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비 소리(Breakthr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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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비 소리(Breakthr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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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2.02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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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상기 목사·예수로교회

꽃이 져야 잎이 보이고 겨울이 되어서야 송백(松柏)이 더디 시드는 것을 안다. 가지 잡고 나무를 오르는 것은 기이한 일이 아니나, 벼랑에 매달려 잡은 손을 놓는 것은 가히 장부의 일이 리라. 거센 바람이 불 때 억센 풀을 알게 되고(疾風勁草) 모반(謀反)의 분탕질 속에서 참된 신하를 얻는다. 진정한 영웅은 남은 자의 가슴에 남고, 난초는 깊은 산 속에서도 그 향기를 잃지 않는다. 눈 덮인 들길 걸어갈 제, 행여 그 걸음 아무렇게나 하지 말세라. 오늘 남긴 내 발자국이 마침내 뒷사람의 길이 되리니(白凡逸志).그런 마음으로 이 질곡의 능선을 넘어가자. 비를 맞고 있는 사람을 돕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란다.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이 중년의 어리석음을 일깨우는 아픔과 성찰도 형통의 과정이기 때문이다.(렘17:9~11) 히말라야는 나이를 묻지 않는다. 겸손의 오체투지(五體投地)는 나와 산을 하나로 만든다. 담쟁이는 높이를 묻지 않는다. 절망이라는 장벽을 만나면 담쟁이는 담을 넘어간다. 연어는 갈 길을 묻지 않는다. 모천(母川)의 내음을 따라 귀로(歸路)를 스스로 탐지한다. 해녀는 물질을 묻지 않는다. 바다가 생명의 터전이고 밭이기 때문이다(고전3:9). 39년만의 경이적인 한파 속에서도 파도에 밀려오는 해녀들의 숨비소리가 분주한 세밑 발길들을 멈추게 한다. 삶과 죽음의 바다를 자맥질하는 들숨과 날숨들이 비움과 채움의 테왁을 띄우고, 해산물을 하나라도 더 찍어 올리려는 심연의 몸부림이 생명의 간극이 되고 생존의 절규가 된다.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쓴다는 해녀들의 속담이 숨비소리와 함께 시린 가슴을 더욱 저리게 한다. 세밑에 토해내는 민초들의 숨비소리가 바다보다 깊어지고 파도보다 거칠어진다. 설빔 장바구니는 갈수록 궁색해지는데, 민생은 아랑곳없이 이전투구의 정쟁(政爭)은 도를 넘고, 이어지는 패륜적 범죄가 우리의 눈과 귀를 마비시키는가하면, 나라 안팎에서 들려오는 불투명한 경제 전망은 세밑 민심을 얼어붙게 하고, 주변국들의 실리외교는 북핵 문제의 해결을 더욱 암울케 한다. 때마침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옥스팜이 공개한 세계 통계에 의하면 2015년 현재 62명의 부자들이 가진 부(富)는 인류의 절반인 하위 36억 명의 것과 같다고 한다. 전 세계 상위 1%의 부자가 보유한 부가 나머지 99%의 부와 맞먹는다는 얘기다. 지구상에 인류가 등장한 이래 과연 지금보다 더 불평등한 빈부의 극대 시대가 있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특히 한국사회가 최고수준의 갈등국가라는 점이 이토록 극심한 불평등과 직결되어 있고, 그것을 해결할 합당한 국가관리나 정치경제 제도가 미비한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어디에서나 불평등이 모든 파쟁의 원인임을 통의(通義)하고, 배분적 비례적 정의에 기초한 중산층의 통합정치로 매몰된 빈부의 극대기축을 해체하지 못하면 경제기조의 붕괴와 사회기조의 공멸을 자초하게 될 것이다.(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지금 세상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길을 묻고 있다. 교회의 비겁한 침묵을 조소하는 세상의 힐문(詰問)에 기도의 숨비소리를 토해내자. 세상에서 비틀거리는 양떼들의 비명과 숨비소리에 귀를 기우리고 눈물을 쏟자.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온 밤을 지새우며 병상을 파수하는 야전병원의 ICU(intensive care unit)의 캡틴(captain)처럼 강단의 무릎으로 생명의 숨비소리를 회복하자(사62:6). 생명신학은 말과 생각과 이론의 사변이 아니다. 성화된 삶과 인격으로 자아내는 십자가의 복음이다. 내가 죽지 않고 어찌 부활이 있음이며 내가 거듭나지 아니하고 어찌 천국이 있음일까(요3:5). 은혜의 터가 무너진 곳에 어찌 교회의 터가 굳어지며, 기도의 숨비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에 어찌 강단의 능력이 회복되리요. 기도의 숨비소리는 옥문을 열고 하늘 문을 연다. 본지 창간 28주년의 설립 이념을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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