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위기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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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10.1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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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환목사<백석대 교수>


북의 핵실험 강행으로 세상이 온통 난리다. 김대중 대통령에 이어 지금까지 대북 포용정책을 고수하던 노대통령도 이제 포용정책은 어렵다고 선포했다.

이것은 지금까지 정부의 대북정책과 방향의 근본적인 변화를 시사하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국제질서에 도전하는 오만한 북측의 불장난으로 인하여 미국은 유엔을 통한 전면제재와 봉쇄 등 단계별 선택을 정책으로 갖고 있으며 일본은 즉각제재의 단독행사까지 생각하고 있다.

중국도 지금까지의 포용이나 지원정책에서 완전히 돌아서 단호한 반대의사를 표했으며 러시아에서도 이번 핵실험을 무조건 규탄한다며 엄중히 비판하였다.

이제 더 이상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미 바통은 큰 틀로 넘어갔다. 벌써 진보와 보수의 격렬한 대결구도로 들어가 앞날이 험난할 것 같다. 지금까지 핵실험의 경고에도 일관되게 신중론을 펴왔던 정부의 책임론, 포용정책만이 유일한 해결책으로 강변하던 진보계열의 주장들에 대한 보수계열의 책임추궁은 대북정책의 실패로 내각 총사퇴, 비상 안보 내각구성을 촉구하고 있다.

한편 진보단체들은 코너에 몰린 북을 대화로 불러내야 하며 해법으로 대화와 타협, 인도적 지원유지를 주문하였다. 규탄은 하되 신중한 대응을 촉구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 우리 조국의 현실이다. 원래 공산주의는 유물사관이다. 어떤 도의나 양심을 말해도 통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북은 모든 협상과 대화에서 자기 생각과 자기 뜻만 큰 소리로 외쳤고, 우리는 양보하고 들어주는 편이었다.

이제 그 시대는 지나간 것 같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우리가 여기서 대안 없이 진보·보수의 대치나 흑백의 논리로 남남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유익하지 못하다. 이럴 때 나라 살리는 길은 무엇인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공의와 사랑의 통합이다.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우리끼리 싸우면 안된다.

실지의 북측동포는 형제애로 사랑하되 7천만의 민족생명을 볼모로 삼는 김정일이 몰고 올 모험의 파장까지 포용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1보 양보하면 저들은 2보, 3보 밀어 부친다. 포용정책 이후 지금까지가 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요셉은 형들을 용서하고 받아들였으나 형들의 철저한 용서와 회개가 뒤따랐다. 여기에는 위신이나 체면 따위의 가식이 없었다. 공의와 사랑의 동전의 양면이며 이것이 십자가 사랑이며 십자가 문화다. 이것은 오직 한국 교회 몫이다. 에스더의 기도회, 미스바성회, 수문 앞 광장의 말씀잔치 같이 한국교회가 먼저 무릎을 꿇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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