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의 종교개혁과 이미지의 문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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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종교개혁과 이미지의 문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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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2.14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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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터, 성경 위에 예술을 꽃피운 신학자(1) - 안용준 목사(목원대 겸임교수)

루터의 종교개혁과 이미지의 문제 (1)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의 ‘종교개혁’은 왜 일어났을까? 이름이 주는 뉘앙스처럼 교회의 부정과 부패를 지적하고 단순히 도덕적인 갱신을 시도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기독교 본래의 신앙을 흐리게 하는 요소를 제거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진정한 신앙을 가지도록 신앙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서였다.

중요한 것은 신앙을 흐리게 하는 동기 중 하나인 숭배되는 예술적 이미지는 치유해야 할 대상으로 자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북유럽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기독교 본래의 신앙을 가로막는 이미지들이 얼마나 삶 가운데 침투해 들어와 있는지를. 이 일들이 이제 교회와 사회 전반의 이슈가 될 만큼 커져버린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을 이끌어 가는 직접적인 계기는 면죄부의 판매와 이미지의 미신적인 숭배였다. 물론 루터 이전에도 이러한 일은 있었다. 종교개혁 이전의 시기에도, 이미지의 숭배는 가톨릭 신앙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이 사실은 이미 아우구스티누스의 「수도사의 노동에 관하여」라는 저술 속에서도 나타난다. 당시에 이미 여기저기에 순교자의 성유물이라 선전하며 관심을 모으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비열하고 몰염치한 시장을 열고 한판 기회를 잡으려는 사람들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러한 현실에 깊이 탄식했다. 그 무렵부터 여러 곳에서 채집한 골을 성자의 유골이라고 부르면서 순진한 사람들을 믿게 하여 기만을 거듭하고 있었다.
▲ 레겐스부르그에서 성모 마리아 상에 경배하는 순례자들

그런데 왜 루터에게서 이 문제가 크게 제기되었는가? 이것은 교회의 잘못된 관행에 대해 성경과 신앙에 근거하여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시대로 무르익어 갔다는 말이다. 사회의 실제적인 문제였고 모든 계층의 관심사가 될 정도였다. 면죄를 받기 위해서 치르는 대가 중의 하나가 성유물이란 이름의 이미지 앞에서 기도를 하는 거였다. 또한 교회에 성물을 기증하기도 했다. 이로써 비텐베르크 성과 대학 교회에는 많은 성유물이 기증되고 매년 공공에 전시되었다. 이 때 특별한 사면이 이루어졌다.

당시 루터는 수도사로서 세상에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는 비텐베르크대학교의 신학부에서 성경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는 서서히 면죄부에 대한 논쟁에 의미를 두게 된다. 그는 고요한 독방에서 세인의 주목을 받게 되었으며 역사를 만들어 가기 시작하였다. 면죄부에 대한 루터의 논쟁이 나오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당시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성 베드로 성당 신축을 위한 면죄부에 있었다. 면죄부의 판매는 독일에서도 시행되었다.

- 안용준 목사는

홍익대 미술대학 대학원과 백석대 신학대학원, 동 대학원 등에서 신학과 기독교미학 분야로 석, 박사를 취득하였으며 캐나다 토론토대학교 르네상스 연구센터 연구원을 역임하였다. 현재는 목원대학교 겸임교수로 있으며, 연희동 원천교회 협동목사로 있다. 연구논문으로 《기독교와 한국 현대미술》,《타락한 세계를 위한 신학적 미학》,《개혁주의 미학의 청지기역할》,《칼빈 시어벨트의 현대 개혁주의 미학》,《1960-80년대 한국 기독교미술사연구》, 《아브라함 카이퍼의 기독교세계관과 시각예술》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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