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의 노병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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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의 노병은 말한다
  • 승인 2004.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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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이 짙어가는 싱그러운 6월, 만물의 생기가 신장하며 특별히 오순절 성령강림의 생명의 계절이건만 해마다 6월만 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6월이 영원히 씻을 수 없는 동족상잔의 민족 수난을 가져다 준 잔인하고도 치욕스러운 달이기 때문이다.

금년은 6·25 54주년이요 호국 현충 48주년이 된다. 현충일은 창군 이래 국토방위를 위해 전사·순직한 국군 장병과 애국 단체나 군 노무사의 충성을 기리기 위해 1956년부터 6월6일을 현충일로 제정하여 온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현충일이 무색할 정도로 쉽게 잊고 있는 부끄러운 현실 앞에 스스로 모멸감을 느낀다.

필자는 6·25 전란의 산증인이다. 1950년 11월23일 평남 덕천 전투는 중공군의 참전으로 인해 압록강·두만강까지 전격했던 국군의 전열이 하루 아침에 무너진 날이다. 적에게 겹겹이 싸인 포위망 속에서 1백20명의 특공대를 조직하여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온 12명 중의 하나인 십일조 군인이다.

아, 어찌 6·25를 잊을 수 있겠는가? 공산군의 불법 남침으로 수백만의 인재, 1,000만 이재민, 1,000만 이산가족을 내고 전 국토가 초토화된 무모한 전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와중에도 6·25 후에도 많은 북의 침략 야욕 속에서도 어르신들은 나라를 지켜주었으며 풍요로운 나라를 만들어주셨다. 그것은 생명과의 관계다.

그러나 오늘 반세기를 넘긴 조국의 현실은 과거의 고마움을 잊고 하나님의 돌보심을 잊고 있다. 나는 며칠 전 전쟁기념관에 서 구한 6·25 전쟁 실황 영상을 보면서 몇 번이고 울었다. 그래 맞다. 그 때 수많은 피값을 치르고 나라를 살렸는데 오늘은 왜 이렇게 대접을 못받고 있는지…. 풍요를 물려준 노부모를 비하하고 학대하는 윤리상실, 가정붕괴의 현실을 생각해본다.

분명히 잊어서는 안 될 역사 6·25는 북쪽 공산군의 남침이었다. 자녀들에게 바로 가르쳐야 한다. 왜곡된 역사관이나 감상적인 통일관도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과거는 용서하되 그 날의 원한은 있으면 안된다. 대한민국의 분단사는 분명히 제2차 대전의 강대국들의 술수에서 온 산물이기에 과거의 원한에서 벗어나 못 살고 가난한 북녘 동포를 가슴에 안고 미래의 통일 한국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통일 독일의 경험에 의한 서독의 일방적인 섬김을 우리도 배워야 하며, 성경에서 강조한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계명대로 인내로 사랑해야 한다. 풍전등화의 유대 민족을 죽으면 죽으리라 심정으로 금식하며 기도하여 살려낸 에스더의 애국 기도를 본받아 한국교회는 깨어 기도할 때라고 그 날의 노병은 서원대로 목사가 되어 간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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