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의사 박에스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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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의사 박에스더
  • 김태현 기자
  • 승인 2024.03.13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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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독교 유산을 찾아서 (6) // (하) 근대 여성 지식인들의 요람 이화학당
박에스더 의과대학 박사학위 수여식 사진
박에스더 의과대학 박사학위 수여식 사진

이화학당이 배출한 여성 지식인들은 우리 근현대사에 한 획을 그었다. 3.1절 만세운동의 상징인 유관순 열사가 이화학당 출신이라는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이다.

유관순 열사 외에도 우리나라 최초의 의사 박에스더, 최초의 여성 작곡가 김순애,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 최초의 여성 변호사 이태영 등 유수의 여성 지식인들이 이화학당을 통해 꿈과 재능을 발견했다. 그중 박에스더의 삶은 파란만장했던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와 닮아있다.

박에스더의 본명은 김점동이다. 10살에 이화학당에 입학한 김점동은 12살에 세례를 받으며 에스더로 개명했다. 당시로는 늦은 나이인 17세에 결혼하며 미국식 호주제에 따라 남편의 성(姓)인 박에스더가 됐다.

박에스더의 삶은 이화학당 부속병원 보구녀관의 설립과 함께 바뀌게 된다. 이화학당에서 영어 실력이 가장 뛰어났던 그는 로제타 홀의 통역사로 일하게 된다. 이때 구순구개열 환자가 수술을 통해 말끔하게 치료되는 것을 보고 의사로서의 소명을 발견한다. 이에 로제타 홀은 기초 의학지식을 가르쳐 보구녀관의 간호사로 양성한다.

로제타 홀은 1894년 남편 윌리엄 홀이 사역 도중 전염병으로 순교하자 이듬해 잠시 미국으로 귀국했는데 이때 박에스더 부부도 동행했다. 박에스더는 로제타 홀의 주선과 남편의 헌신적인 지원에 힘입어 미국에서 의학교육을 받아 1900년 6월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의사가 탄생한 것이다.

같은 해 11월에 귀국한 박에스더는 보구녀관에서 의사로 여성 환자를 돌봤다. 서울 외에도 평안도나 황해도를 두루 다니며 연평균 3,000명 이상의 환자를 진료했다. 의료사역과 함께 여성들을 위한 위생교육도 함께 실시했다.

하지만 격무에 시달린 박에스더는 1910년 4월 13일 35세의 나이에 파란만장했던 삶을 마감했다. 남편과 같은 폐결핵이 원인이었다. 6년간 공부를 뒷바라지한 남편은 의학박사 취득 2개월 전에 사망하고 두 번이나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는 등의 개인적인 아픔이 있었지만 조선 여성들을 치료하겠다는 그의 꿈은 꺾이지 않았다.

남녀차별에 맞서 꿈을 펼치고 능력을 보여준 최초의 여성 의사 박에스더는 이화학당을 만나 사명을 찾았고 많은 여성들의 롤모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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