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성경’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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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성경’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볼 수 있다”
  • 정하라
  • 승인 2021.04.08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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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우상인가 은혜의 수단인가

제2계명 :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출20:4)

오늘날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십자가 장식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의 상징물이라 할 수 있는 ‘십자가’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징하는 상징물로 여기며, 십자가 자체에 은혜스러움과 감격의 마음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신학자들은 십자가 자체를 신성시하거나 주술적 의미를 갖고 장식하는 것은 엄밀히 말해 하나님 말씀을 위배하는 우상숭배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성경 속 구약시대 ‘놋뱀사건’을 보면, 그리스도인이 십계명을 어기고 범할 수 있는 잘못이 무엇인지 반추해볼 수 있다. 출애굽 후에 광야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죄를 범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불뱀에게 물려 죽게 됐다. 뒤늦게 회개하며, 하나님께 매달린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모세에게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게 하신다. 죽어가던 자들이 장대 위에 달린 놋뱀을 쳐다봄으로써 살게 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치유가 ‘놋뱀’이 아니라, “놋뱀을 쳐다보면 살리라(민21:9)”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뤄진 것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어리석게도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그로부터 800년이 지난, 히스기야 시대 때까지 우상으로 여기고 숭배하는 죄를 범했다. 이처럼 우리가 알게 모르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여기고 숭배하는 것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신학자들은 십자가 자체를 신성시하거나 주술적 의미를 갖고 장식하는 것은 엄밀히 말해 하나님 말씀을 위배하는 우상숭배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신학자들은 십자가 자체를 신성시하거나 주술적 의미를 갖고 장식하는 것은 엄밀히 말해 하나님 말씀을 위배하는 우상숭배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예배당 안 ‘십자가’ 우상일까

십자가를 비롯해 각종 성상이나 성화를 단순한 상징물이 아닌, 하나님을 경배하는 거룩한 도구로 여기며 주술적인 마음을 품는다면 우상숭배에 해당된다는 것이 급진적 개혁운동가들의 주장이었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1522년 종교개혁가들은 ‘성상파괴운동’을 본격적으로 벌이면서 예수, 마리아, 사도들, 천사들과 성인의 그림이나 조각, 십자가를 없앴다. 이러한 전통을 따라 초창기 한국 장로교회 예배당에도 십자가를 비롯한 각종 성상이나 성화를 들여놓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허용하기 시작한 것이 ‘십자가’였다. 그로 인해 십자가는 자연스레 교회의 상징물로 자리 잡게 됐고, 각 교단에서는 십자가 부착에 관한 결의를 하기도 했다. 예장 합동총회는 1957년 제42회 총회에서 교회 강단에 십자가 부착을 하지 않기로 결의했다. 이후 1989년 제74회 총회와 2016년 제100회 총회에서 이에 대한 재결의를 확인했다. 예장 통합총회는 1958년 제43회 총회에서 ‘십자가 장치 및 형상을 만들어 붙이는 것을 금지한다’고 결의했지만, 1980년대에는 이를 뒤집어 ‘강단 내 십자가 설치를 권장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채택했다.

신학자들은 십자가 장식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더라도 그것을 바라보는 이들이 십자가 자체에 신비한 능력이 있는 것처럼 여기거나 자신을 지켜주는 도구로 여긴다면 우상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승구 교수(합동신대)는 “한국교회가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의도를 가지고 없앴던 것을 다시 점차적으로 교회 안에 가져오기 시작하면서 종교개혁의 정신을 망각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그는 “예배당 안 십자가를 비롯해 하나님과 관련된 형상을 없애야 한다. 그것이 정상적이고 성경적 교회”라며, “더러는 십자가를 보는 것이 은혜롭고, 예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다고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오직 성경’을 통해 예수님에게 가까이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교회가 십자가 자체를 우상화하는 것은 아니므로 최소한의 상징적 의미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김영한 박사(숭실대 기독교대학원 설립원장)는 “십자가 자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대속을 드러내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교회가 십자가를 우상으로 여기고 폐지해버리면 교회의 상징성 자체가 없어져 버릴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지나치게 보이는 형상을 우상으로 제한하고 제거하면 ‘성상파괴주의’가 되며, 교회 안에 기념할만한 어떤 기독교 문화도 남아있지 않게 된다”면서 “성상 자체를 신으로 여기는 것은 우상숭배이지만 그게 아니라면 하나의 ‘상징’으로 바라보고, 하나님에게 다가가기 위한 수단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우상숭배’ 하나님 제한에서 시작

십자가 외에도 그리스도인이 성물로 여기며, 우상화하기 쉬운 예가 있다. 일상 속에서 기독교적인 장식품이나 성경책을 지니면서 믿는 주술적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다. 예를 들어 카타콤 생활을 하던 교인들의 비밀신호인 ‘익투스’ 모형이나 십자가를 자동차 백미러에 부착함으로써 사고로부터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성경책을 머리맡에 두고 능력이 있는 것으로 은연 중에 생각한다면 자칫 2계명을 어기는 죄가 될 수 있다. 또 예수님의 사진이나 그림을 벽에 걸어두고 그것을 성스럽다고 여기는 경우도 있다.

이와 관련해 강영안 교수(서강대 명예교수)는 “물론 그것을 하나님으로 생각하거나 숭배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여기에 어떤 힘을 발휘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내 손으로 만져 보고 확인하고자 하는 욕망이 전혀 깔려있지 않다고는 말하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예수님 사진을 벽에 걸어 두고 보고싶어 하는 동기에 나무랄 수 없지만, 하나님을 어떤 방식으로든 그려 본다든지 하는 행태의 깊은 동기에는 쉽게, 가까이 하나님을 곁에 두려는 의도가 있다”고 덧붙였다. 중요한 것은 무한하신 하나님을 어떤 예술작품이나 인간의 언어를 통해 모두 담아낼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을 제한하는 것에서 시작되기 때문.

우리의 눈에 보이는 ‘형상’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이념이나 가치라도 그것을 믿고 숭배한다면 우상이 될 수 있다. 이승구 교수는 “외적인 것도 문제이지만, 우리 머릿속의 관념을 성경이 말하는 관념과 다르게 가지는 것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예를 들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무조건 ‘복 주시는 하나님’이라고 인식한다. 우리 생각대로 하나님을 규정하는 것도 우상”이라면서 “자신의 번영만을 추구하면서 ‘복 주시는 하나님’이라고 하나님을 제한하는 것도 우상숭배가 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하나님의 피조물인 사람을 하나님처럼 숭배하는 것도 2계명을 어기는 죄에 속한다. 김영한 박사는 “가톨릭교회가 마리아를 숭배하고 성인을 추앙하는 것처럼 교회의 목회자나, 교회의 직분 자체를 형상화하는 것도 제2계명을 범하는 죄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조직의 총회장이나 노회장, 당회장, 목회자와 장로 등의 교회 직분도 그 자체를 하나님처럼 숭배해서는 안될 것”이라며 “보이지 않는 것이라도 그것을 숭배할 때 우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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