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태화의 문화칼럼] 메르스와 신앙적 합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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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태화의 문화칼럼] 메르스와 신앙적 합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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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6.23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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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태화의 종횡무진 문화읽기 (28)

10여 년 전에 사스(SARS)가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더니, 이번엔 중동 발 메르스(MERS)로 인해 온 나라가 난리다. 오히려 중동 지역에서는 잠잠한데 머나먼 동북아 한국에서 더 요란스럽다. 바이러스는 진화하고, 생태계 환경 변화로 인하여 변종 바이러스가 언제 어떻게 인간의 삶 속에 틈입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시대이다. 치사율이 30~40%에 이른다는 메르스로 인해 온 국민이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으며 불안에 떨고 있는 모습은 종말론적 현상에 돌입한 듯 보인다.

S.베케트는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기나긴 종말론적 기다림 속에 권태와 무기력에 빠진 서구 현대인들을 풍자적으로 그렸다. 그들은 생활의 근거를 잃고 중력을 상실한 채 뜬구름처럼 실존을 떠돈다. 불안감은 크게 드러나지 않지만 회의와 의혹은 점점 커진다.

그러나 메르스는 힘이 있다. 예방 대처법은 전해지는데, 치료와 전파 경로는 의혹 속에 있고 국민들의 불안감을 비례하여 점증되고 있다. 감염을 피해 청정지역으로 심지어 해외로 피해가는 이들도 있다 한다.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불안으로 인한 일종의 엑소더스가 아닐 수 없다. 여기다가 메르스 괴담이 여기저기 파급되어 불안감을 조장하는 사례도 있으니 과연 종말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할지 생활 수칙 외에 정신 수칙도 필요하다 하겠다.

중세 시대에 페스트가 창궐하여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은 사례는 무지에서 출발한 면이 있다. 주님 은총으로 살 수 있다는 신앙심 때문에 많은 교인들이 성당에 모였는데, 이는 순진무구한 생각이었다. 페스트는 감염원을 피해서 격리되어야 하는데 사람이 몰리니 감염은 역설적이게도 성당의 도피굴에서 더 확산된 것이다. 바이러스라는 물리적 질병을 영적 차원에서 치유해 보자는 신앙심은 잘못된 설정에 기인했다. 기적은 분명 존재하지만 아무 때고 사람이 믿는 방법으로 일어나지는 않는다. 은총은 분명 존재하지만 자연 질서를 마구 무시하지는 않는다.

이성을 주신 하나님께서 종말의 시대에 이성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주셨다고 본다. 메르스를 직시해야 한다. 질병을 사탄의 시험이라거나 죄악에 대한 심판의 결과라고 이해하려는 태도는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비신앙적일 수도 있다. 까뮈의 ‘페스트’는 시민을 불안에 떨게 하는 종말론적 현상 앞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인간적인 삶인지 고민한다. 근거없는 불안과 공포에 떨지 말고, 페스트를 직시하며 저항하라고 말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주의 말씀대로 종말 현상을 이겨야 한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히 10:24).

확진자와 비확진자 모두 바이러스 퇴치를 위한 용기를 가지고 격려하는 가운데 대처해야 한다. 감염자들이 병을 이겨내게 격려하며, 생명을 담보로 치료하는 의료진에게 용기를 보내고, 전문가의 현명한 판단과 정책에 따라야 할 것이다. 질병 앞에서 근거없는 신앙이론을 내세우기 보다 합리적 대안을 찾는 것이 신앙의 정도라 본다. 질병을 위한 정상적 매뉴얼, 신앙적 합리주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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