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큰 교회가 되는 꿈, 지금 이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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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큰 교회가 되는 꿈, 지금 이뤄가고 있습니다"
  • 이인창 기자
  • 승인 2024.04.04 05: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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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사명선언문] 성광교회 이우종 목사

선교하는 교회, "돈이 모이면 보냅니다"
"말씀이 흘러가는 깨끗한 파이프 될 것"

“하나님이 보실 때 무엇을 보실까, 지금 내게 무엇을 원하고 계실까. 이 질문을 하면 금방 답이 나옵니다. 변함없이 견고하고 성숙해질 수 있는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고 항상 생각하며 목회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성광교회 이우종 목사는 목회를 하면 할수록 “성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목사가 되어야겠다. 하나님이 어디에 있기를 원하시는 마음을 지켜야겠다”고 다짐하곤 한다. 개척 초기 품었던 ‘선교하는 교회’의 비전을 그래서 더 잘 실천해가고 있는지 모른다.  

개척 당시 교회 건축보다 더욱 복음 전파를 위해, 선교를 위해 흘려보내겠다는 마음을 품었었다. 어쩌면 이우종 목사는 “작지만 큰 교회가 되겠다”는 꿈을 이미 이뤘는지도 모른다. 이 목사와 성광교회 사역 속으로 들어가 본다.  

성광교회 이우종 목사는 개척 때부터 품어온 '선교하는 교회'의 비전을 성도들과 함께 이루어가고 있다. 작지만 큰 교회가 되는 꿈이 지금도 실현되어 가고 있다. 

어린 시절, 기적과 같은 삶 
이우종 목사는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낸 서울 강서구에 교회를 개척했다. 어릴적 가정환경은 무척이나 가난하고 힘겨웠다. 폐결핵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아버지를 위해 어머니는 안 해본 것이 없었다. 다행히 기도원에서 은사를 받으면서 치유를 경험했고, 아버지는 4분의 1만 남은 폐를 가지고 22년을 이 땅에서 사셨다. 의사는 어머니에게 “아주머니의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 같다”고 고백할 정도였다. 하지만 한달 150만원의 약값을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가난했다.  

“주변에서 형편이 어려우니 자식을 양자로 달라고 할 정도로 힘들었어요. 사흘을 굶다가 어머니는 두 아들을 데리고 일하던 공사장 식당에 무작정 데려간 적도 있습니다. 어머니의 강한 생활력과 신앙이 있어서 오늘날 제가 있는 겁니다.” 

이우종 목사의 어머니는 여러 은사를 받았고, 기도원 원장으로 능력있게 사역하기도 했다. 보수적인 교회에서 신앙원칙과 기준을 배웠기 때문에, 은사를 덕 있게 사용하려고 애썼다. 이 목사의 말대로 조심스럽게 언급해야 할 정도로 기적과 같은 일들이 많았다.  

이런 신앙환경 속에서 자란 이 목사는 어릴 적부터 모두가 인정하는 신앙 인재(?)였다. 초등학교 때 방언기도를 하고 밤새 철야를 했고, 아버지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효자였다. 중학교 때는 전도왕이었고, 고등학교 때는 문학의 밤을 다니며 메시지를 전할 정도였다. 그에게도 교회와 멀어지는 짧고 굵은 일탈의 시기가 있었지만, 결국 그는 어릴 때부터 가고자 했던 목회자의 길을 선택했다.  

주변 만류에도 개척의 길로 
제대 후 당시 경험했던 세상은 허무한 삶 일색이었다. 이 목사는 목회자로 삶을 다짐하며 방배동에서 신학 공부를 시작했다. 어머니의 은사 사역에 더욱 균형이 필요하다고 생각에 조언하다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 

“어머니의 은사가 도구가 아니라 목적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해서 부딪혔어요. 말씀대로 바르게 사용해야 한다고 조언을 드렸어요. 그래도 건강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셨기 때문에, 어머니는 말씀 중심과 교회 중심이어야 한다는 아들의 말을 잘 이해해주셨습니다.” 

아들은 어머니 은사가 더 잘 사용될 수 있는 선교지 사역을 적극 권면했다. 예순을 넘긴 나이였지만, 어머니는 아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지금까지 동아시아 국가를 오가며 17년 동안 능력 있는 사역을 이어오고 있다. 

신학 공부를 마친 이 목사는 1999년 11월 성광교회를 개척했다. 처음 방화동에서 개척한다고 했을 때 만류 일색이었다. 당시 인근 지역에 170여 개 교회가 있는데 힘들다는 것이었다.  

“열 가정을 보내주시면 개척하겠다며 기도하며 준비했습니다. 하나님은 정말로 열 가정을 보내주셨고 교회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개척하면서 교회 건축 대신 오지에 열 개의 교회를 세우겠다고도 기도했습니다. 주변 교회와 경쟁하지 않고 지역 사회를 섬기는 목회를 다짐했던 기억도 납니다.”  

이 목사는 전도지에 교회 이름을 새기지 않았다. 가까운 교회에 갈 것을 권했다. 전도용 주먹밥에는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는 문구만 새겼다. 매년 근린공원에 천막을 치고 경로잔치를 할 때도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어르신들을 섬겼다. 지금도 성광교회는 매달 독거 어르신 스무 가정을 돌보고, 소년 소녀 가장들을 품고 있다.  

한때는 노숙인들이 몰려오는 교회이기도 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노숙자 한 분이 오셨을 때 잘해드렸더니, 50명까지 늘어난 겁니다. 목사님이 우리를 존중해주기 때문에 온다고 하셨어요. 우리 성도들도 깍듯이 예를 다했습니다. 많은 분이 계셔서 상가 식당에서 대접할 정도였어요. 그런데 너무 많은 민원이 들어오는 겁니다. 그분들에게 주일 대신 금요일에 모이자고 제안 드렸는데, 거짓말처럼 다음 주부터 한 분도 오시지 않더라고요. 그런 경험도 있습니다.” 

권사회 임원들과 함께한 이우종 목사. 이 목사는 성도들과 함께 지역사회 복음화와 해외 선교의 비전을 이루어가고 있다. 
권사회 임원들과 함께한 이우종 목사. 이 목사는 성도들과 함께 지역사회 복음화와 해외 선교의 비전을 이루어가고 있다. 

“첫 마음 그대로 흘려보냅니다” 
건물주로부터 건물을 매입해 달라거 제안할 정도로 교회는 꾸준히 부흥 성장했다. 한때는 더 큰 교회에서 청빙이 오기도 했다. 계산하는 마음이었다면 충분히 갈 만한 목회지였지만, 이 목사는 개척지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청빙이 온 곳은 제가 아니어도 다른 분이 갈 수 있는 곳이고, 이곳은 주님이 제게 주신 목회 비전이 있는 곳이니까요.” 

특별히 오지에 열 개 교회를 짓겠다는 꿈은 꾸준히 실현되어가고 있다. 필리핀 ‘쓰레기 마을’에 교회를 짓고, 화재로 고통받는 다섯 가정에 집을 지어주었다. 예배 처소가 없던 네팔의 산골 마을에도 교회를 세웠다.

한번은 암 진단을 받은 권사님이 건축헌금 5천만원을 드렸다. 교회가 꼭 필요한 선교지를 한번 보고온 이 목사는 권사님의 동의와 성도들의 찬성을 거쳐 5천만원을 그대로 캄보디아에 보냈다. 그 목회자에 그 성도다. 태국에 신학교를 세우는 데도 1천만원을 전달하기도 했다.  

“6번째 교회를 우간다에 세워 드렸습니다. 유치원과 직업학교도 설립하고 우물파기 후원도 했어요. 그런데 얼마 전 현지 선교사님이 교회를 보건소로 사용해도 되겠냐고 연락이 왔어요. 교회는 옆에 따로 짓겠다면서요.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 모아둔 4천만원까지 보내드렸죠. 병원을 세우고 싶은 꿈도 있었거든요.” 

이우종 목사는 몇 푼 안하는 말라리아 치료약이 없어 쓰러져있던 아이들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제 의사 1명, 간호사 1명을 둔 어엿한 보건소가 개소된다는 생각에 이 목사와 성도들의 마음은 한껏 부푼다. 보건소가 개소되면 아이들만 600명이 의료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이 목사는 교회 건축의 비전을 갖는 것도 중요하고 소중하다면서도, 성광교회 첫 마음은 선교에 있었기 때문에 흘려보내는 사역을 여전히 감당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우리 비전이 그것이니까요. 한 번의 선교사역이 끝나면 또 돈을 모읍니다. 통장에 돈을 넣어 두기만 했는데 주님이 오시면 어쩝니까. 우간다에서 들어오신 선교사님이 우리 교회를 직접 보시고는 우시더라고요. 우리와 같이 크지 않은 교회도 얼마든지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이 목사는 성도들에게 좋은 설교를 위해 공부를 멈추지 않았다. 작년 백석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을 때.

진짜 부흥의 길을 꿈꾸며 
이우종 목사는 자신과 같은 목사를 선택한 성도들에게 부끄러움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그래서 설교 준비에 더욱 최선을 다한다. 교인들을 위해서라도 공부해야겠다면서, 백석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Th.M)를 거쳐 작년에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하나님 앞에, 성도들 앞에 좋은 목회자가 되고 싶어하는 이 목사는 또 자주 금식하며 영성을 관리하려고 애쓴다.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지 생각하면 금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금식은 능력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관리하기 위한 것이에요. 하나님이 말씀의 수원지라면, 저는 파이프거든요. 물이 흘러갈 관이 깨끗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금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성광교회는 8번째 교회 개척의 비전을 꿈꾸고 있다. 그것이 지금 성광교회가 부흥해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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