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재난, 죄의 인과응보적인 결과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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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재난, 죄의 인과응보적인 결과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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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10.19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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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하는가? <하>
 

고영민목사<백석대학교 부총장>


셋째, 조상들이 행했던 선행들은 그 후손에게 보상되어진다.

인과응보의 법칙에 따라 선을 행한 자의 후손에게는 상급과 칭찬이, 악을 행한 자의 후손에게는 형벌과 저주가 임한다는 것이다. 전자의 실예로는 욥과 레갑 족속, 요아스 왕이 그리고 후자의 실예로는 아간과 헤롯 왕가, 에서, 아합, 여호람 등이 소개되고 있다.


넷째, 믿음의 조상이 축복하거나 저주한 것은 후대에 그대로 이루어진다.

이에 대한 성경적 근거로는 창세기 12장 3절(“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이 인용되고 있다. 또한 하나님께서 이미 축복하신 것을 사람이 저주할 수 없으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축복이라고 말하고 있다. 히키 사모는 두번이나 심각한 신경쇠약으로 쓰러졌던 자신의 친정 아버지의 경우를 실예로 들고 있다. 저자는 자신에게도 임하려고 했던 저주의 사슬을 끊어버림으로써 문제를 해결했었음을 간증하고 있다.


다섯째, 모든 형벌과 저주의 배후에는 마귀의 역사가 있고 믿음의 기도로 그것을 중지시킬 수 있다.

저자는 저주의 사건이 있을 때마다 그 배후에 마귀의 세력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고 하나님이나 예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그것을 물리침으로써 정상을 되찾을 수 있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그리고 마귀나 하나님을 마치 면전에서 만난 듯 대화하거나 그 음성을 듣고 있다. 그는 책 말미에 조상의 저주를 끊는 기도문을 싣고 있다.


“지난날 우리 조상들이 무지로 인해서, 호기심 때문에 혹은 목적을 가지고 사단을 섬겼나이다. 이제 이것이 죄라는 사실을 깨닫고 회개하오니 우리 조상들이 주술적 죄악을 지어 주술과 점술이 우리집 가계 혈통을 따라 내려오게 한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대대로 이어져 온 미혹의 영들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지금 떠나갈지어다! 사단아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너를 꾸짖노라. 우리 옛 조상들이 너를 섬김으로 인해서 악한 세력에 눌렸었는데 이제는 너에게 열어놓은 모든 문들을 닫아버리노라….”

셋째로,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사는가?

어느날 예수님과 제자들이 길을 걸어가고 있었을 때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 때 제자들이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라고 물어 보았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고 대답하셨다(요 9:1~12).

당시 유대인들은 인간의 모든 불행과 고통의 원인은 자신이나 조상이 지은 죄에 대한 인과응보적인 결과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아비의 죄를 자식에게 보응하여 삼, 사대에 이르게 한다는 사상이 십계명에 내포되어 있으며(출 20:5) 고통이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로 인하여 온다는 견해는 구약성경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출 34:7, 민 14:18,33, 렘 32:18). 대부분의 랍비들도 고난과 죽음이 범죄의 결과라는 사실에는 생각을 같이 하였다.

그러나 성경은 질병이나 고난이 자신이나 조상의 범죄의 결과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제시하고 있다. 욥의 경우는 그가 하나님을 더욱 분명하게 알도록 하기 위해 질병이 주어졌으며(욥 42:5,6), 바울의 경우는 너무 자고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육체의 가시가 주어졌다(고후 12:7). 나사로의 병 역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주어진 것이었다(요 11:4).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의 일반적인 통념과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이 문제를 설명하셨다. 그는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었다는 말을 전해 들으시고는,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줄 아느냐.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 13:1~5)고 말씀하셨다.

말하자면 그들이 처참하게 죽은 것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예수 십자가의 공로로 저주와 형벌으로부터 자유함 얻어

질병의 원인은 유전자가 자녀들에게 생리적으로 옮겨져

에스겔서(18:20)는 범죄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는데 부모 혹은 본인의 죄책 중 양자 택일을 강요하는 논리의 부당성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요컨데 조상의 범죄가 후손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성경적인 결론을 맺을 수 있다.


첫째, 오직 아담의 범죄만이 후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아담이 범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죽음과 땀의 수고와 해산의 고통을 선고하셨고 땅은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게 되었다. 아담은 인류의 언약적인 대표자였기 때문에 그의 범죄의 결과는 대대로 그 후손들에게 이어지게 되었다.

말하자면 우리들에게 찾아오는 온갖 질병과 재난과 형벌은 우리 조상들의 죄 때문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아담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유전적인 죄 때문이다. “아비의 죄를 삼, 사대에 이르게 한다”는 것은 문자적으로 이해해야할 것이 아니라 죄의 심각성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이해해야만 할 것이다. 만일 후손들에게 아무런 재난이나 고통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조상들이 죄를 짓지 않았다는 것이 될 것이다.

둘째, 조상들의 질병이나 불행은 그 후손들에게 생리적, 환경적인 영향을 미치게 할 수 있다. 오늘날 현대의학은 각종 질병의 유전자가 그 자녀들에게 생리적으로 옮겨진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있다. 예를들면 누군가에게 암이나 심장병, 비만 등이 있다면 그것은 부모나 친척들에게서 비슷한 유전자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폐결핵이나 간 질환 등은 한 집안에서 공동생활을 함으로써 자연적으로 전염되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리고 한 가정의 교육적인 분위기나 신앙적인 상태가 그 자녀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어 그것이 마치 조상들의 죄 때문인 것처럼 오해될 수도 있다.

셋째, 사람들의 질병이나 재난 등은 죄에 대한 인과응보적인 결과만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성도의 믿음을 연단시키거나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도록 하기 위해 온갖 질병이나 재난 등을 허락하실 때가 있다. 인간의 불행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넷째, 인간의 불행이나 저주는 어떤 인간적인 노력에 의해 중지되어질 수 없다. 더욱이 저주를 끊는 기도문을 외운다고 해서 해결되어질 수 없다. 마귀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은 신비적인 오류에 빠져들게 될 위험성이 있다. 믿는 성도는 십자가의 공로로 말미암아 아담의 범죄로 인한 모든 저주와 형벌로부터 완전히 자유함을 얻었다. 이제 우리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면서 그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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