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을 차려주시는 하나님
요한복음 21:1~14
찬송: 438장
부활하신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숨어 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에게 부활의 증인으로 살 것을 부탁하십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제자들은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다시 고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못난 제자들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밤새 지친 제자들을 위해 아침 식탁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다윗도 간증하기를 시편 23편 5절에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여기서 원수라는 [짜라르]라는 말은 낙담(싸다, 묶다, 좁게하다, 출산의 고통을 겪다) 이라는 다양한 의미가 있습니다. 즉 이런 상황 앞에서도 하나님은 상을(식탁) 차려 주신다고 하십니다. 식탁에 놓인 음식은 먹는 사람에게 기운을 돋게 하고 힘을 내게 합니다. 하나님은 고통과 좌절속에 지친 영혼들에게 음식을 주어 승리하게 하십니다. 엘리야도 이세벨의 협박에 도망하다 죽기를 청하자,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 음식과 물을 마시게 하여 힘을 내어 광야 길을 걷게 하셨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는 말씀을 양식으로 먹어야 합니다. 양식은 먹어도 되고 안 되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살기 위해서 매일 먹어야 합니다, 힘을 내기 위해서는 매일 먹어야 합니다. 이처럼 오늘도 나에게 영혼의 양식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식탁에 앉아서 마음껏 먹고 승리하시는 하루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오늘도 참된 일용할 양식을 구하옵나니 주의 말씀으로 힘을 얻어 승리하게 하옵소서!
축복, 누구 덕분인가?
창세기 19:29
찬송: 301장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소돔과 고모라에 거주합니다. 하나님은 죄악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를 불로 심판합니다. 이때 하나님은 롯과 그의 가족을 소돔과 고모라에서 구원합니다. 그런데 롯이 착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롯이 구원받은 이유는 롯에게 있지 않습니다. 29절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롯은 본인의 믿음, 본인의 기도로 소돔과 고모라에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롯이 구원받은 이유는 삼촌 ‘아브라함’ 때문입니다.
나의 인생에 나의 노력, 나의 능력에 비하여 너무 많은 복을 받고 있다면 자문해 보셔야 합니다. 이것이 ‘나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누구 덕분인지’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롯이 아브라함 덕분에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것처럼 나도 내 부모님의 믿음, 내 배우자의 기도 덕분에 지금의 축복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질문해야 합니다. 심지어 내가 얼굴도 뵌 적 없는 친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헌신과 믿음 덕분에 내가 지금의 축복된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제 내 믿음 덕분에 누군가가 복을 받고, 내 기도 덕분에 누군가가 구원을 받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나를 통하여 내 주변 사람들이 축복을 누리게 만드는 인생을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나를 통하여 축복이 흘러가는 인생 되게 하옵소서.
승리의 귀환
사무엘상 6:1~21
찬송: 167장
언약궤가 블레셋 땅에 있은 지 7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다곤의 신상이 언약궤 앞에 엎드러져 부서졌고(5:4), 블레셋 주민들이 독한 종기로 인해 죽거나, 고통 속에 울부짖었습니다(5:6~12).
블레셋은 더 견딜 수 없었습니다. 언약궤를 원래 있던 곳으로 보내지 않으면 모두 멸망당하고 말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언약궤를 소 두 마리가 끄는 수레에 실어 이스라엘 땅 벧세메스로 보내기로 합니다. 그때 그냥 언약궤만 보내지 않고 금을 상자에 담아 수레에 함께 실어 보냅니다.
언약궤를 빼앗길 때만 해도 하나님의 패배 같았습니다. 그러나 적의 심장부에서 하나님은 위대한 승리를 거두십니다. 도리어 블레셋 사람들로부터 보물을 받고 이스라엘 땅으로 귀환하셨습니다.
출애굽 사건에서 언약궤 귀환 사건으로 이어진 이 구속사의 흐름은, 십자가에 죽임당했으나 사망 권세 이기시고 죽음에서 돌아오신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그리고 그가 약속대로 다시 오실 그 날이 오면, 모든 악의 무리들은 주님의 권능의 손 아래 무릎 꿇을 것입니다. 그 옛날 블레셋처럼 말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 승리의 날이 임할 때까지 인내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오늘의 기도
승리의 하나님. 비록 우리 삶이 힘들지라도 고난 중에도 믿음 잃지 않고, 마침내 최후 승리를 믿으며 주만 의지하기 원합니다.
부활의 주를 믿는 자
로마서 4:16~25
찬송: 546장
활은 승리의 선포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담대히 선포되어야 합니다. 주의 부활을 전하는 복음서는 주저 없이 부활의 사실을 선포했습니다. 그것은 주위를 향하여, 세상을 향하여, 저 어둠의 주관자들을 향하여, 사망을 향하여 외치고 선포한 것입니다.
부활은 참된 본질적 신앙의 고백입니다. 본문은 이신득의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입니다(24). 단지 존재하는 신을 믿는 정도가 아닌, 그 아들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성경이 말하는 참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부활 권능을 소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아들을 십자가에 내주신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시면서 또한 우리 이신득의를 위해 아들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권능의 하나님이십니다.
부활의 신앙인은 바랄 수 없는 중에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않고 견고한 믿음으로 바라고 믿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믿음을 나타냅니다. 선교 2000년사에서 부활의 복음이 전해진 곳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나라들과 대륙에서 큰 발전과 융성이 이루어져 온 사실은 부활의 은총과 능력 외엔 설명이 안 됩니다. 오직 우리에게도 부활신앙이 실전적이며 실천적인 선포와 고백이 되어 늘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부활의 복음으로 실천적인 선포와 고백이 되어 견고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소서.
나에게 주어진 말씀을
마가복음 11:27~33
찬송: 320장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성전을 청결하게 한 후, 다음 날 다시 성전에 가셨습니다. 그때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예수님을 판단하기 위해, 논쟁을 합니다.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은 성전을 관리하며 신앙 활동에 대해 지도하며 말씀을 가르치며 전수하고, 재판을 하는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았던 사람들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못했고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는데 앞장섰던 사람들입니다.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던 메시아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시선에서 말하는 메시아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참 메시아는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고 믿지도 못한 것입니다.
말씀을 아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아는 말씀을 가지고 어떤 삶을 사는냐는 더 중요합니다. 말씀을 내 기준에 맞추어 나의 유익의 소재로 삼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참된 의미를 깨달아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살아내는 것이 믿음으로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살기 위해 말씀을 붙들고 사는가, 아니면 내가 원하는 것을 얻고 누리고 지키기 위해 말씀을 이용하고 사는가, 하나님 앞에서 헤아려 보아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살아낼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빛이 있었나니
요한복음 1:1~9
찬송: 293장
우리에게 빛이 없다면 살아 갈 수 있을까요? 그런데 빛보다 더 중요한 ‘생명의 빛’으로 오신 분이 계십니다. 오늘 빛으로 오신 예수님에 대해 요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첫째, 그분은 ‘말씀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에 보면 그분은 태초부터 계셨고,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그분은 말씀대로 오시고, 말씀대로 고난 받으시고, 말씀대로 죽으시고, 말씀대로 다시 오실 분이십니다.
둘째,‘생명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가끔 성전 안에 햇빛을 보지 못한 식물의 잎들이 마르거나 시들어 있는 모습을 봅니다. 이 식물을 살리기 위해 창문 가까이로 옮겨주고, 빛이 드는 1층으로 이사를 시키기도 합니다. 살아있는 것에는 빛이 필요합니다. 하물며 우리의 영혼은 어떻겠습니까? 우리에게 생명의 빛 되신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분은 ‘하나님의 영광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히브리서 1장 3절에서 그는‘하나님의 광채’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분과의 바른 교제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이 그분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우리 모두가 가정의 어둠을 내어 쫓고 빛으로 채워가는 생명의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생명의 빛 되신 예수님을 조명하는 우리의 삶이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