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면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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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면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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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8.30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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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일 목사/흰돌교회

어린 시절 고구마를 캐던 추억은 지금도 가슴시린 한 폭의 그림으로 남아있다.
고구마 밭을 가지고 있었던 우리 가족들이 앞에 서면 저 만치 가난한 이웃들이 조심스럽게 따라 들어와 이삭을 줍곤 했다. 그 장면은 마치 밀레의 ‘이삭줍기’를 연상케 하던 모습이었다.

 당시 이삭을 줍는 이웃들은 꽤나 소심했고 집주인의 눈치를 보면서 조심조심 따라오며 미처 캐지 못한 작은 고구마들을 바구니에 담곤 했다. 때론 구박도 받았다. 너무 가까이 따라 오지 말라고, 시끄럽게 떠드는 애들은 나가라는 소리도 들어야 했다. 그러나 돌아가신 선친은 유난히 정이 많으셔서 늘 우리들에게 부탁을 하셨다. 어려운 사람들이 이삭을 주우러 오면 함부로 대하지 말 것, 물과 새참을 함께 할 수 있게 할 것, 그리고 이따금씩 상태가 좋은 큰 고구마는 일부러 흘려 놓으라고 하셨다. 어쩌다 큰 고구마라도 나오면 착하기만한 우리의 이웃들은 마치 자수를 하듯 양심선언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여기 큰 고구마가 있는데, 어떻게 하죠?”

이렇게 우리 어릴 적 주변을 살펴보면 온통 가난 냄새가 사방에 가득했다. 너 나를 막론하고 어려웠으니 동변상련의 가치는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의 삶이 되었고 그래서인지 함께 웃고 울면서 서로 도우며 살았다. 그야말로 변변찮은 밀가루빵 한 조각도 서로 나누며 함께 하면서 저절로 ‘우리’라는 단어에 익숙했던 것이다. 그리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끊임없이 예배당을 찾아 나섰다. 믿든 안 믿든 전 국민이 새벽종소리를 알람처럼 들으며 일어나야 했고 일상을 시작해야 했다.

일반인들의 삶이 지난하고 가난하니 교회도 자연스럽게 어려운 상태에서 벗어나기
가 쉽지 않았지만 그 대신 기도는 간절했고, 예배는 뜨거웠다. 그 때 우리 기도의 대부분은 현실의 가난을 벗어나는 것이었고 실컷 배부르게 먹고 마실 수 있으면 그 이상의 소원은 없는 듯 주님을 찾았다. 이제 우리는 그 기도의 대부분을 들어 주신 하나님의 은총 속에 살고 있지만 지금 우리는 그 하나님을 외면하고 살려고 한다.

점점 주님과 거리가 멀어져만 간다. 복지국가라 이름 지어진 저 유럽이 잘 살게 되면서 하나님을 떠난 처참한 모습이 우리들 속에 재현되고 있으니 기가 막힐 일이다. 교회와 주님을 외면한 유럽인들이 축구를 비롯한 각종 경기장에서는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으니 어쩌면 좋을까!

가난한 집사가정이 있었다. 네 식구가 서로 다리를 뻗을 수 없을 만큼 좁은 지하방에서 오직 주님을 벗 삼아 행복한 신앙생활을 했다. 예배를 사모하고 교회가길 손꼽아 기다렸다. 동시에 가난을 벗어나게 해달라고 눈물로 기도했다. 한 참의 세월이 지난 후 기도가 응답이 되어 보기 좋은 아파트를 갖게 되었고, 식구들은 저마다 한 방씩을 차지하며 신나했다. 그러나 그러면서 희한한 일이 이내 벌어졌다.
여유가 생기면서 주말나들이를 자주 가기 시작하더니 이내 주일까지 그 기분을 이어가고자 했다. 큰 교회를 찾아 이른 예배를 가볍게 해 치우고(?) 전국 사방을 찾아 여행에 중독이 되면서 주님은 급기야 밀려나고 만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래도 영적 감각이 남아있던 아내가 남편과 자녀들 앞에 눈물로 고백하며 회개하자고 했다. “우리 옛날로 돌아가는 게 낫겠어요. 그 때 우린 가난했지만 예배가 살아 있었고, 눈물로 찬송하며 주님을 사랑했지요. 시간가는 줄 모르고 기도했고…근데 요즘 우린 찬송을 해도 기도를 해도 감각이 다 사라지고 말았어요”. 한 여인의 소리를 하늘의 소리로 들었던지 가족들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가슴을 치기 시작했고 병든 신앙은 다시 회복이 되었다. 어느 정도 살아야 잘 사는 것일까? 아니 잘 살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역사가 주는 교훈이 있다. 잘 살면 하나님을 떠난다. 잘 살면 영혼은 곧 병든다. 잘 살면 신앙은 흉내 내기로 전락한다. 더 이상 잘 살게 해달고 기도하는 것은 망하게 해달라는 것과 거의 다를 바 없다. 잘 살기보단 주님께 매여 있기를 기도하자. 나무와 가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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