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사후 약방문은 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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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사후 약방문은 늦다
  • 손동준 기자
  • 승인 2016.10.03 01: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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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일 예배를 마치고 교회를 나서는 길. 검은 바지에 하얀 블라우스를 단정하게 차려입은 다수의 청년들이 예배당 앞에서 귀가하는 성도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고 있다.

거기에는 ‘목사님을 믿나요 하나님을 믿나요. 성도님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 권리가 있습니다’라고 적혀있었다.

신천지였다. 이들이 몸에 두르고 있는 띠가, 들고 있는 플래카드가 이들의 정체를 말해주고 있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신천지는 이런 식으로 포교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신천지가 교회 안에 몰래 숨어들어 이른바 ‘산 옮기기’를 한다는 흉흉한 소문이 파다했을 뿐, 정체를 드러내고 이렇게 양지로 나서지는 못했다.

교회를 나서는 여러 성도들이 얼굴을 찌푸리고 불쾌감을 표현하지만, 하얀 옷의 청년들은 되레 미소를 지으며 더 적극적으로 유인물을 나눴다.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벌써 몇 주째 주일이면 교회 앞에서는 이런 살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예배 시간, 담임목사님이 법적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한 지 몇 주가 지났지만 유인물 살포가 계속 되는 걸 보니, 아직 뾰족한 수를 찾지는 못한 것 같다.

신천지 교인 수가 이미 14만 4천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자기들의 교리에서 말하길 천년왕국을 누릴 사람이 14만 4천명이라는데, 이제 공석이 없는 셈이다. ‘진정한 신천지 교인’이 되기 위한 경쟁도 예상해 볼 수 있다.

얼마 전 SNS를 켰다가 또 한 번 놀랐다. 함께 네팔 단기선교를 다녀왔던 동생의 메신저 프로필에는 지난 18일 서울 잠실주경기장에서 열린 신천지 행사장에서 찍은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얼마나 예쁘게 찬양하고 기도하던 청년이던가. 주변에서 손꼽힐 만큼 예수를 사랑하던 청년이었다. 진심으로 행복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그 친구의 사진을 보면서 뭔가 크게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이 청년을 신천지로 향하게 했을까.

신천지 해법은 갈수록 복잡해져만 가는데, 한국교회는 분열을 거듭하며 자충수를 두고 있다. 신천지는 우리 목전까지 다가와 청년들을 미혹하고 있다. 지난 가을 교단총회에서 각 교단들은 한교연과 한기총 통합을 추진하기로 결의했다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된 결실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지금처럼 각개전투만으로는 이단 사이비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데 충분하고도 남을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사후 약방문은 늦다. 더 늦기 전에 외양간을 단단히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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