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김과 나눔’ 토대로 한 통일신학 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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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김과 나눔’ 토대로 한 통일신학 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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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4.04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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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도홍 교수<천안대학교. 교회사>

분단 하 독일 교회는 ‘실천적 대화’ ‘섬김의 신학’을 통해 동서독 간에 ‘특별한 유대 관계’를 지속시켜, 통일을 위한 교회의 결정적 역할을 감당했다. 여기에 독일 교회의 인내어린 형제 사랑의 디아코니아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서독 교회는 진정한 사랑은 주는 것임을 바로 인식해, 그 사랑의 지식을 역사적 상황 속에서 묵묵히 행동으로 제시했다.

동독 경찰이 더 이상 동독 시민운동에 제재를 가하지 못하게 되는 1989년 10월 9일은 독일 통일에 있어서 극적 전환이 이루어진 시점으로 확인하는데, 이는 동독의 라이프치히 니콜라이 교회에서 시작된 촛불기도회가 바로 출발점이 됐다. 그 역사적 전환 후 만 1년, 독일 통일은 공식적으로 1990년 10월 3일에 이루어졌고, 동서 교회의 통합은 조금은 여유있게 생각하고 잡았던 1993년보다는 빠르게 1991년 6월 27일에 독일 코부르그에서 이루어졌다. 정치적으로 볼 때 동독이 서독에 편입되는 일방성이 없지 않았지만, 교회의 통합은 서로를 존중하면서 행해지는 신중함이 돋보이는 인격적 통합이었다.

독일 교회의 연합은 교회헌법에 따라 동부 교회가 자기편에서 법적 권한을 정당하게 행사하면 되는 것으로 통합의 근거를 제시했다. 독일 교회법은 동부 교회의 탈퇴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통합의 법적 근거를 쉽고 명료하게 제시한 점, 매우 조심스럽게 서로를 존중하는 입장에서 교회 통합을 진행시킨 점은 독일 교회가 보여준 탁월한 지혜였다.

그러나 통독과 함께 찾아온 독일 교회의 복잡한 문제는 한마디로 통일 후 기대했던 교회로의 ‘복귀의 붐’이 일어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독일 교회는 현재 더 이상 ‘민족 교회’가 아닌 ‘민족 속의 교회’로 묘사된다. 설상가상으로 독일 교회는 동 서부를 막론하고 교회 부흥은 고사하고 역으로 교인수의 감소에 충격을 금하지 못하고 있다. 독일 교회의 어려운 현실은 서부에서는 무관심이며 동부에서는 무신앙이 이유다.

서부의 교인들은 통계로 볼 때 인구의 80%가 교인이지만,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에 관심이 없고, 동부지역은 오랜 사회주의 무신론에 익숙해 교인 수는 인구의 20%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나마 그 동부의 20%에 해당하는 교인도 거의 경제력, 노동력이 없는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결국 독일 한쪽이 다른 한쪽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독일 교회의 어려움은 ‘타부’를 깨고 회개, 부흥, 갱신을 외치게 한다. 독일 교회가 부흥을 외치고 각성을 위한 기도와 중생을 외침은 새로운 시대를 향한 좋은 징조를 보여준다. 또한 독일 교회의 전도에의 강조는 위기의 교회 현실에서 출발한다. 그럼에도 동부와 서부의 전도전략은 차이를 요구한다. 특히 공산주의를 경험한 동부에서의 전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새로운 당면 과제를 만나 독일 교회는 많은 고심을 하고 있다.

통일 후 독일 교회는 섬김의 공동체로서 교회의 디아코니아, 사회봉사가 절실히 요구된다. 통일과 함께 찾아온 수많은 사회적 문제는 교회의 몫을 하기를 원하는데, 사회봉사가 복음 전도를 위한 조건이 되어서는 안되지만, 균형잡힌 복음전파를 위해서 중요한 한 축으로 이해한다. 복음전파의 기회로 인식하게 됐다.

통일의 독일 교회가 한국 교회에 주는 교훈

분단 하 한국 교회는 독일 교회의 섬김의 신학, 디아코니아를 교훈 삼아 적극적 통일 신학을 정립해야 한다.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리는 통일이 아니라, 보다 역동적으로 통일을 이루어가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남북통일은 한국 교회에게 안일한 축복이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통일 한국에서의 한국 교회를 예견하며 지혜롭게 준비하는 교회여야 한다.

또한 통일 후 한국 교회에 찾아올 ‘복귀의 붐’이 과연 일어날지를 보다 진지하고 엄격하게 분석해야 한다. 한국 교회가 과연 ‘제2의 예루살렘’으로서의 평양교회가 재건될 수 있을 것인지를 숙고해야 한다.

그리고 통일 한국에서 남한의 교회는 철저하게 공산 정권에서 반 기독교 세뇌교육을 받은 특수 선교지오서의 북한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북한 공산정권이 사라진 후에도 계속될 수많은 후유증이 한국 교회를 힘들게 할 것이다. 고전적인 전도 방법으로는 공산주의 유물론, 주체사상으로 세뇌된 북한의 전도는 옛이야기가 될 것이다. 새로운 전도방법이 요구된다. 의도된 반 기독교를 뛰어넘어야 한다.

한국 통일 후 발생될 엄청난 사회문제를 한국 교회는 예상하고, 교회의 몫에 해당하는 사회봉사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분단 하 한국 교회의 대 북한 사회봉사가 이미 활성화돼야 한다. 그리고 한국 교회의 통일 신학은 ‘아직’과 ‘이미’의 통일 신학이 정립되기를 기대한다. 물론 신약의 천국 이해에서 가져온 말이다.

아직 여전히 휴전선이 가로막고 있는 현실에서도 크리스천은 장벽과 사상을 뛰어넘어 그리스도의 사랑을 북한 동포들에게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곧 아직 통일이 멀지라도, 이미 우리 한국 교회는 통일을 앞당겨 맛볼 수 있다는 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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