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음서(65) 여인의 향유 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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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음서(65) 여인의 향유 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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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12.15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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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자 구주이신 주님의 죽음준비

김경진 교수<천안대 기독신학대학원>


예수님의 수난은 주님의 말씀으로부터 시작된다(마 26:1-2). 이것은 주님의 죽음과 부활이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이미 작정된 것이고, 따라서 그것을 미리 알고 예언한 주님이 수동적이 아니라 오히려 능동적으로 고난에 참여하심을 나타내 보이고 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의 죽음은 외형적으로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악의적 적대감과 그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한 유대 민중들의 어리석은 반감에 의해 저질러진 일이기는 하지만, 사실은 창세 전에 이미 작정된 하나님의 역사로서, 주님은 이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마치 그것이 신호인 것처럼 주님의 말씀과 함께 산헤드린 공회가 모여 주님을 잡아 죽이려는 음모가 계획되고 진행된다(마 26:3-5). 여기서 마태가 마가복음의 내용을(막 14:1) 확대하여 좀 더 자세히 기록한 것은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는 음모가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시도된 것이며, 그것이 동시에 주님의 수난예언과 구약 예언의 성취임을 보여준다(시 2: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이어 등장하는 여인의 「향유부음 사건」(마 26:6-13)은 다른 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기는 하나(막 14:3-9; 요 12:1-8), 누가복음의 경우는 그 내용이 사뭇 달라서 심지어 다른 사건으로 보기도 하며(눅 7:36-50), 요한복음에서는 그 여인이 마르다와 나사로의 누이인 마리아로 소개된다.

복음서의 사건들이 연대기적으로 배열되지 않았음을 상기할 때 이 사건이 수난 기사에 포함된 것은 주님의 장사(葬事)와의 연계성 때문으로 풀이된다. 사실 주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어 급히 매장됨으로써, 그 시신에 기름을 바르는 적절한 절차가 생략되었다. 그리하여 안식일 다음 날 여자들이 주님의 몸에 향품을 바르려고 아침 일찍이 무덤에 찾아가게 되었던 것이다(막 16:1-2). 이처럼 보통의 장례 절차에서 생략된 기름 부음이 여인의 헌신을 통하여 미리 시행되었기에, 주님은 그 여인의 행위를 크게 칭찬하였던 것이다.

특히 여인이 기름을 주님의 머리에 부은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로써, 구약에 의하면 왕들은 그 머리에 기름 부음 받음으로써 왕으로서 권위를 갖게 되었는데(왕하 9:6), 그렇다면 주님은 죽음과 장사를 통하여 권위를 갖게 될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누가복음 사건은 주님의 발에 향유를 부은 것으로 인해, 장사[葬事]와는 거리감이 있다; 눅 7:38).

그런데 제자들이 여인의 향유 부음을 낭비라고 비난한 것은 왕에 대한 기름 부음과 장사로서의 기름 부음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던 까닭이다. 사실 삼백 데나리온에 달하는 향유의 가치는(막 14:5; 마 26:9) 당시 일당 노동자의 연간 소득에 해당할 만큼 거대한 금액으로서 제자들이 불평이 과도한 것은 아니라고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여인의 행위를 주님이 옹호한 것은 여인의 향유 부음은 그 죽음에 대한 준비이었기 때문이다.

사랑에는 값비싼 희생이 뒤따를 수 있으나, 그것은 언제나 의미 있는 수고인 것이고, 그러한 까닭에 주님은 여인의 행위를 크게 칭찬하며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그가 기념되도록 말씀하였다(마 2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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