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속 인물 신석구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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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속 인물 신석구목사
  • 승인 2004.04.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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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초월한 대쪽 신앙절개

“4천년 전하여 내려오던 강토를 네 대(代)에 와서 잃어버린 것이 죄인데 찾을 기회에 찾아보려고 힘쓰지 아니하면 더욱 죄가 아니냐”

불과 11세에 향리서당의 훈장을 지내 정도로 명석한 두뇌를 가진 신석구목사는 품행을 어지럽힌 연상의 청년들에게 조차 훈계할 정도로 원칙에 충실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조선의 구원을 위해 감리교 왓슨선교사로부터 세례를 받아 기독교인으로 일평생 사역한 그는 위에서 밝힌 한마디 말을 통해 일제독립운동인 3.11운동의 신앙적인 결단을 드러냈다. 하나님이 주신 나라를 잃은 것도 죄일 터인데 그것을 다시 찾을 기회조차 외면한다면 어찌 죄가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한 대목이다.

1909년 개성선교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구령사역을 담당한 신석구목사는, 조선사람 한명씩 계속 전도하면 결국 조선 전체가 구원받는 기적이 일어날 것으로 확신했다고 한다. 3.1운동 33인 중 한명으로 투옥된 신목사는 “조선은 결코 일본을 위하여 결코 이권을 제공하는 나라가 될 수 없으므로 하나님의 마음으로 조선은 독립할 것”이라고 담대히 외쳤다고 전해진다. 1921년 만기 출옥한 그는 출옥직후 곧바로 전도활동을 벌였으나 일경의 감시 속에 검속되길 수차례, 모진 고문을 이겨야만 했다. 해방이후 북측에 진주한 소련군의 폭정과 소련식 이름명명 등 민족말살 저의가 발견되면서 그는 또 다시 ‘남북영구분단 획책하는 각종 선거 반대’ ‘식량 및 공장기계 물자 반출 반대’ ‘레닌강으로 바뀐 대동강 호칭복원’ 등 공산주의에 대한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 댓가로 신목사는, 1948년 4월19일 새벽 ‘반동결사죄’로 사형을 언도받았으나 반일운동을 치하한다며 10년형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공산주의자들은 6.25한국전쟁이 일으킨 후인 10월10일 총살형을 집행했다. 76세 고령의 나이였다.

신목사가 체포되기 직전 주변사람들은 신목사에게 월남을 권유했으나 그는 “북한에 있는 수많은 교역자들이 모두 월남하면 남아있는 성도들은 목자 잃은 양이 될 것이고 그러면 그들을 누가 계도할 것인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특히 그의 일화 중 원수사랑을 대표하는 것으로 “일본 놈”을 “일본사람”으로, “도둑놈”을 “도둑사람”으로 불러야 한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윤영호기자(yyho@uc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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