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없는 척박한 땅, 복음으로 뜨겁게 만들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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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없는 척박한 땅, 복음으로 뜨겁게 만들 터”
  • 이현주
  • 승인 2007.03.21 15: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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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복음화 나서는 길한섭 선교사
 

택시기사에서 하나님의 부르심 받아 선교의 길 나서

어려운 중에도 교민부터 원주민까지 뿌릴 씨앗 많아



하나님이 ‘일꾼’을 찾아 쓰시는 방법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넘어선다.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부름을 받고 뒤이어 순종의 길을 걷게 된다고 말한다. 목회자의 길과는 거리가 멀었던 길한섭선교사도 그 중 한 사람이다. 택시운전을 하며 평범하게 살아오던 그를 하나님이 부르셨다. 그리고 캐나다라는 낯선 땅에 세우셨다. 교포를 위한 선교를 시작으로 캐나다 현지인과 원주민들에 이르기까지 캐나다에서 할 일은 예상보다 많았다. 그리고 지금, 길한섭선교사는 하나님의 부름에 따라 첫 사역을 시작하고 있다.


낯선 캐나다 선교의 시작


그가 캐나다를 찾은 것은 2년 전. 국제 침술사 자격을 취득해 의료선교를 하겠다는 작은 꿈이 있었다. 예장 합동정통 총회의 파송을 받아 뱅쿠버 삼일교회에서 교육목사로 여러가지 준비를 하던 길목사에게 하나님은 의료선교의 길을 열어주지 않으셨다. 다만, 2년 동안 그를 목회자로 무장시키면서 개척의 길을 걸어라 명하셨다. 흔히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기독교를 믿는 나라이고 부유한 나라에서 무슨 선교가 필요하냐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하지만 캐나다는 생각보다 복음에 척박한 땅이었다.

“캐나다 사람들 생활속에서 믿음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 교포들 역시 예수님을 믿지 않고 방황하는 영혼이 많았고 이곳으로 이주해온 중국인과 인도인들에게도 복음은 절실했습니다. 한마디로 영성이 없는 땅이었죠. 저는 이곳에 하나님의 영성을 심는 목회를 하고 싶습니다.”


개척준비를 하는 길한섭목사는 가진 돈도 후원자도 없다. 개척을 위해 건물을 임대해야 하지만 아직 재원마련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미 한국에서도 그는 어려운 목회자 중 한 명이었다.


나는 택시안의 전도자


길목사가 주님을 영접한 때는 1985년. 어린 시절 고향에서 주일학교에 다닌 적이 있지만 서울로 전학을 온 뒤 하나님을 잊고 말았다. 그가 다시 교회를 찾은 것은 85년 아내를 따라서였다. 오랫만에 다시 찾은 교회에서 그는 평안을 느꼈다. 다시 초신자의 길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한 그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교통사고로 인해 38일간 구치소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을 원망하기 쉬운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38일의 시간은 그를 믿음으로 단련시켰다. 찬송과 기도, 그리고 성경봉독으로 수감의 고통을 이겨냈고 짧은 시간, 성경일독을 마칠 수 있었다. 출소 후 청평 한얼산 기도원을 찾은 그는 방언의 은사를 받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다. 그런데 그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마음 문을 열어라”

산을 울리는 큰 음성이었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처음 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그는 분별하지 못했고 후에 담임목사의 설명을 듣고서야 그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던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후 그의 기도는 깊이가 생겼고 더욱 뜨거운 신앙생활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당시 영업용 택시를 운전하던 길선교사는 승객들을 목적지까지 모시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했다. 먼 거리 승객이 타면 오랜 시간 이야기할 수 있다는 생각에 신바람까지 절로 나곤 했다. 어느날, 수원역에서 택시에 탄 한 20대 여성에게 복음을 전했다. 자신이 아는 범위에서 성경에 대해 구원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런데 승차 내내 아무 말이 없던 승객은 내리면서 자신이 여전도사라고 소개했다. 순간, 길선교사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얄팍한 신앙 지식으로 복음을 전한 것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래, 신학을 공부하자. 많이 알아야 복음을 전할 수 있지 않은가.’


처음엔 그저 공부만 하자는 생각에 통신으로 교육받던 그는 철야기도를 통해 주의 종이 될 것을 서원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신학공부를 다시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IMF로 목회도 어려움 겪어


신학공부를 마치고 그는 교회 개척을 위해 가지고 있던 아파트를 전세 놓았다. 그리고 수원에 작은 교회를 얻어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문제는 IMF와 함께 터졌다. 아파트 세입자가 막무가내로 이사를 요구한 것이다. 전세금을 돌려주기 위해선 교회 전세를 빼야만 했다. 집값도 하락했다. 재판을 불사하겠다는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돌려주고 그의 수중에 남은 돈은 5백만 원. 기도로 새 사역을 준비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 때 하나님이 열어 주신 길이 캐나다 선교 사역이었다.

지난 2년 동안 캐나다를 체험한 길한섭목사는 해야 할 많은 일과 선교의 가능성을 체험했다. 우선 교민들의 경우, 한국에서 신앙생활을 잘 하던 사람들도 자신과 잘 맞는 성전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나태한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 서로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부족해 목회자의 관심과 사랑, 그리고 기도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느꼈다. 뱅쿠버에만 7만여 명의 교민이 있다. 길선교사의 1차 선교대상이 바로 이 교민들인 것이다.


그가 꿈꾸는 두 번째 선교는 바로 캐나다 현지인을 복음화 시키는 것.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넘어 뜨거운 복음의 체험을 선물하고 싶다고 말했다.

세 번째는 캐나다 토착 원주민과 제3세계 이주자들에게 하나님을 전하는 일이다. 캐나다 정부는 토착 원주민들에게 충분한 혜택을 주며 사회복지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오히려 경쟁과 일이 필요없는 원주민들은 방황과 타락의 삶을 살고 있다. 한마디로 꿈이 없는 부족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중국인과 인도인들 많아서 이들을 위한 한국교회의 선교도 시급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꼭 중국과 인도에 가지 않아도 이민자를 대상으로 복음을 전할 때, 그들이 다시 본국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믿음의 일꾼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길목사는 확신했다.


캐나다에서는 성전을 짓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최상의 방법은 기존 교회 건물을 매입하는 것이지만 이 또한 막대한 재원을 필요로 한다. 길한섭선교사는 “당장 예배드릴 수 있는 장소만 임대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고 말했다. 요일과 시간 단위로 시설을 임대하는 것을 말한다.

또 개척을 위해서는 성경책과 복음성가집, 교육교재 등도 필요하다. 목회자를 위한 목회도서도 후원받고 싶은 항목 중 하나다. 길선교사는 “하나님이 열어 주신 길이며 반드시 구체적인 계획이 숨어 있을 줄로 믿는다”며 어려운 중에도 희망과 웃음을 잃지 않았다. 교민선교를 시작으로 캐나다에서 전개될 그의 복음사역이 중국과 인도를 돌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전도 동력’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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