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민족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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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민족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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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6.11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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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근 목사 <이수중앙교회>


우리는 6월에 순국선열들과 민족을 사랑한 신앙의 선배들을 기리면서 성서에 도도히 흐르고 있는 애국심을 배워야겠다. 근대 이태리 통일국가의 초석이 되었던 갈리발리 장군은 “신앙심과 애국심은 같은 밭에서 자라나는 풀이요, 꽃이라” 말했다 한다. 필자가 어려서는 일제시대, 6.25를 겪은 직후라서 그런지, 말끝마다 애국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다. 그런데 지금은 달라졌다. 애국이라면 왠지 저항감이 앞선다. 하지만 자기 민족에 대한 사랑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바다 건너 저 멀리 사는 다른 민족을 사랑할 수가 있겠는가?

그리스도인이 애국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민족을 사랑할 수 있어야 인류도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일본의 우찌무라 간조, 그분은 우리에게 하천풍언 목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분은 우리나라에 와서 일본 사람들이 저지른 만행을 규탄하며 자기 민족의 죄를 속죄하는 마음으로 우리 민족 편에 서 주었다. 그래서 일본의 수구세력에게는 목의 가시처럼 느껴졌던 분이다. 그렇지만 그는 일본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가 죽기 전에 미리 써 놓았다는 그의 묘비를 보면 알 수가 있다.

“I for Japan, Japan for the World. the World for Christ, and all for God."

그는 여기에서 제일 먼저 자기는 일본을 위해서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천풍언 선생이 우리 민족을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 민족 일본을 사랑했기에 가능했다.

바울이 얼마나 동족을 사랑했던가? 동족이 자기를 사랑해서가 아니다. 가는 곳마다 자기의 앞길을 가로막고 한사코 죽이겠다고 대드는 사람들이 유대인들이었다.

생명의 주인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도 동족인 유대인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끝까지 자기 동족인 유대인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는 자기 민족 유대인을 지극히 사랑한 나머지 “내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다 하더라도 내 민족 이스라엘만 구원받을 수 있다면 내가 원하는 바다”고 말했다.

이러한 바울의 고백은 예수님과 그의 관계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사도 바울이 인생을 사는 한 가지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었다. 그런 사람이 예수와 관계가 끊어져버린다면 어떻게 되는가? 그에게서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내 동족을 위하는 일이라면 그 일까지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바울의 애국심과 민족애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것은 예수님에게서 왔다.

그는 민족 사랑을 예수님에게서 배웠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하루 전에 제자들을 이끌고 감람산에 오르셨다. 당신을 배척하고 처참하게 망해버릴 예루살렘도성을 바라보시면서 예수님은 비통해 우셨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이렇게 비통해 하시며, 슬피 우셨다. 예수님은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자였다. 예수님에게서 민족 사랑을 빼버린다면 복음은 빛을 잃고 말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절규하듯 부르짖던 민족 사랑이, 바울의 애듯한 동족애가 자신의 가슴에 파도처럼 밀려와 민족 한 가운데로 강이 되어 흐르게 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에는 국경이 없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국경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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