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신성한 것
상태바
‘생명’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신성한 것
  • 운영자
  • 승인 2009.06.03 1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독교의 생명관은 성서에 근거를 두고 있다. 구약성서에서는 생명을 나타내는 말로 히브리어 ‘하임’과 ‘네페쉬’를 사용하고 있다. 하임은 지상에서의 삶, 즉 죽음에 반대되는 삶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네페쉬는 인간을 활동시키는 생명의 핵심으로써 인간의 존재 전체를 규정하는 생명 그 자체이다.

이것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이해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삶과 죽음은 본래 종교적인 개념으로 이해해야 하는데 인간의 것이 아닌 하나님에게 속해있는 성질의 것이다. 생명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것이라는 구약성서의 견해는 신약성서에도 계승되고 있다.

신약성서는 생명이 육체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으며 종말론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신약의 생명관은 인간의 자연적인 생명을 넘어 참 생명, 즉, 영원한 생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영원한 생명은 바울이 말하는 것처럼 인간존재 전체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기독교는 생명을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으로 지극히 존엄한 것으로 이해한다. 생명은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로 신성하고 거룩한 것이다. 따라서 모든 생명은 존중되어야 하는 절대적인 가치를 가진다.

그래서 생명의 가치는 그 삶의 상태나 완전도에 의거해 평가될 수 없다. 생명은 어떤 상태나 모양을 가지고 있던지 그 가치에 있어서 동일한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생명은 모두 동등한 가치를 가지며 생존을 위한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

하지만 난해한 기독교의 생명이해를 현실의 문제에 적용하는 것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닐 것이다. 인간의 생명에 접근하는 방식과 해석에 대해 한국교회 보수, 진보, 중도적인 입장의 목회자들이 다양한 견해를 피력하는 것은 생명이해의 바탕에 서서 현실의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현상일런지 모른다. 하지만 기독계가 아직 존엄사에 대한 입장이 정리되지 않은 채, 각자의 믿음과 소신에 따라 다양한 주장을 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종합해 보면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신성하고 존엄한 것으로 어떤 경우에도 생명에 대한 경시가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 비가역적 상태에서의 연명치료중단에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프로세스가 반드시 필요하다. 셋째, 환자의 의견은 존중되어져야 하지만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연명치료중단의 요건이 될 수 없다. 넷째, 존엄사에 관한 논의보다는 호스피스나 완화치료, 경제적 부담의 경감 등에 관련된 의료제도의 개선이 먼저다. 다섯째, 죽음이해는 종교, 신앙적 이해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며, 임종전문 간호사 등의 역할이 증대되어야 한다.

여섯째, 환자들의 다양한 케이스에 대응할 수 있는 의사들의 지식과 경험의 재고가 요청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과 존엄사는 우리에게 매우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와 있다. 기독교는 무엇보다도 생명경시 풍조를 경계하고, 최선을 다해 환자의 생명을 살리려고 노력하는 의료진에게 경의를 보내야 한다. 연명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이 호스피스나 통증완화치료, 의료보험제도 등이 완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존엄사라는 명목으로 죽음을 강요당한다면 그 보다 더 큰 불행은 없다.

우리의 가족과 이웃이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호스피스를 비롯한 의료제도와 시설을 완비해야 한다. 존엄한 죽음을 이유로 죽음의 시기를 재촉하는 행위는 있을 수 없다. 환자의 죽을 수 있는 권리의 허용은 환자의 죽어야 할 의무로 전이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자살율, 출생율, 낙태율 등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랭킹에 올라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며, 이는 우리사회에 생명경시의 풍조가 얼마나 편만해 있는가를 반증하는 것이다. 삶과 죽음에 관한 논의에서 ‘무의미한 연명치료’라는 말은 사회진화론적 가치관에 근거한 것으로 생명의 비인간적인 인식을 조장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