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신앙 공간으로서의 가상 세계 (2)
상태바
새로운 신앙 공간으로서의 가상 세계 (2)
  • 운영자
  • 승인 2005.01.04 17: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재식교수/ 호남신학대학교

변화된 미디어는 우리들을 이전 시대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 처하게 했고, 새로운 형태의 인간의 삶이나 사유방식을 요청한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의 가치, 관점, 세계관, 궁극적으로는 종교문화와 신앙형태에까지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가상 세계가 제도적 종교와 신앙행태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이제 우리는 그 변화를 종교담론, 조직, 제의의 측면에서 간략히 그려보기로 한다.

종교 담론: 문자에서 이미지로

우리 시대의 종교 담론은 문자시대의 산물이다. 종교적 교의들은 문자시대를 거치면서 체계화됐고, 종교 담론의 가장 중요한 매체는 ‘책’이었다. 컴퓨터를 매개로 가상 세계의 등장은 ‘책’이라는 문자 개체 대신, 문자, 음성, 화상까지 포함하는 디지털화된 멀티미디어 전자매체를 종교 담론의 주요 매체로 삼을 것으로 전망된다.

가상 세계 자체가 전자시대의 종교 담론의 매체라고 할 수 있다. 책의 소멸을 단정할 수 없지만, 전자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신앙경험을 체계화시키는 종교 담론은 글과 문자 중심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종교적 대상에 대한 신앙경험을 컴퓨터 매체를 통해 가상 세계에서 표상할 때, 종교 담론은 문자로 된 ‘글’ 뿐만 아니라 ‘소리’와 ‘영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함께 구성함으로써 의미를 전달한다. 이런 경향은 필연적으로 근대 종교 담론에서 인쇄시대에 글이 누리던 기념비적인 권위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으며, 그 활용의 폭도 이전보다 더 좁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담론 구조에서 필요한 것은 글과 소리와 영상을 동시에 다차원적으로 구현하고 통합하는 구성 능력이다. 그리고 종교 담론의 의사소통을 위한 훈련 역시 이런 방향에서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종교 조직: 만인 사제의 네트워크로

자유로운 의사소통은, 현행 종교제도를 크게 변화시킬 것이다. 전통적으로 중시됐던 ‘사제’와 ‘기관’의 권위는 ‘일반 신앙인’들에게 이양되고, 이것은 기관과 제도로서의 종교와 비 제도적인 개인적 종교 사이의 긴장 관계에서 후자로 무게 중심이 쏠리게 됨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전통 종교에는 이 두가지 흐름은 항상 함께 있었지만, 문자시대의 근대 종교는 기관과 제도의 종교를 강조했다.

그런데 컴퓨터 커뮤니케이션은 가상 세계 속의 신앙 형태가 종교 기관이나 종교 사제의 권위의 약화를 초래하고 개인적 영성과 기관과의 무관을 강조하는 개인주의적 종교나 비 제도적 종교의 특징이 더욱 강해질 것이다.

기독교의 경우 가상 세계의 등장과 사이버 교회의 출현은 교회의 본질에 대한 전통적 견해를 다시 성찰하게 하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종교 조직의 변화에 한정되지 않고, 종교 자체에 또 하나의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을 야기할 수도 있다. 가상 세계의 종교는 개인적 영성이 중시되고 전통적 위계구조가 해체되는 쌍방향 네트워크가 강조되는 종교와 종교인을 요구할 것이다.

기독교의 경우 16세기의 종교개혁이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에 결정적으로 도움을 받았다면, 가상 세계 속의 기독교는 새로운 컴퓨터 커뮤니케이션으로 인한 정보의 자유스러운 유통으로 인해, 사제 중심의 종교를 넘어선 일반 신앙인 중심의 또 하나의 종교개혁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종교 제의

가상 세계에서는 전통적인 시간과 공간이 붕괴된다. 가상 공간에서 종교활동은 언제 어디서든지 ‘24시간, 일주일 내내’를 가능하게 한다. 이것은 대부분의 전통 종교가 거룩한 시간과 거룩한 공간을 일상적인 속된 시간과 공간을 구분하는 사고방식에 변화를 가져온다.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 접속에 의해서 종교적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을 경험하는 가상 세계의 거주자들에게, 현실에서 특별히 구별된 거룩한 장소에서 특별히 구별된 시간에 갖는 종교적 제의가 동일한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마우스를 쥔 가상 세계의 종교인들은 스스로의 종교 시장에서 자신의 종교를 선택하고, 스스로 거룩한 시간과 거룩한 공간을 선택함으로써 종교 제의를 일상화시킨다. 이런 제의의 일상화는 거룩한 시간과 공간을 통해 과거를 회복했던 제의가 가상 세계 속에서는 항상 기억의 현재화라는 모습을 지니게 될 것이다.

또한 가상 세계의 거주자들은 기존의 ‘공급자’ 중심의 종교에서 ‘소비자’ 중심의 종교를 추구하고 결국에는 생산자-소비자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될 것이다. 이런 변화는 종교 제의 과정에서 종교 사제의 역할에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사제 중심의 제의 과정보다는 모든 사람들이 쌍방향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함께 참여하는 제의의 주체가 되는 그런 형식의 제의가 더욱 확산될 것이다.

이와 더불어서 기존의 종교 제의가 말을 중심으로 구성됐다면 앞으로의 종교 제의는 음악과 이미지가 함께 어울어지는 멀티미디어 중심의 제의가 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