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수의 문화칼럼] 신학 문화 이론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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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수의 문화칼럼] 신학 문화 이론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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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3.15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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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수의 신학문화 (6)

근대 사고의 틀이었던 메타내러티브를 부정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은 지성 중심의 사고에서 감성을 중시하는 사고를 주장하면서도 또한 사고의 전환을 전제한다. 상대적이고, 혼합적이며, 대중적인 문화의 탄생은 메타내러티브를 거부하는 것과 감성적인 사고 그리고 보편보다 개별적인 것을 선호하는 사고의 변화로부터 설명될 수 있다. 종교다원적인 경향과 더불어 현대 기독교에 강하게 도전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은 또 다른 신학함의 필요성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그리스도인에 의해 분명한 목적의식을 갖고 생산되는 것이라고 해서 모두를 기독교 문화로 볼 수 없는 것은 신학적인 이유 때문이다. 생산 과정에서 의도와 결과 사이에 오류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이것을 분별하는 포인트는 논리적인 정합성 이외에 공동체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의 여부인데, 이것을 판단하는 것은 신학의 과제이다. 반대로 규범적이고 연역적인 사고를 통한 신학함은 유연성을 발휘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기독교 문화의 외연을 넓히는 과정에 불필요하게 간섭하여 생산은 물론이고 원활한 유통과 건전한 소비를 방해한다. 

70~80년대 중반까지 대중문화에 대한 교회와 신학의 경직된 태도에 대한 비판적인 노력이 얼마나 자주 좌절되었는지를 보라. 기독교 문화의 변화는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에 굴복하면서 이뤄졌다. 다시 말해서 청년 그리스도인이 교회를 떠나거나 혹은 교회 안에서 청년들이 즐기는 문화의 외연이 확장되면서 일어났다. 교회가 문화를 선도하지 못하고 오히려 문화의 영향을 받아 교회와 신학이 스스로를 수정한 전형적인 예이다. 그 이유는 당대의 가치관을 넘지 못하는 신학과 문화의 경직성에 있다. 

기독교 문화는 신학적으로 규정된다. 그러나 리처드 니버가 제시한 다섯 가지 유형론에서 확인해볼 수 있듯이, 문화와 기독교 문화 혹은 문화와 신학은 한마디로 단언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복잡한 역학 관계를 갖는다. 기독교 문화는 비록 모양은 같더라도 내용과 내포된 의미에 있어서는 신학에 따라 달라진다. 이에 비해 신학은 기독교 문화 안에서 형성되고 소통된다. 신학이 당대의 기독교 문화 혹은 교회 문화를 넘어서기 어려운 것은 가치관과 신념 등의 내적 문화 형태로 교인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신학과 기독교 문화의 관계에 대한 물음이 생겨난다. 신학과 기독교 문화를 메타 차원에서 고찰함으로써 신학의 오류와 편협성 그리고 무절제를 비판적으로 조명하고, 또 기독교 문화의 세속성과 그 신학적인 배경을 비판할 수 있는 관점, 곧 무엇보다 기독교 문화와 신학의 상관관계를 밝혀줄 뿐만 아니라 양자의 정당성을 평가할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광의의 기독교 문화에 포함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독교 문화와 신학 모두를 조명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이것이 신학문화이다. 신학문화는 신학함의 과정을 기술하며 또 분석하고, 신학에 미치는 문화의 영향력을 비판적으로 조명한다. 따라서 양자 모두를 조명할 수 있는 장치로 매우 유용한 관점이자 개념적인 도구다. 이것을 잘 활용한다면 신학문화는 신학의 발전은 물론 기독교 문화의 미래를 위해 매우 의미 있는 컨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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