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 이유로 죽음의 시기 앞당겨서는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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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사 이유로 죽음의 시기 앞당겨서는 안돼”
  • 이현주
  • 승인 2009.06.02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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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의료원 지난달 30일 죽음학 심포지엄 개최

 

 

대법원의 존엄사 판결 이후 생명경시풍조의 확산이 우려되는 가운데 논란의 중심에 있던 세브란스병원이 “존엄한 죽음을 이유로 죽음의 시기를 재촉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연세의료원 원목실장 조재국교수는 “환자의 죽을 수 있는 권리의 허용은 환자의 죽어야할 의무로 전이될 수 있다”며 “생명경시풍조가 만연한 시대에 존엄사로 인한 생명의 비인간적 인식이 확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연세의료원 원목실과 한국죽음학회가 지난달 30일 은명대강당에서 개최한 죽음학 심포지엄에서는 각 종교별로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분석하고 합의된 존엄사를 위해 체계적인 프로세스를 만들고 의료제도를 개선해 사회적 논란을 최소화하자는 의견들이 제기됐다. 또 단순히 의학적인 차원의 죽음을 넘어 각 종교가 이해하는 죽음의 포괄적인 개념을 정립함으로써 이후 진행될 존엄사 관련 판단에 정확한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세브란스 사건의 경과를 설명한 연대 의대 의료법윤리학과 박형욱교수는 “연명치료에 있어서 가족의 의사는 매우 중요하나 가독의 의사를 환자의 의사와 일치한다고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문제가 된 환자의 경우 호흡이 인공호흡기로 유지되고 있었지만 혈압과 체온 맥박 등 신체활력징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어 생존기간은 더 남아 있었던 것으로 판단, 연명치료가 무의미하다는 단정은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박교수는 “대법원이 제시한 연명치료 중단 요건과 절차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며 “회복 불가능한 사망단계에 대한 개념을 먼저 다듬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병원 윤리위원회를 정비하고 외부인사의 참여를 보장하여 생명을 판단하는 일에 있어서 절차를 투명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죽음학회장인 이화여대 최준식교수도 대법원 판결 이후 찾아올 생명 경시 풍조를 우려했다. 최교수는 “수만명의 말기 환자들이 식물인간 상태에서 연명장치로 생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번 판결이 한국인의 죽음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교수는 “유언장과 의료지시서를 남겨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일이 필요하며 건강과 상관없이 매년 유언장을 새로 작성함으로써 죽음에 대해 유연한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한국사람들에게 죽음은 너무 추상적인 개념으로 남아 있으며 구체적으로 죽음을 대비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이다.
 

최교수는 “당하는 죽음이 아니라 맞이하는 죽음으로 인간의 품위를 지키고 가족과 지인들에게 아름답게 작별하는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진행된 종교별 발표에서는 각 종교에서 죽음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소개됐다. 개신교 입장에서 발제한 원목실장 조재국교수는 “기독교에서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지극히 존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로도 신성하고 거룩하다”고 밝혔다.
 

조교수는 “기독교계 역시 존엄사에 대한 명확한 입장이 정리되지 않았지만 전반적으로는 어떤 경우에도 생명 경시가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견해만은 확실하다”고 설명했다.

 
조교수는 “존엄사에 관한 논의보다는 호스피스나 완화치료, 경제적 부담 경감 등에 대한 의료제도 개선이 먼저”라면서 임종전문 간호사 역할 증대와 환자에 대한 다양한 케이스 확보, 의사의 지식 제고를 요청했다.
 

호스피스 대표로 나선 김분한교수(한양대)도 “연장치료와 죽음에 접근하는 의료진과 호스피스의 사고가 다르다”며 “의학에서는 가능한 모든 의료와 기술을 동원해 연장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만 호스피스는 살고 있는 동안 아름다운 삶의 의미를 찾도록 하는 것에 중요성을 둔다”며 죽음에 대한 해석이 좀 더 포괄적이고 구체화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죽음준비 교육과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제도 마련 ▲임종 전문 간호사 양성 ▲유언장과 의료지시서 작성의 중요성 인식 등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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