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주신 것 돌려드렸을 뿐"
상태바
"하나님이 주신 것 돌려드렸을 뿐"
  • 승인 2003.09.07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험난한 길을 선택한 사람은 길을 가면서 자신의 욕망을 버리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고, 평탄한 길을 선택한 사람은 길을 가면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일에 즐거움을 느낀다. 전자는 갈수록 마음이 너그러워 지고 후자는 갈수록 마음이 옹졸해 진다.

오래전에 읽었던 이야기다. 지금은 저자와 책 제목도 기억나지 않지만 저자는 권력, 돈, 욕망을 버리는 삶이 진정으로 아름답다고 했다. 무엇이든 많이 채워야 성공했다고 판단하는 현대인의 가치관과는 거리가 먼 얘기였다. 목회자가 구속되는 요즘 상황에서 이 말이 절실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욕망을 버리는 성숙한 신앙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삶의 가치기준으로 삼고 평생 자신의 욕망을 버리는데 노력한 사람. 자신이 평생 교목생활로 모은 재산과 사모가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모은 6억1천만 원으로 교회를 짓고 감리교본부의 유지재단에 기증한 최화병목사(팔복교회, 61세). 그는 “돈은 살기위해 필요한 것이지 목적이 되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전원일기에서나 나옴직한 논과 밭이 펼쳐져 있는 용인 양지마을. 자연과 하나 된 팔복교회에서 최목사도 조금씩 자연을 닮아가고 있었다. 녹차 냄새 그윽한 교회 휴게실에서 최목사는 녹차를 달여 주었다. 감미로운 녹차를 별로 말도 없이 내리 여러 잔 받아 마셨다.

최목사는 ‘차도’를 아느냐고 묻는다. 차도는 ‘화경청적’이어서 차를 마시는 자리에는 싸움 없는 평화와 존경심, 사색만 있다고 말한다.

훌륭하신 일을 하셨네요? 라고 어렵게 말을 건넸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당연히 하나님께 그대로 돌려 드렸을 뿐인데 야단법석이라고 대답한 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자신의 것을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가 걱정하는 것은 돈이나 권력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을 까이다. 사람들이 정한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한 기준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그의 마지막 목표다. 많은 교인과 많은 사례금을 받는 목회자가 성공한 목회자로 판단되는 가치관 속에서 그는 어떤 목회자가 진정으로 성공한 목회자인지를 가르쳐 주고 있다.

그가 교회를 짓고 기증하기로 한 것은 기관목사로 꼬박꼬박 월급만 받으면서 살았던 것이 못내 아쉬웠기 때문이다. 비록 평안한 여생을 보내도 될 만큼 평생을 보람되게 살았지만 그래도 인생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상급을 생각하니 이렇게 편안히 인생을 마감할 수 없었다. 한 생명이라도 더 구원하는 일에 자신을 바치고 싶었다. 그는 교회를 건축하여 ‘진짜교인’을 길러내기로 결심했다. 퇴직금을 모아 땅을 구입했고, 살던 집을 교회의 벽돌을 사는데 사용했다. 아이들이 미래의 꿈을 키울 수 있는 교육관과 선교사 게스트하우스를 짓는데 사모의 퇴직금을 사용했다. 이렇게 팔복교회는 최목사 부부에 의해 완성됐다.

자신의 퇴직금으로 교회를 짓고 본부에 기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요즘 최목사는 고민에 빠졌다. 혹시 이것으로 인해 자신이 교만해질 것 같아서다. 자신의 하찮은 공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하다. 그러나 최목사의 꿈은 소박하고 작다. 목회자가 목회자답게 권위를 회복하고 교인이 교인답게 선행을 하는 것이 전부다.

“목회자가 수단 좋은 사업가로 인식될 만큼 권위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목회자들의 권위를 회복해 주고 싶습니다. 세상적인 잣대로 목회자들이 평가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교역자들이 청빙을 받으려면 교인들 앞에서 설교 시험을 치러야 합니다.

저는 그런 교회는 절대 가지 말라고 합니다. 고약한 짓입니다. 취직으로 생각하는 세속적인 잣대가 교회에 깊숙이 침투했습니다. 이런 풍토는 빨리 없어져야 합니다. 목회자를 존경하지 않으니까 교회가 분열하고 욕을 먹습니다.”

30년 동안 그를 따라다닌 이름은 ‘도시락 먹는 목사님’이다. 이는 30년 동안 학생들과 함께 도시락을 먹는 바람에 붙여진 이름이다. 도시락과 얽힌 이야기만 해도 하루 종일 걸릴 정도란다. 교생 실습 때 도시락을 함께 먹었던 교생이 최목사의 후임자로 올 정도로 도시락과 얽힌 사연은 많다.

최목사가 도시락에 애정을 갖는 것은 도시락이 아내의 사랑 또는 어머니의 정성이 담긴 밥상이기 때문이다. 최목사에게 있어서 도시락은 단순히 한 끼의 식사를 넘어서 ‘사랑의 연결고리’이다. “도시락은 생명이 있습니다. 요즘 이런 소중한 문화들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학교급식을 반대합니다.

장사꾼들이 급식을 하니까 애들이 제대로 못 먹습니다. 밥을 팔아 이익을 남겨야 하기 때문에 잘못된 것입니다.” ‘문제어른’은 있어도 ‘문제아이’는 없다고 말하는 최목사. 어른들이 올바른 가치관을 갖고 살아갈 때 아이들도 올바르게 성장한다고 말한다.

‘도시락 먹는 목사님’인 최목사는 지금도 먹는 것에 관심이 많다. 특히 자연을 먹는 것에 관심이 많다. 그만큼 건강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군목시절 폐결핵을 앓았다. 최전방에서 사병들을 위해 밤마다 초소를 돌면서 위로해 주다가 질병을 얻었다.

심각한 수준이었다. 그는 일상적인 군목생활을 잠시 접고 폐결핵 환자들만 치료하는 밀양 군인병원에 후송됐다. 그 당시 누구나 마찬가지로 폐결핵은 사형선고와 같았다. 낙담했다. 주님의 일을 열심히 하다가 얻은 질병이라 그는 더욱 실망했다.

그러나 그런 실망은 오래가지 않았다. 다시 용기를 내어 군인병원에서 환자를 위해 설교를 시작했다. 자신도 환자지만 다른 환자들에게 희망을 전해주고 싶었다. 건강한 사람도, 돈 많은 사람도, 권력 있는 사람도 죽는다면서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설교했다.

낙심하지 말자고, 하나님은 못 고칠 병이 없다고 함께 희망을 나눴다. 그런 그를 하나님은 기쁘게 생각하셨다. 입원 후 3개월 만에 폐결핵은 사라졌다.

그러나 제대 후에도 건강은 그의 최대 고민거리였다. 최목사는 교목으로 활동하면서도 두 번이나 출근하다가 쓰러졌다. 심장과 동맥경화로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오곤 했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질 때마다 “하나님 이번만 지켜주시면 더욱 열심히 말씀을 전하겠습니다”라고 기도드렸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셨다.

그로 하여금 어린 학생들에게 기독교 세계관을 심어 주는데 지혜를 주셨다. 그가 72년 육군 군목으로 제대한 후 이화여자고등학교, 문일고등학교, 현대고등학교, 배화여자고등학교에서 제자들과 동고동락하면서 정을 지키도록 허락해 주었다.

수천 명의 학생들이 그를 통해 예수님을 영접했고 최목사의 헌신에 감동을 받았다. 지금도 이런 최목사의 영향으로 배화여고의 경우 매년 1백50명의 신입생들이 세례를 받고 있다. 이 학교는 기독교인이 60%를 훌쩍 넘기고 있다.

순교자기념관과 용인한화리조트가 인접한 곳에 위치한 팔복교회. ‘하나님 자연 이웃 십자가’라는 표어처럼 하나님이 주신 자연을 벗 삼아 이웃과 함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고 있다. 팔복교회는 지난주 43명이 출석할 정도로 소박하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잡도록 허락해주신 물고기의 개수 만큼인 153석으로 이루진 교회. 그 좌석이 다 차면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겠다고 최목사는 말한다. 교인들과 함께 마태복음 5장에 나온 팔복을 나누고 싶은 게 그의 바람이다. 그러나 최목사가 말하는 팔복은 물질적인 복이 아니다.

“영어 성경을 보면 팔복이란 뜻은 ‘아름다운 자세’ 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바른 자세를 가질 때 복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모두가 사치, 향락, 부귀영화를 향해 있습니다. 이는 올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주기보다는 신앙의 유산을 상속해야 한다고 말하는 최목사. 그림그리기를 좋아해 주민들을 위해 그림교실을 열겠다고 말하는 그는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3:17,18)고 말한다.

아직도 바칠 것이 많다고 말하는 최목사는 각막을 실로암안과에 사후 기증했고, 세브란스병원에 자신의 육체도 기증하기로 했다. 자신의 몸으로 8명을 살릴 수 있다며 행복해 하는 최목사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는지 묻고 순종하는 삶을 살고 싶을 뿐이라고 말한다.

송영락기자(ysong@ucn.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