죽음이 아니라 부활과 희망으로 다가왔다. 경험적 판단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인간이 꿈 꿀 수 없는 미래가 십자가 건너편에서 나사렛 예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바로 그 예수를 믿는 우리들의 미래에는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성경적인 미래와 종말의 메시지가 되는 것이다. 물론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미래는 그와는 다른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사 십자가를 지게 하신 것은, 하나님 떠난 인간과 세상을 그냥 버려두지 않으시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창조하셨기에 어떻게든 다시 받아들이시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처음에는 ‘하나님의 안 계심’이나 ‘하나님의 무관심’처럼 보였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외치셨다. 하나님의 아들은 그렇게 십자가의 어두움 속으로 버려지셨다.

그리고 나서 사흘째 되는 날 아침에 바로 그 죽음과 무덤 앞에서 이런 일이 이루어져 나타났다. “이전 것은 다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린도후서 5:17).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요한계시록 21:5). 예수께서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이다. 인간들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변화가 일어났다. 가장 비참한 십자가 죽음이 가장 영광스러운 부활 승리로 변하여 나타난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포함한 인간들’의 미래 예측은 십자가와 죽음까지였다. 인생과 역사의 경험 자료들로는 그 이상의 미래 예측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인생과 역사 경험으로 더 이상 앞이 안보일 때는, 인간의 역사 경험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미래를 새롭게 내다보라”는 것이 성경적인 권면이 되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 되신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예측하기 어려운 소용돌이 속을 헤쳐 나가고 있는 중이다. 이런 소용돌이 속을 헤쳐 나가는 중심에 선 기독교인 대통령이 정치적 독선이 아닌 그 유일한 소망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라면, 한국 교회는 마음을 합하여 그를 위하여 열심히 기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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