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의 지혜는 ‘공의, 정의, 정직’을 체득하기 위한 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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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의 지혜는 ‘공의, 정의, 정직’을 체득하기 위한 수단
  • 유선명 교수
  • 승인 2020.02.18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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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명 교수의 잠언이야기 ③ - ‘행복, 지혜, 의로움’(잠 1:1~6)

행복을 위한 지혜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독자께서도 지혜는 반드시 의로움을 동반한다는 말에는 의아해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서로 충돌하는 가치들을 놓고 적절한 합의 내지 원만한 타협을 이루는 것이 지혜라는 통념 때문입니다. 

잠언 도입부는 책의 목적을 이렇게 설명합니다(원문을 더 잘 반영하도록 개역개정 성경을 조금 수정했습니다): “지혜와 훈계를 알고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공의와 정의, 정직을 위한 지혜의 훈련을 받게 하도록”(1:2~3) 즉 잠언서는 훈련을 위한 책이며, 그 훈련의 목적은 ‘공의, 정의, 정직’을 실천할 지혜의 습득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잠언서가 표방하는 지혜는 본질상 성공을 위한 처세의 능력이 아닌 ‘공의, 정의, 정직’을 체득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지혜이며, 그 세 항목은 우리가 ‘의로움’이라 부르는 포괄적 가치와 그 구체적 실천, 그리고 품성에 녹아든 반듯함을 각각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처럼 잠언서가 도입부에서부터 영적-도덕적 이상의 실현을 가능케 하는 인격의 형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은, 잠언의 지혜를 단지 우리 삶을 매끄럽고 풍요하게 해 줄 어떤 기술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영적인 지혜는 우리를 의로움으로 이끌고, 세속의 지혜는 우리를 의로움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야고보서는 사람의 마음에 시기와 다툼, 자랑, 그리고 거짓을 일게 하는 (소위) 지혜는 “위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며 ‘위로부터 난 지혜’는 성결과 화평, 관용과 양순, 긍휼과 선한 열매가 풍성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다고 말씀합니다(약 3:13~17). 앞서 보았던 잠언 말씀이 신약 교회의 맥락에서 생생히 나타난 실례입니다. 

지혜와 의로움은 물론 별개의 덕목이지만 한 사람의 인격 내에 동시에 실현될 수밖에 없는 동반자의 관계에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의로운 길을 택하기 마련이고, 의롭게 사는 사람은 결국 지혜로운 선택을 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지혜와 의로움을 이처럼 분리 불가능한 동일체로 묘사하는 것이 잠언이 보여주는 독특한 가르침입니다. 지혜가 제일이다, 지혜를 얻으라, 지혜의 유익은 이것이다… 수없이 강조하는 잠언들의 논리적 연결점을 짚어가다 보면 그 지혜는 결국 의로움의 추구를 통해서만 얻어지며 지혜자는 곧 의인임을 깨닫게 됩니다. 

잠언서를 통틀어 여호와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사랑하신다는 표현이 단 한 번 나오는데, 그 대상은 지혜자가 아니라 의인입니다: “악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공의를 추구하는 자(개역개정: 따라가는 자)는 그가 사랑하시느니라”(15:8~9) 의로움을 이루었기에 의인이 아니라, 의를 추구하는 사람이 곧 의인입니다.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십니다. 지혜와 결부된 부, 명예, 장수, 자손의 번영 등이 다 좋은 것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보다 더 중하고 본질적인 가치가 있겠습니까? 잠언서가 의인의 길을 점점 떠올라 환히 빛나는 정오의 햇빛에 비유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잠 4:18). 

잠언은 성공적이고 행복한 인생의 안내서가 맞습니다만 그 행복은 의로운 삶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지혜의 가르침입니다. 잠언이 즐겨 사용하는 “인생=길”의 비유를 빌자면, 목적지에 제대로 닿기 위해서는 속력보다 방향을 먼저 확인하고, 빠른 길보다 바른 길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백석대 교수·구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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