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담긴 도시락이 얼어붙은 세상 녹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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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담긴 도시락이 얼어붙은 세상 녹여요“
  • 승인 2003.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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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푸드에 밀려 도시락이 냉대받는 요즘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이 고스란히 담긴 한그릇의 따뜻한 도시락이 있다.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해주고 주린 배를 부르게 하는 사랑의 도시락. 월드비전의 지원을 받아 올해로 3년 남짓, 정성을 가득 담아 어둡고 낮은 곳에 새 희망과 사랑을 전달해 주는 충북 제천의 ‘사랑의 도시락 사업장’을 찾았다.

점심시간 종이 울리기가 무섭게 책상위로 도시락을 펼쳐 놓았던 시절이 있었다. 보온도시락이 나오기 전 계란후라이를 뒤집으며 난로위에 올려놓곤 했던 양은 도시락. 시래기국, 미역국, 계란국도 등장하며 실내화 주머니에 보온도시락 하나들고 은근히 버길수 있었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한번쯤은 모두다 도시락에 담긴 따뜻한 밥 한 숟가락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패스트푸드에 밀려 도시락이 냉대받는 요즘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이 고스란히 담긴 한그릇의 따뜻한 도시락이 있다.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해주고 주린 배를 부르게 하는 사랑의 도시락. 월드비전의 지원을 받아 올해로 3년 남짓, 정성을 가득 담아 어둡고 낮은 곳에 새 희망과 사랑을 전달해 주는 충북 제천의 ‘사랑의 도시락 사업장’을 찾았다.

제천 사랑의 도시락 식당안으로 들어서자 모락모락 밥솥의 김과 함께 맛깔스런 반찬이 식당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150개의 도시락을 준비하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세명의 자원봉사자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신승이권사(영앙사), 김인숙성도(자원봉사자), 성경화사모(벧엘중앙장로교회)가 음식장만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모두 이웃을 위해 꾸준히 봉사를 하고 있는 축복의 손길들이다. 2003년전 이 땅에 태어나 어려운 이웃들에게 사랑과 섬김을 몸소 보여주신 예수님. 그 예수님을 섬기듯 이웃을 섬기는 이들은 참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주일을 한결같이 기쁜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며 자원봉사를 하고 있지만, 항상 즐겁게 봉사하는 이들에게 늘 보람만 있는 건 아니다.

“한 개의 도시락으로 세끼니를 해결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도시락을 기다리는 이들 중에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거나 슬픈 생각이 날 때면 술과 함께 시름을 삼키느라 도시락을 그대로 두고 한끼의 식사도 하지 않는 사람도 있죠. 음식이 고스란히 담긴 도시락을 다시 수거해야 할 때면 마음이 무거울 수 밖에 없어요”

서운함을 토로하는 신승이 권사는 그래도 수혜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를 묻는 것이 주요 일과다. 만들어준 음식을 맛있게 먹게 하자면 어떤 것을 좋아하는 지 알아야 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서운함보다 사실 보람이 더 큰 것도 이들이 봉사를 그만 둘 수 없는 이유다.

앞도 제대로 못보는 할아버지가 도시락 배달이 올 때면 손수 물을 끊여 생강차를 대접해 주시고, 더운 여름 사과를 깎아 시원하게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과일을 대접해 주시는 할머니도 계시다.

도시락속에 고사리손으로 적은 감사 편지가 담겨 있을 때면 봉사자 모두 기뻐 어쩔 줄 모른다. 무관심과 외로움으로 닫혔던 마음들이 도시락에 담아준 사랑을 통해 어느 순간 활짝 열려 있었다. 가슴 아픈 사연과 보람되고 기쁜 일들이 교차되어 일어나지만 진정한 섬김의 마음으로 서로를 아끼며 사랑의 도시락을 전달해주는 끈끈한 이웃이 되어가고 있었다.

제천 도시락 사업장 총무로 실무와 배달봉사를 도맡아 하고 있는 김현수전도사(29·동산감리교회). 이웃을 섬기는 것이 좋아 낮은 자리에서 도시락과 동거동락하며 사랑을 전하고 있는 김전도사는 매일 150개의 도시락을 직접 배달한다.

묵묵히 아들을 바라보며 도시락 차량을 운전하시는 아버지 김진완장로(동산감리교회) 역시 든든한 후원자다. 오후 3시가 넘은 시간, 사랑의 배달부들과 함께 도시락을 들고 수혜자가정에 방문을 시작했다.

논밭길을 달려 찾아간 곳은 신호균(65)할아버지 댁. 늦은 시간까지 점심도 먹지 못한 채 도시락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콘크리트에 벽지조차 없는 방안은 검은 곰팡이가 가득차 있었고 집안에 쫙 펼쳐진 냉기는 마음조차 얼어붙을 것 같이 너무도 차가왔다. 추운 겨울 아직까지 난방조차 되지 않는 방에 15살된 손자 승섭이가 누워 있었다.

3살이 되기전 심한 충격을 받아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승섭이는 차가운 바닥에 누워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함께 방문한 김진완장로가 옆에 있던 멜로디언을 꺼내 들고 연주를 시작했다.

적막이 흐르던 캄캄한 방안에 은혜로운 찬송가 연주가 시작된지 얼마나 지났을까. 한마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승섭이는 온갖 힘을 다해 멜로디를 따라 ‘라라라 루라라' 정확하지 않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 노랫소리는 승섭이가 낼 수 있는 유일한 소리란다. 특수학교에서 조차 왕따를 당한 승섭이는 매일 찾아주는 김장로 부자가 유일한 친구다. 따뜻한 한끼 식사보다 어쩌면 찾아주는 이가 있어 더 기다려 지는지도 모른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이동한 곳은 장애우 김미월씨댁. 오른팔이 없는 장애로 음식을 조리할 수 없는 김미월씨는 도시락이 오기를 기다렸는지 문밖까지 나와 인사를 하며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하루종일 아무 흔적조차 없는 적막한 곳에 사람들의 발걸음은 소리만 들어도 반가운 손님이리라. 난방이 안되는 얼음같은 방, 햇볕 한 줌 없는 방은 어둡고 하얀 입김이 서릴 정도로 추웠다.

“이놈의 목숨은 왜이리도 질긴지… 몇차례나 여러가지 방법을 다 써가며 약을 먹고 목을 매어 죽으려 해도 죽지도 않고, 사는 게 너무 힘들어…”하며 자신의 삶을 털어놓았다.

알콜중독인 아들과 남편, 삶의 끝자락에서 풀 한포기 잡을 힘조차 없어 낙망하고 좌절된 생활, 불편한 장애를 안고 힘들게 생활고를 버티며 이어가는 삶은 고통의 연장이었다. 단돈 2백만원이면 임대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지만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에겐 잡을 수 없는 꿈에 불과했다.

항상 슬픈 눈을 하고 있는 김미월씨는 그동안의 아픔과 상처로 인해 터져버릴듯한 사연을 꺼내며 연신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았다.

“고마움을 말로 표현을 못하죠. 늘 얼마나 감사한지…” 방 한구석에 놓인 텅빈 밥상엔 따뜻한 한그릇의 도시락이 자리하고 있었다.

김미월씨 집을 떠나 3분쯤 달리자 우경분(70)할머니와 함께 살고있는 세자매 조아현(6세), 아라(8세), 성희(10세)네 집에 다다랐다.

차디찬 냉방에 굴속같은 어둠을 벗삼아 맨발로 추운지도 모르고 뛰어놀고 있는 모습속엔 어두움을 밝게 빛으로 바꿀 줄 아는 지혜가 담겨있었다. “이건 언니가 받은 상장이고요 이건 내가 받은거에요.” 둘째 아라는 김전도사에게 자랑하느라 바쁘다. 김전도사는 아이들이 불편한 것은 없는지 필요한 것은 뭐가 있는지 꼼꼼히 챙긴다. 부모없이 할머니와 함께 살고있는 아이들에게 희망의 도시락이 되어줬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이 솟아 올랐다.

이곳 제천 역시 도시못지 않게 가정해체가 가속화되고 있다. 도시락을 전달 받는 수혜자 가정은 대부분 노인과 어린 손주들이 가족을 이루고 있다. 부모의 이혼과 가출이 그 이유다. 가슴아픈 사연들과 부모의 사랑을 일찍 떠나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할 운명에 처한 아이들, 차가운 날씨와 함께 꽁꽁 얼어붙은 가슴과 많은 상처들로 슬픈 삶을 이어가는 이웃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었다.

예수님이 이 땅에 내려와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을 보여주셨지만 우리는 그 사랑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지 못하는 것 같다. 아직도 가난과 외로움에 내동댕이쳐진 이웃이 많음은 우리의 기도가 부족했기 때문일 터….. 마음도 날씨도 차가운 겨울. 좌절과 낙망으로 힘없이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나누어줄 사랑이 절실했다.

“하루종일 인적조차 없는 삶 속에 도시락이 올 시간을 기다리고 사람의 정을 기다리는 수혜자들이 많죠. 수혜자의 대부분이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고있는 어린 아동들이에요. 힘겨운 생활고와 오랜 세월 쌓여온 상처들로 인해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단단히 얼어붙었지만 몇해를 거듭해 함께 이어온 사랑의 도시락은 어느새 상처도 사라져 버리게 해 주지요. 한번씩 찾아와 말동무가 되어 주고 이들의 얘기를 들어줄 수 있는 마음만 있어도 모두들 너무 좋아합니다." 김전도사는 수혜자들의 얼굴에 쌓여진 사연과 주름들, 한시름 잊을까 넣어 삼키는 술과 고난까지 모두 다 사랑하는 법을 배운 것 같았다.

도시락 사업장은 연말에 몇해동안 함께 해 온 수혜아동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작년엔 롯데월드에 다녀왔어요. 올해는 눈 썰매장을 가볼까 생각중이에요.” 김전도사의 미소 속엔 문밖의 세상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한가지라도 더 보여주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가득 담겨 있다.

“수혜자들을 위해선 가정방문 조리와 재가 복지가 더 필요한 것 같아요. 지금은 도시락을 전하지만 앞으로는 생활 전반을 돌보는 사역을 하고 싶습니다.” 이웃을 향한 김현수전도사의 계획속엔 진정한 사랑이 녹아있었다. ‘이웃을 생각하고 헌신하는 이름모를 발자국'으로 그들곁에 남고 싶어하는 마음이 엿보였다.

자원봉사자들의 일정이 빼곡히 적힌 도시락사업장 칠판엔 ‘오늘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무 조건도 달지 않고 그저 하나님 아버지만 생각하며 기뻐하게 하소서’란 기도문이 적혀있었다. 조건없는 사랑으로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을 닮고자 하는 봉사자들의 기도였다.

기쁜 마음으로 이웃을 섬기고, 사랑으로 얼어붙은 마음을 녹일 수 있는 따스한 믿음이 우리들 가슴에 넘치는 그런 성탄이 그립다. 올 성탄절은 어렵고 힘든 이웃을 위해 세상 사람 모두가 따뜻한 사랑과 관심으로 포근한 열매를 맺길 소망한다.

섬김의 삶을 직접 보여 주시며 많은 기적을 남기신 예수님과 같이 작은 도시락에 사랑을 담아 전달해 주는 감사한 손길들을 통해 어두운 세상이 환하게 빛나는 기적이 또한번 일어나길 기도해본다.

<충북 제천 = 김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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