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국가관, “악한 통치자에게도 복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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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국가관, “악한 통치자에게도 복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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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11.23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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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환 총장<칼빈대학교 총장>

세상통치를 맡은 통치자는 하나님이 세우셨으므로 그들에게 복종하는 것이 신자의 의무이다. 그러면 복종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악한 통치자에게도 복종해야 하는가? 칼빈은 악한 왕이게도 복종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악한 군주까지도 인간의 죄를 벌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채찍으로 세우셨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범죄 하였을 때 하나님은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의 군대를 보내사 예루살렘을 함락시켰으며, 유대인들에게 바벨론 이방 왕에게도 순종하도록 명령하셨다(겔 29:19-20). 느브갓네살 군대의 침략행위가 결국 하나님을 위하여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복종하라는 것이다. 왕의 권위가 이처럼 하나님의 제정하신 바라면 그 왕의 선악 간에 복종하여야 한다. 만일 통치자가 신자에게 박해를 가할 때, 신자의 반응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칼빈은 박해 중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마음으로 성급한 반항보다 자성할 것을 촉구한다.


그리고 이 문제의 유일한 해결방법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왕들의 마음을 주장하시고 국가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주님의 도움을 간구하는 것이다. 그리하면 하나님은 하나님이 간섭하사 그런 악한 자를 다스려 주실 것이다.


그러나 통치자들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신앙의 자유를 박탈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상숭배를 강요하며 하나님 봉사에 반대되는 일을 시킨다면 어떻게 할까?


그런 때는 그들의 명령을 복종할 수 없다. 왜냐하면 통치자들을 향한 복종은 주 안에서의 복종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뜻을 어긴다면 이미 그들은 위임받은 권위가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권위는 하나님의 절대적 권위에 승복할 때만 인정되는 것이다.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 5:29)고 한 베드로의 고백은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도 적용된다.


이러한 신앙적 박해 속에 있을 때, 혹 길이 있다면 칼빈은 신앙생활을 더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망명’의 길을 권하기도 했다. 망명론을 말함으로써 산상보훈에서 얻은 무저항적 헌신을 권면한다. 어쩌면 칼빈은 그 자신의 망명을 이러한 신학적 결심에서 결행했는지도 모른다.


신앙을 거슬리는 통치자나 부패한 위정자를 항거하는 또 하나의 길의 의회를 통하여 합법적으로 건의하며 견제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칼빈이 옛날 로마의 호민관이나 원로원제도를 머리에 두고 한 말이다. 위정자의 잘못에 대하여 그런 것들을 지적하고 백성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시킬 책임이 있는 직분자들이 만일 그들의 할 일을 다 하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 맡긴 직책을 버린 것이 되며 백성의 자유에 대한 배신이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사명의식을 갖는 크리스찬 정치가들이 많이 배출되는 사회는 축복받은 사회이다.


칼빈의 국가관은 결국 신주권사상의 국가적 적용에 불과하다. 국가의 기초는 하나님이시요, 국가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선포이다. 국가는 교회와 기능과 영역구별은 가능해도 목적분리는 있을 수 없다. 교회는 국가의 양심이요 심장이고, 국가는 교회의 보호자요 봉임자이다. 다 함께 하나님의 주권 아래 신국확장의 동일목적을 위하여 상보관계에 서 있다.


우리 크리스챤의 책임은 위정자들에게 그들의 국민의 통치자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대리자임을 인식시켜 그들의 신부적 사명을 깨닫게 하는 일과 동시에, 국민들에게는 책임성 있는 자유를 사용하되 하나님의 역군으로서 국가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케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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