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낮은 자 돌보라는 말씀에 순종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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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낮은 자 돌보라는 말씀에 순종할 뿐”
  • 이현주
  • 승인 2009.03.25 15: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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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오레건주에서 교도소 선교하는 유형자선교사

크리스티나의 성경공부 여성재소자 신앙적 변화 유도

10년 째 말씀전파사역 헌신…한국 여성교도소 돕고파


지난 2월 말 청주여자교도소 접견실은 눈물바다가 됐다.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은 한 여성의 갑작스런 방문이 외롭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뎌낸 재소자들의 마음을 녹여버렸기 때문이다. 청주여자교도소 재소자들이 유형자선교사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2007년. 막연히 고국의 재소자들을 위해서도 기도의 문을 열어 놓고 싶다는 마음에서 계획된 만남이었다.

그렇게 처음 얼굴을 보았고 멀리 이국에서 그가 한국의 친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펜팔’과 ‘기도’뿐이었다. 청주에서 만난 7명의 재소자는 유형자선교사의 편지만 손꼽아 기다렸고 모범수에게 주어지는 3개월에 단 한번뿐인 전화통화도 그녀에게 도달했다. 복음을 전하고자 했을 뿐인데, 작은 위로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 했을 뿐인데… 그들은 작은 한 여인을 잊지 못한 채 그리워하고 있었다.


오레곤여성교도소선교회(owprisonministry.org)를 이끌고 있는 유형자선교사(미국명 크리스티나, 갈보리채플 출석)는 사실 평범한 공무원이었다. 주일에만 교회에 다니는 그다지 뜨겁지 않은 평범한 신앙인이었다. 그런 그가 변화된 것은 말씀을 통해서였다. 정신을 바짝 차릴만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성경을 읽던 어느 순간, 깊은 감동과 함께 눈물이 흘러 내렸다.

“말씀을 읽고 있는데 내가 이렇게 살면 안 되겠구나 싶었어요. 구원의 감격이 느껴지고 벅찬 기쁨과 감사를 주체할 수가 없었죠. 그 감동은 전도로 이어졌어요. 매일 전도하지 않으면 죄를 짓는 것 같아 누구라도 5분만 함께 앉아 있게 되면 반드시 말씀을 전했죠.”

말씀으로 변화된 삶은 전도와 기도로 채워졌다. 매일 새벽기도를 드릴 때 그의 입술은 이렇게 하나님께 고백하고 있었다.

“하나님 가난하고 낙심한 자 사회에서 소외된 이웃이나 슬픈 사람을 위해서 살고 싶어요.”

먼저 택하여 쓰시는 하나님은 유선교사를 그냥 두지 않았다. 입술의 고백처럼 유선교사는 우연한 기회에 워싱턴카운티교도소에서 사역하는 한 선교사의 부름을 받았다. 한 남자의 아내로 두 아이의 엄마로 직장생활까지 하면서도 그녀는 교도소 사역에 뛰어들었다. 두려움도 없었다. 구원의 기쁨이 너무 뜨거워 물과 불도 가리지 않고 주님이 부르는 곳으로 달려갈 기세였다.

워싱턴교도소에서 그녀는 일주일에 한번씩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작은 세미나룸을 얻어 ‘크리스티나의 성경공부’라는 이름을 내걸었다. 교회와 팀으로 들어와 사역하는 선교사들도 좀처럼 재소자들의 마음을 얻기 어려운 척박한 환경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작고 낯선 한 동양여인의 성경공부 교실에는 매주 사람들이 늘어나 30명이 앉고 서는 인기 세미나로 자리 잡았다. 성경공부 후에는 주님을 영접하는 기도를 하고 영어와 한국어로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찬송했다.

그런데 워싱턴교소도는 미결수가 모인 곳으로 일종의 구치소에 해당됐다. 형이 확정된 여성 재소자들은 인근 오레건주립교도소로 이관된다. ‘커피 크릭(coffee creek)’이라는 이름을 가진 오레곤 주립여성교도소로 옮긴 재소자들은 크리스티나를 그리워했다. 유형자선교사 역시 그들이 그리웠다. 바쁜 일정을 쪼개 일대일 상담사역을 시작했지만 크리스티나를 원하는 재소자 수는 점점 많아졌다. 결국 유선교사는 교도소측의 허락을 얻어 매주 화요일 채플을 시작했다.

크리스티나 채플의 인기는 점점 높아졌다. 중범죄자, 경범죄자, 중독자 교도소가 모두 따로 분리된 시설에서 3곳 모두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토요일 일주일에 3번 오레건에서 성경공부 모임을 운영하며 복음을 전했고 워싱턴까지 그녀의 사역은 일주일 내내 계속됐다. 하나님의 뜻으로 직장마저 그만두고 교도소 사역에 전념하게 된 유형자선교사는 어떤 비전을 품고 있을까.

“큰 욕심 없어요. 재소자들의 마음이 주안에서 기쁘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또 다시 사회로 돌아갔을 때 주 안에서 잘 살아가도록 기도할 뿐이죠.”

교도소 내 한 채플에 10여명이 모이기도 힘든 여건 속에서 크리스티나의 강의는 늘 만원이었다. 유선교사는 내 모습도 그들처럼 작고 초라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작고 까무잡잡하고 약해보이는 동양 여성이잖아요. 너무 잘나 보이는 백인이었다면 당장에 거부감이 들었겠지만 오히려 연약한 제 모습에 동질감을 느낀 것 같아요.”

그러나 크리스티나의 채플에 사람이 모여든 것은 그의 인간적인 모습 때문은 아니었다. 구원의 감격을 품고 있는 그의 얼굴에서 주님을 만날 수 있고, 자신을 위해 울어줄 수 있는 눈물의 기도에 감동을 받은 것이 더 큰 이유였을 것이다.

3년 전부터 동역자를 만나 현재 오레건여성교도소선교회의 사역에는 15명이 함께 하고 있다. 홀로 일군 선교회가 이제는 비영리단체 승인까지 받았다. 그의 기도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교도소 안에서 뿐 아니라 세상에 다시 돌아와서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굳건한 믿음의 사람을 양육하는 것이 목표기 때문이다.

“출소 후에 갈 곳이 없어 방황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들이 자립할 때까지 머물 수 있는 임시거처를 마련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에요. 그리고 그들에게 일자리도 주고 싶습니다. 베이커리를 만들어 직업훈련을 시키고 자활의 터전을 제공하고 싶은 것이죠.”

사무실을 마련하는 것도 기도제목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벌써 이 일을 이뤄주셨다. 선교센터 역할을 하는 이곳 사무실에서는 출소자들과 모여 기도회를 열기도 한다.

“주님은 단 12명의 제자로 세상을 변화시키셨어요. 저도 재소자 사역을 통해 커피크릭 교도소를 변화시키는 것이 사명이에요.”

미국이 좁은 듯 한국의 여성교도소까지 마음에 품고 있는 유형자선교사는 미국 여성재소자들과 청주여성교도소 재소자들 간 펜팔을 이어주며 기도하고 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재소자들이야말로 이 땅에서 가장 소외된 이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교도소를 드나드는 것이 작은 여성의 몸으로 쉽지 않았으련만 그는 꿋꿋이 10년 째 이 일을 감당하고 있다.

“두렵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낮은 자를 외면치 않으시는 하나님을 알고 나서는 제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게 되더군요. 한국에 와보니 한국에도 버려진 이웃들이 많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웃을 외면하지 마세요. 사랑을 전하는 성도들을 하나님은 찾고 계십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만큼 그들에게 큰 선물이 있을까요. 그저 이 마음 하나면 주님의 부르시는 길로 따라갈 수 있답니다.”

하나님은 매일 매일 우리에게 변화와 섬김의 기회를 주신다고 믿고 있는 유형자선교사는 하나님이 선택하신 그 순간부터 한 번의 거절 없이 순종의 길을 걸어왔다. 그리고 세상의 기준에서 이미 기회를 잃어버린 재소자들에게 하나님의 기회를 전하며 한 사람 한 사람이 ‘제자’로 거듭나길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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