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칼럼 -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친구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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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칼럼 -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친구되기'
  • 승인 2004.08.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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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철목사 / 아펜젤러교회

미국 피츠버그에서 비가 많이 쏟아지는 어느 날 오후. 가구점의 진열장 안을 들여다보고 서 있는 할머니 한 분이 있었다. 손님이 없어 한가한 가구점 점원들은 잡담을 하고 있었는데, 한 여점원이 밖에 서서 기웃거리는 노인을 보고 안으로 모셔 왔다.

“할머니, 가구 사시게요? 보세요.” “아니야. 우리 집에는 당장 가구가 필요 없다네. 그냥 차를 기다리다 비도 오고 무료해서 진열장을 들어다 보고 있었는데, 미안하오.” “아니예요, 괜찮아요. 추우실텐데 불 옆으로 오세요. 여기서 차를 기다리세요. 제가 밖에 나가 차가 오는지 보고 올게요.” 그 점원은 몇 번이고 나갔다 들어왔다 하면서 기다리다가 차가 오자 정중하게 차를 태워 드렸다.

얼마 후에 강철왕 카네기의 어머니가 그 가구점에 편지를 보내 왔다. 그 어느 날의 친절에 대해 감사하면서 카네기의 별장에 가구를 주문한다는 내용의 주문서였다. 한 점원이 한 노인을 장사꾼이 아닌 사람의 마음으로 대했던 일로 그 가게는 유명한 가게가 되어 번창했다고 한다.

21세기의 물질만능주의, 황금주의 세상은 각박하고 사람다움을 잊어가고, 교회 역시 세상을 감동시키지 못하고 있다. 세상의 눈으로 보는 교회는 세상보다 더 이기적이고 나눔에 인색해 있다.

교회와 세상은 상호 배타적일 때가 많고, 신앙은 의미에 있어서 세상은 삶의 형태와 내용에 있어서 서로 일치하지 못하고 갈등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수님이 우리의 친구가 되어 주신 것처럼 우리는 세상 사람들의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한다. 확신을 가진 사람은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경향이 있는데, 이 때문에 경건하고 성실하게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을 멀리하고 낮춰보는 태도를 보일 때가 있다. 이는 결국 세상 속에서 좋은 친구로 사귀지 못하고 교회 안에 머물러 세상과 멀리 자신을 격리시키는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어부들, 농부들, 창기들, 가난한 사람들, 병든 자들, 소외된 사람들, 이 모든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 주시고 함께 하셨다. 오늘날 세상과 교회를 다리 놓아야 할 사람들은 평신도 지도자들이다. 모이는 교회보다 흩어지는 교회, 교회 안에 안주하기 보다는 세상 속에 뛰어들어 사람들을 이해하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함께 슬퍼하고, 함께 기뻐하는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더 나아가 세상을 이해하는 것으로 친구의 사명을 다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삶을 고양시키고 새 삶을 추구하도록 동기유발을 하고 성취하도록 이끌어 주는 친구가 되어야 할 사명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바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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