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효성의 문화칼럼] 유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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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효성의 문화칼럼] 유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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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9.08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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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효성의 성지를 찾아서 (36)
▲ ⓒ도시의 유목민 퍼포먼스, 스위스, 2011, 방효성

어느 대기업이 서울 경복궁 근처에 멋진 한옥형 호텔을 지으려고 오랜 시간 준비해왔다. 그런데 인근에 학교가 있기 때문에 허가되지 않았다. 학교 환경위생 정화구역에 해당되어 허가되지 않은 것이다. ‘학교 환경위생 정화구역’이란 교육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시설은 학교로부터 일정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법이다. 얼핏 듣기에는 마땅한 법인 것 같지만 한편으로 그 배경에 숙박을 저속한 것으로 규정지은 편견에서 나온 발상이 아닌가 싶다.

호텔의 기능은 이제 관광문화의 척도가 되어있고 유수의 호텔은 유명 정치인들이 거쳐간 기록까지 자랑으로 내세우고 있다. 호텔의 기능도 단순한 숙박시설이 아닌 각종 국제 회의가 열리고 모임과 행사로 연일 발길이 끊이지 않는 복합적 공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문득 문정희 시인의 ‘러브호텔’의 시가 생각났다.

‘오늘 강연에서 한 유명 교수가 말했다. 이 나라에서 가장 많은 것이 세 가지 있는데 러브호텔과 교회와 시인이라고. 나는 온몸이 후들거렸다. 러브호텔과 교회와 시인이 가장 많은 곳은 바로 내 몸 안 이었으니까 (중략)’.

모든 숙박업소를 러브호텔과 동일시 할 때 속된 것으로 낙인 찍힌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속된 것과 거룩한 것이 동시에 등장한다. 그들은 교회가 사회를 밝게 정화시킨다는 것에 또한 동의하지 않는다. 교회는 어두운 세상에 등대처럼 길 잃은 인생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빛의 기능을 감당해야 한다. 하지만 교회의 수가 더해가지만 세상은 왜 밝아지지 않을까? 교회가 반성해야 할 문제이다.

창세기에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길의 세월이 백삼십년 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고 말하고 있다. 인생을 괴로운 나그네 길로 말하고 있다.

이 땅에는 영원히 거할 집이 없다. 우리는 모두 유목민과 같이 잠시 머물다 가는 장막집에 머물고 있다. 육신의 장막은 7성급 호텔이나 텐트나 다같이 아침 이슬과 같이 사라질 집인 것이다. 우리는 둘중 하나를 택하여야 한다. 속된 장막에 거할것인가 성전같은 장막에 거할 것인가?

현재 당신은 어떤 집에 살고 있습니까?

‘만일 이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줄 아느니라“ 고리도후서 5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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