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통일의 미래보며 '통일선교' 집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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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통일의 미래보며 '통일선교' 집중을"
  • 승인 2003.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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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나라는 격동의 시기를 맞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북핵으로 촉발위기를 배제할 수 없는 전쟁가능성과 이에따른 우리나라의 국론분열 현상이 나타나 위기의 시대라고 불리울만 하다.

패권주의를 드러내고 있는 미국 부시행정부와 지역분할주의를 주창하며 패권야욕을 서서히 보이는 중국, 일본 등 국제정세는 이제 미국도 선제공격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반도 통일과 평화는 단순히 통일한국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하심으로 이해돼야 마땅하며 따라서 ‘성서한국’으로 방향지워져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퍼지는 상황이다.

미국은 지금까지 북한의 핵시설에 대한 군사적 공격을 포함하여 모든 가능한 방안을 놓고 고심해 왔다. 최근의 움직임을 보면 북한의 핵무기를 묵인하면서 해상봉쇄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중국은 지난 10년 동안 가장 빠르게 성장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경제발전에 전력투구해야 하기 때문에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러시아는 시베리아횡단철도 사업의 경제적 이해가 맞물려 있어 핵협상과 경제지원을 연계하기를 원하고 있다. 러시아는 공개적으로 미국의 강경입장에 반대하고 있다.

일본은 점점 독자적인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다. 미국보다 앞서 2002년 9월 북한과 수교를 위한 정상회담을 추진하였다. 고이즈미 수상의 선도적인 대북접촉으로 북일관계가 급진전되자 미국은 2002년 10월 초 평양을 방문하여 핵문제를 터뜨린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은 핵문제를 풀어가야 하는데,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첫째는 탈냉전 이후 새로운 위협세력으로 등장한 소위 ‘불량국가’들의 문제이다.

둘째로, 미국이 세계전략을 추진하는 또 하나의 중심고리가 있는데, 그것은 대중국 정책이다. 미국은 1단계로 주변국가들을 중국으로부터 봉쇄하여 대외진출을 차단하고자 한다. 남쪽으로 베트남과 인도, 서쪽으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란, 이라크, 동쪽으로 북한과 같은 나라들을 친미국가로 만들어 중국을 봉쇄하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은 중동지역의 석유에 현재 60%를 의존하고 있는데, 2010년에는 80%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중동진출을 차단하여 화교와 회교가 연대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한다. 그리고 2단계로는 구소련에 했던 것처럼 변방민족들을 독립시키는 분열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다. 신장, 위구르의 독립은 이런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교회는 미국과의 신뢰를 지키고 신앙적 연대를 유지하기 위해 미국과의 관계를 적절하게 강조해 나갈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지나치게 ‘친미’적이라든가 ‘반민족적’이라고 비춰진다면 통일이후 한반도에서 복음전파는 매우 힘들 것이다. 대륙으로 통하는 확 트인 세상, 열린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 민족이 중국과 몽골, 중앙아시아의 여러 민족들과 자유롭게 왕래하고 교제하면서 세계로 뻗어나가도록 우리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좁은 땅덩이에 갇힌 우리 국민들을 해방시켜야 한다. 불안과 불신의 굴레에서 우리 국민들을 자유케해야 한다.

요즈음 대북관계와 관련하여 다양한 목소리들이 있다. 혹자는 구제를 강조하는 반면에 혹자는 인권을 역설한다. 혹자는 사랑을 외치는 반면에 혹자는 정의를 부르짖는다.

현재 외부에서 지원하는 물품들의 상당 부분이 군대용으로 전용되거나 아니면 장마당으로 빼돌려져 군인, 당간부, 보위부원 등 북한 체제의 기득권층이 치부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쌀도 그렇고 의약품도 마찬가지이며 원유도 예외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군인들 역시 심각한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는 만큼 식량 지원을 중단하지 말고 계속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북한 주민들에게 구호 물품을 보내는 것과 함께 남한 사람들의 사랑의 마음을 알리는 것을 병행해야 한다. 물론 이것은 북한 정권을 궁지에 몰아놓기 위한 선전과 공작의 차원에서 적대적인 메시지를 북한에 들여보내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남한 사람들이 북한 주민들에 대해 동포로서 애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서는 앞으로 화해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진실을 알리는 일을 회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은 복음을 들을 수도 전할 수도 없다. 그나마 라디오로 외국 방송이나 기독교 방송을 들으려면 인생을 건 모험을 해야 한다.

북한 정권은 기본적으로 인권 개념이 없다는 점에서 외부 개입은 더욱 절실하게 요청된다. 공산주의가 망해야 그제야 기독교 복음의 선교가 가능하고, 통일이 된 후에야 비로소 우리교회가 그 뭔가를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성경이 말하는 복음의 진정한 이해와는 거리가 먼 안일주의 처세술이다.

다가올 통일을 준비해야하지만, 이미 분단의 장애와 아픔을 짊어지고 극복하면서 통일을 역동적으로 준비하는 적극적 교회여야 한다.

독일 통일에 있어서 독일교회의 역할에 대해서 연구하다 보면 아주 중요한 말을 발견하게 된다. ‘실천적 대화’와 ‘섬김의 신학’이라는 말이다. 무슨 말인지 물론 궁금할 것이다.

두 단어는 무신론적 동독을 향해서 서독교회가 가졌던 일종의 사랑의 철학으로,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서독교회가 동독과 나눴던 ‘실천적 대화’는 ‘섬김의 신학’이 전제될 때만이 가능했다.

독일 교회는 정치와는 다른 분야에서 자신의 고유한 할 일을 찾아 통일 전 독일이 하나되는데 많은 노력을 했으며, 통일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독일의 통합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럼에도 통일의 기쁨보다는 실망과 좌절을 맛보고 있다는 보도와 글들이 나오고 있음을 본다.

통일 후 13년이 지난 이 시점에 와서도 특별한 달라짐이 없는 독일 교회의 현실을 듣게될 때 우리는 우선 당혹 감을 맛 보게된다. 아니 독일이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놀라움이 교차한다는 말이다.

독일교회의 통일을 전후로 한 역할에 대해서 대충 네 가지 면에서 한국교회에게 좋은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첫째, 독일 통일 전 독일교회의 동독을 향한 신실한 사랑의 역할이다. 둘째, 통일 후를 위한 독일 교회의 통합화에 있어서의 과업이다. 셋째, 통일 전, 민족의 통합화를 위한 독일교회의 예측과 준비이다.

넷째, 그럼에도 예측 불허의 수많은 일들이 너무도 복잡하게 얽혀져서 통일 후 독일 교회의 통합화를 위한 어려운 문제로 드러났다면, 과연 어떠한 문제들이었으며, 어떠한 노력을 하였는지 연구해야 한다. 다섯째, 독일교회의 지금까지의 통합화 노력이 한국교회에 어떻게 적용 가능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정리=윤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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