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장례식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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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장례식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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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8.09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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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환 목사<천안대 교수>


고인은 1.4 후퇴 때 평양에서 월남한 분이다. 2남 2녀 중 장남으로 두 살 때 뇌성마비로 말을 못하는 장애자로 살았다. 그나마 가정이 풍요로워 서울에서 맹아학교를 다녔고 결혼해 딸도 하나 두었지만 부인과 헤어지고 딸은 고인의 어머니가 키웠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출가한 두 누이동생 외에는 의지할 곳이 없었다. 딸은 둘째 누이동생이 키우게 됐고 동생 2남도 사고로 사망해 졸지에 막연한 신세가 됐다.

필자는 고인의 첫째 매제다. 당시 필자는 장기 군복무를 마치고 시작한 목회 개척기여서 처가에 별다른 관심을 갖지 못했다. 실제 고인과 그 딸은 처제가 책임을 지고 모든 가사를 감당해왔다. 특히 1990년부터 만 15년 넘게 고인을 경기도 과천 소재 구세군 양로원 요양원에 입원시킨 것도 처제가 고인을 돌보며 한 일이다.

그후 필자는 목회에 안정을 찾으면서 고인에게나 처제에게 늘 미안함과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생각을 가지고 죄의식으로 살아왔다. 이러던 차, 고인의 사망 소식은 필자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한 인생의 죽음보다 지금까지 일가친족이 없다고 해서 구세군 요양원에 머물게 하고, 그동안 한번도 찾아보지도 않았으면서 장례식에 참여한다는 양심의 죄책은 더했다.

고민 끝에 후임 목사와 함께 구세군 요양원으로 갔다. 조용하고 깨끗하게 청소된 길과 아름다운 수목들에서 느껴지는 자연의 정취는 필자의 죄를 투시하는 것 같았다. “주여 저는 죄인입니다.” 필자는 고인이 살던 숙소를 돌아본 뒤 장례식장으로 갔다. 깨끗하게 정돈된 숙소, 청결한 화장실들을 보면서 중심으로 요양원에 감사했다.

고인의 관을 본당 강단 앞에 안치하고 뒤에는 ‘○○○ 성도 천국 환배’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고인의 사진을 보니 눈물이 쏟아졌다. 형님을 돌보지 못한 죄책감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너 이놈, 네가 목사냐?” 하며 꾸짖는 음성이 들려왔다.

목사님이 누가복음 16:19 말씀인 ‘부자와 거지 나사로’ 설교를 하셨다. “부자도 나사로도 다 죽었습니다. 부자의 장례식은 성대하고 장엄했으나 그는 음부 중에서 고통을 받고,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다”고 하시며, “여러분들은 나사로 같이 외롭고 보잘것없어도 천국의 소유자라고 위로를 받으라”고 설교했다. 설교 후 기도 중에 이들을 돌본 직원들과 모든 봉사자와 또한 봉사의 기회를 놓친 유가족들에게도 하나님의 위로를 달라고 기도했다. “주여 저는 죄인입니다.”

필자는 몇 번이고 울먹였다. 저 목사님은 큰 목사 나는 작은 목사 남은 여생에 큰 부담을 받은 작은 종. 이 장례식의 교훈이 모든 목회자에게 적용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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