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존재 부정하는 ‘호전적 무신론자’의 득세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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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존재 부정하는 ‘호전적 무신론자’의 득세 우려
  • 박찬호 교수(백석대 조직신학)
  • 승인 2024.04.09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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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교수의 목회현장에 꼭 필요한 조직신학 _ 52) 무신론자들의 신앙
박찬호 목사
박찬호 목사

『기독교의 본질』(The Essence of Christianity)이라는 책이 두 사람에 의해서 쓰여졌다. 1841년에는 무신론자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Ludwig Feuerbach, 1804~1872)에 의해, 1900년에는 자유주의신학자 아돌프 폰 하르낙(Adolf von Harnack, 1851~1930)에 의해서였는데 두 권 다 기독교의 본질에서는 벗어난 주장을 하고 있다. 포이에르바하는 유물론자였는데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를 유한자가 무한을 투사(project)하여 만들어낸 것이라고 보았다. 이런 무신론적인 입장은 현대 무신론적 진화론의 강력한 옹호자요 주창자인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1941~ )가 지금도 지니고 있는 입장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 신은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요 종교 또한 인간이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기에 불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심지어는 미개하며 특별계시의 충격을 경험하지 못했던 종족들 안에서조차도, 하나님에 대한 관념이 인간의 마음속에 보편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강한 증거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 기초하여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진정한 무신론자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까지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인 견해는 사실에 의하여 반박된다.

일반적으로 무신론자는 실천적 무신론자(practical atheists)와 이론적 무신론자(theoretical atheists)로 구별된다. 실천적 무신론자는 단순히 불경건한 자들로서, 실천적인 삶 속에서 하나님을 염두에 두지 않고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보통 하는 말로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바로 실천적인 무신론자의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론적 무신론자는 대체로 보다 더 지적인 부류의 사람들로서, 그들의 부인은 합리적인 추론의 과정 위에 기초하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신 그의 창조 사역 속에서 모든 인간에게 종교의 씨앗(semen religionis)이 심겨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아무도 무신론자로 태어난 사람은 없다고 가정해도 괜찮을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의 어리석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시 14:1a). 짐짓 식자인 척하는 사람들 가운데 무신론자가 많지만 성경은 이러한 무신론자들을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무신론자들은 아무것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다. G. K. 체스터턴(1874~1936)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문제는 사람이 결국 아무것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며 그들은 무엇인가를 믿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닥터 지바고의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1890~1960)는 유대인으로 공산주의자였다. 레닌의 공산혁명을 열렬히 환영한 사람이다. 러시아 혁명을 통해 지상천국이 건설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러시아에 건설된 것은 폭압적인 독재정권이었고 이에 실망한 파스테르나크는 “나는 무신론 신앙을 잃어버린 무신론자다”라고 말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전체적인 현대 과학의 발전이 꼭 기독교신앙에 반대되는 방향으로만 흘러가고 있지는 않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도킨스와 같은 호전적인 무신론자들이 득세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의아한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이 부분과 관련하여 캠브리지 대학의 수리물리학 교수였다가 성공회 사제가 된 존 폴킹혼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현재 자연과학의 다른 분과들보다 생물학계 내에 특별히 유기체가 아닌 분자생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 종교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감이 편만해 있는 이유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는, 생물학자들이 다루는 현실이 물리학자들이나 다른 자연과학자들이 다루는 현실보다 더 복잡하고 무질서하며 고통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물리학자들은 간결하고 아름다운 기초 물리학적 질서를 제시한다. 하지만 생물의 세계는 냉혹한 약육강식의 질서가 지배한다.

둘째로 폴킹혼은 생물학자들이 “무분별한 환원주의적 승리주의의 유혹”에 굴복당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즉 유전학이 분자구조를 벗겨냄으로써 생물학은 엄청난 승리를 거두었는데, 이 승리는 예전에 물리학이 우주 중력의 작용을 밝혀 태양계 운동을 설명함으로써 거두었던 승리에 비견할 수 있을 정도라는 것이다. 폴킹혼이 보기에 생물학자들의 이러한 열광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므로, “우리는 과학과 신학의 상호작용에 참여할 준비가 기꺼이 되어 있는 생물학자들이 보다 많이 나타나리라는 희망을 접어두어서는 안 된다.”(『과학시대의 신론』, 90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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