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몸어르신 우유배달…세상에 안부 묻는 작은 손짓이죠”

독거노인 고독사 막는 옥수중앙교회 호용한 목사 김수연 기자l승인2018.11.07 11:25:03l수정2018.11.07 17:51l14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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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학·복지에 우유배달까지…‘구제’는 그리스도의 지상명령
골드만삭스도 후원
필요한 재정 채우시는 하나님 

▲ 서울 옥수중앙교회 호용한 목사.

제법 날씨가 쌀쌀했던 11월의 어느 날, 서울 금호동 옥수중앙교회를 찾았다. 지하철역을 나서 교회로 가는 길은 갈수록 좁고 가팔라졌다. 지금은 재개발로 인해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지만 주변 곳곳에 여전히 남아 있는 낡은 가옥들은 한때 옥수동·금호동 일대가 유명한 달동네였음을 짐작케 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교회에 오르자 호용한 담임목사가 따뜻한 미소로 기자를 맞았다. 서울시 독거노인 1600여명에게 365일 신선한 우유를 전하고 있는 주인공이다.

호 목사는 별명 부자다. 어려운 이웃만 보면 눈시울이 붉어진다고 해서 ‘울보 목사’로 불리는가 하면 180ml 우유 하나로 홀몸 어르신들을 살뜰히 챙겨 ‘우유 목사’로도 통한다. 동네에서 그의 이름은 몰라도 별명은 한 번쯤 들어봐서 아는 이가 많을 터다. 그러나 일반 대중에게도 꽤나 알려진 ‘어르신들의 안부를 묻는 우유배달’ 캠페인은 사실 그가 베푸는 나눔의 작은 일부일 뿐이다. 구제는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말하는 호 목사를 만나 ‘장학’에 ‘복지’까지 숨겨진 사역들과 신앙고백을 들어봤다. 

하늘의 긍휼을 아는 마음
수원에서 목회하던 호 목사가 옥수중앙교회에 부임한 건 2001년이다. ‘가난한 지역’이란 얘기는 익히 들었지만 직접 심방을 돌기 전까지는 주민들의 생활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지 못했다. 이들 대부분 직업은 택배기사·가사도우미·일용직 노동자였고 독거노인이나 조손가정 아이들, 지체장애인도 적잖았다. 교인들의 집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눌 때 쥐가 나오는 일은 다반사, 곰팡내와 찌든 음식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무리 형편이 어렵다지만 그래도 명색이 서울인데…’라는 생각은 단번에 깨졌다.

지리적으로는 언덕 꼭대기라는 가장 높은 땅에 살지만, 경제적으로는 제일 낮은 자리에 있는 이들의 고단한 하루살이를 호 목사는 외면할 수 없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본인의 어린 시절도 함께 떠올랐다. ‘이들을 어떻게 섬길까’ 고민하던 찰나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다. 팔순잔치에 참석한 호 목사에게 노(老) 권사가 “새로 부임해 돈 들 일이 많을 텐데 보태 쓰시라”며 2000만원을 건넸다. 부임한 지 막 석 달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호 목사는 ‘이거다!’ 싶었다. “예배 때 성도들에게 ‘이 돈으로 장학사업을 해보자’고 했어요. 형편이 어떠하든 자녀들만큼은 잘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오죽할까 싶었죠.”

호 목사의 진심을 느낀 성도들은 너그럽게 마음을 열었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이들에게는 단돈 1만원도 큰돈이었지만 많게는 10~20만원까지 선뜻 내놨다. 그렇게 십시일반 모인 헌금 1500만원을 합치니 총 3500만원의 종자돈이 생겼다. 호 목사는 그길로 ‘장학회’를 만들어 다양한 복지사업을 펼쳤다. 300명 넘는 대학생들에게 등록금을 대주고 동사무소를 통해 전기세·수도세를 내줬다. 쌀·라면 등 각종 생필품을 전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어린이 도서관 사업, 연말연시 사랑의 떡국·김장 나누기 등 지원사격으로 불우한 이웃의 마음과 형편을 헤아렸다.

소문이 퍼지자 이곳저곳 멀리서도 도움의 손길을 보내왔다. “성경적 부(富)의 개념은 이웃의 궁핍과 아픔, 곤고함을 살피기 위해 존재합니다. 혼자 소유하고 즐기는 나만의 것이 아니죠. 따라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네 교회 내 교회 따로 없이 그리스도인이 지켜야할 당연한 명령입니다. 그런데 간혹 교회의 구제를 생색내기 혹은 경쟁수단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을 보면 가슴이 아파요. 저는 스타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목사 같은 목사로 살고 싶어요. 저로 인해 절망 중에 용기와 소망을 얻고, 신앙이 돈독해지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좋겠습니다. 그거면 충분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도 예수님처럼 사는 것입니다.” 

사랑, 세상과 통하는 길
시간이 갈수록 호 목사의 눈에는 자꾸만 ‘노인들’이 밟혔다. 등이 굽고 초라한 옷차림으로 폐지를 주우러 다니는 어르신을 볼 때면 끼니나 제대로 챙겨 드시는지 염려됐다. ‘행여 집에서 돌아가셨을 때 알아주는 이 없으면 어쩌나’란 걱정도 가득했다. 이때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가 ‘우유’였다. 칼슘이 부족한 어르신들의 건강에도 좋고 배달하면 안부도 물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였다. 방법은 간단했다. 이들 집에 매일 우유를 넣어주고 이틀 이상 문 앞에 쌓이면 배달원이 교회로 연락해주는 시스템이다. 우유를 소화시키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서는 요구르트나 두유를 드리는 등 세심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문제는 ‘재정’이었다. 때마침 사업을 통해 고수익을 올리던 처남이 매월 200만원씩 후원하겠다고 나섰다. 그렇게 2003년 우선 100가정을 대상으로 ‘365일 사랑의 우유 나누기’ 캠페인이 시작됐다. 이후 옥수중앙교회 성도이자 음식배달 앱 ‘배달의민족’을 창업한 우아한형제들 김봉진 대표가 기부에 합류했다. 김 대표는 호 목사가 부임할 당시 작은 음식점을 운영하던 가난한 집사부부의 막내아들이었다. 그는 사업 초반 적자에도 아랑곳 않고 우유배달 후원에 팔을 걷고 나섰다.

덕분에 지난 2015년 호 목사의 우유배달 사업은 전환점을 맞았다. 배달의민족에 투자 중이던 세계적인 회사 골드만삭스가 옥수중앙교회의 소식을 듣고 1억5천이란 거액을 기부한 것이다. 호 목사는 보다 투명하고 체계적인 재정관리 및 후원자들에게 소득공제 혜택을 제공하고자 사단법인 ‘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우유배달’을 설립했다. 자연히 개인·기업의 후원참여가 늘어났다. 현재는 성동·관악·금천·은평구 등 서울시 12개 구의 1600여 가정에 우유가 배달되고 있다. 한 달 우유 값만 무려 3600만원에 이른다.

“사랑은 국경을 뛰어넘는다는 말이 있는데 구제도 마찬가지였죠. 이익과 경제 논리를 따질 수밖에 없는 기업들이 화려하지도 않은 일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아니고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천하보다 귀한 한 생명을 살리는 일을 위해 하나님이 후원자들의 마음을 움직여주신 거죠. 세상 사람들은 지상에서의 삶만 의미를 부여하지만, 마지막 날 ‘하늘나라 청문회’를 기억한다면 결코 곤경에 처한 딱한 이웃을 내버려둘 수 없습니다.”

이웃 섬김에는 ‘정성’이 필요하다. 그래서 호 목사는 우유를 받는 독거노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우유가 잘 배달되는지, 불편한 것은 없는지를 꼼꼼히 묻는다. 두 달에 한 번씩은 편지도 쓴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다. 편지를 보낸 주간은 사단법인 사무실 전화가 불이 난다. 대개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우유에 편지까지 보내줘 고맙다는 내용이다. 감사한 마음을 담아 소정의 헌금과 답장, 선물을 보내는 이도 있었다. 처음엔 의아해하던 어르신들도 이내 “자식이 못하는 일을 교회가 다 한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우유배달은 교회가 세상에 안부를 묻는 작은 손짓입니다. 교회가 세상과 소통하는 수단도 세상을 살리고 변화시키는 힘도 모두 ‘사랑’이라고 믿어요. 나눠주고 퍼줄수록 더 풍성해지는 게 사랑의 신비로운 속성이죠. 안타까운 건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1년에 100가정은 우유지원이 중단·교체된다는 겁니다. 대부분 요양병원에 들어가는 등 건강에 이상이 생겼기 때문이죠. 이 중 5~10명은 진짜 고독사로 발견돼요. 상당수는 자녀들이 있어 기초생활수급자에서 제외됐지만 자식들이 전혀 찾아오지 않아 방치된 삶을 살아가는 경우입니다.” 

하늘에 쌓는 보화
노인들의 고독사 방지를 위해 수고한 옥수중앙교회는 지난해 ‘서울시 봉사상’ 대상을 수상했다. 여기에는 호 목사의 솔선수범으로 교회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새롭게 한 점도 인정됐다. 장학·복지사역에 쓸 돈은 교회 경상비와 별도 계좌로 철저히 관리하고 사용내역도 주보를 통해 투명하게 공개한다. 성도 수 500여명의 교회지만 호 목사는 관리집사 한 명 두지 않고 직접 정수기를 닦고, 성경과 찬송가를 정리한다. 으레 사단법인을 만들면 사무실·인력 비용이 드는데, 호 목사는 사무실도 교회당 내에 설치하고 사무도 교역자에게 맡겨 담당토록 했다. 한 푼이라도 교회 경비를 줄여 구제에 보태자는 마음에서다. 

“교인들이 쓸 거 안 쓰고 먹을 거 안 먹고 모은 헌금을 허투루 낭비해서는 안 되죠. 그리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다고 하지만 사실 저는 나름 누릴 것은 다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기도제목이 있다면 하나님 말씀을 조금이나마 실천하고픈 평범한 목사이고 싶습니다. 가난하게 살지는 못해도 가난한 마음으로라도 살고 싶다는 바람이죠. 넉넉한 만큼 이웃을 섬기는 규모는 클 수 있지만, 세상에 감동을 끼치는 것은 예상만큼 녹록하지 않거든요. 가난하고 겸손하고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에서 기독교는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습니다.”

호 목사는 무엇보다 이 모든 사역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동참해준 교인들 덕분이라며 공을 돌렸다. “우리교회의 구제사역이 알려지면서 칭찬을 받을 때면 부끄럽습니다. 내 전 재산을 털어서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더욱이 마음으로 하나 돼 사역에 같이 뛰어들어 준 우리 성도들이 없었으면 절대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래서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끝으로 그의 비전과 꿈을 물었다. “서울시 25개구 전역에 있는 독거노인 모두에게 매일 우유로 안부를 묻는 게 꿈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더 가난한 사람을 돕고, 이를 통해 살 맛 난다며 뿌듯함을 느끼는 게 신앙의 힘이자 복음의 결실 아닐까요.” 

김수연 기자  ksy@igood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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