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스 페이스의 기독교적 의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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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스 페이스의 기독교적 의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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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1.04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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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국원교수/ 침신대 종교철학

사이버 스페이스와 가상 현실이 당면하게 되는 많은 문제점 가운데서 특히 기독교와 관련돼 심각하게 부각되는 것은 ‘비물질적 현존’(dematerial presence)의 문제이다. 플라톤적 이데아를 닮은 사이버 스페이스의 세계는 정신이 찬양되고 물질과 육체가 천시되는 세계이다. 그래서 조지 길더(George Gilder)는 “21세기의 중요 사건은 물질의 타도가 될 것이다.

인간 주체성 해체 의미
의식의 힘이 물질의 거친 위력 위에 점차 군림하고 있다”라고 단언한다. 헤일즈에 따르면 기존의 아나로그-물리적 환경이 디지털-전자적 환경으로 전환된다는 의미에서 물질적 사물이 정보 패턴으로 치환된다는 것이 곧 가상 현실의 핵심이다. “패턴은 현존을 압도해서 영성이나 심지어 의식이 아니라 단지 정보에만 의존하는 비 물질성을 구성하게 한다. 마치 해체주의 철학자들이 ‘현존의 형이상학’을 헤체하듯 사이버 스페이스 시대에서 물리적 현존은 해체되어 정보 패턴으로 대체된다.

이것은 곧 전통적인 인간 주체성의 해체를 의미할 뿐 아니라 나아가 결과적으로 옛날 영지주의적 인간관의 부활을 가능하게 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제 인간은 물리적·생물적 주체라기보다는 정보패턴의 사이버 주체로 파악돼야 한다고 가상현실 옹호론자들은 강조한다.

서구 역사를 관통해왔던 육체와 정신의 이원론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답적인 철학자들 대신에 보다 대중적인 종교로 눈을 돌리는 것이 나을 수 있다. 이른바 ‘영지주의’란 바로 이런 이원론을 대중화시켰던 종교운동이었다. ‘육체는 곧 감옥’이라는 간명한 구호는 나약한 육신과 불안한 현실에 좌절했던 대중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철학자들의 엄격함과 엄정함 없이도 육체의 질곡을 벗어버리고 순수한 지식의 세계로 몰입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가르쳤던 영지주의자들은 한 때 엄청난 교세를 자랑하기도 했다. 그러나 로마의 국교로 등장한 기독교는 고상한 철학을 자기의 대화 파트너로 삼으면서 대중적인 영지주의를 철저히 탄압하기 시작했고, 결국 서구 기독교 왕국 전체에서 영지주의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렇지만 기독교 교리와 종교 재판관들의 매서운 감시에도 불구하고 신령한 지식을 향한 대중들의 열망은 소멸되지 않았고, 다만 오랜기간 동면해 왔다는 사실이 새롭게 다각도로 조명되고 있다. 그리고 이제 사이버 스페이스 시대를 맞아서 천년이 넘게 숨소리를 죽여왔던 영지주의적 욕구들이 본격적으로 터져나오려 하고 있는 것이다.

사이버 영지주의자, 새로운 이교도

포스트모던시대의 흥미로운 역설 가운데 하나는 곧 고대의 영지주의적 호기심과 후기 근대의 사이버 스페이스 테크놀로지와의 예기치 못했던 제휴가 현재 활발히 진행 중에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네트워크로 연결된 순수한 디지털 정보의 세계인 사이버 스페이스는 신비한 지식을 원하는 영지주의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한 최상의 도구일 수 있다.

그래서 ‘사이버 기술을 통해 중개된 해탈’을 가능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이 둘 사이의 결합은 ‘전적으로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심지어 불가피하다’고 어느 변증론자는 한탄한다. 새로 등장한 ‘사이버 영지주의자들’은 육체의 감옥을 벗어나기 원했던 영지주의자들의 가르침을 따라 물질을 벗어나는 탈육신화를 꿈꾸며 영적 지식을 찾던 선조들을 본받아 순수한 정보를 열망한다.

이들 사이버-영지주의자들이야말로 ‘새로운 이교도’의 진짜 이름인지 모른다. 여기서 바로 ‘이교도’라는 단어에 사이버 스페이스의 기독교적 의미를 풀 수 있는 열쇠가 숨어있다. 즉, 이교도란 곧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고 그 몸된 교회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을 지시하는 대명사의 총칭이 된 것이다. 따라서 자신을 ‘테크노 이교도’라고 부르는 사이버-영지주의자들은 그 이름을 통해 기독교에 적극적으로 반대한다는 의미를 분명히 천명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윌리암 깁슨이 지적하듯 사이버 스페이스 시대의 종교 상황에는 기독교의 유일신교보다는 다신교 혹은 디지털 정령 신앙이 훨씬 더 잘 어울린다는 의사를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물질이 정보로 대체되며 육체가 정신 패턴으로 대체되는 사회, 바로 그것이 곧 사이버 스페이스의 매력이며 함정이 된다. 사이버 스페이스 시대에서 성육신의 비밀은 탈육신의 비의(秘意)로 대체된다. 2천년 전 유대 땅에서 일어났던 성육신 사건은 신이 인간과 이 세상을 너무나 사랑해 스스로를 낮추어 인간의 육신을 입었다는 상징성을 지닌다.

신이 인간의 육신을 가질 수 있고 인간의 죽음을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은 사실 많은 사람들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스캔들이었다. 그런데 이제 ‘스페이스 오디세이’ 원년인 2001년을 맞아 육체의 감옥을 벗어나 의식의 자유로움을 만끽하려는 탈육신이 현대의 스캔들로 등장하고 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안에 거하니라’는 성경 구절이 이제 ‘육체가 가상이 되어 우리 안에 거하니라’라는 새 구절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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