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적 가정 - 경건한 자녀 양육의 장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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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적 가정 - 경건한 자녀 양육의 장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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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6.02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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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태 선교사/인터서브 코리아


경건성과 대학 사이에서
청소년기의 자녀들에게 가장 중요한 미션은 건강한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이다. 또한 그 과정에서 부모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많은 가정에서 자녀들이 부모들의 부정적인 영향 때문에 건강한 정체성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부모의 불화, 부모들의 자녀에 대한 지나친 욕심, 심지어는 이혼 까지…
자녀들의 긴 인생을 생각해 볼 때 부모로서 해야 할 한 가지를 꼽으라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에서는 마땅히 자녀들의 경건성, 평생 동안 하나님을 섬기고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 바램이 부모의 이중성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믿는 집안의 자녀들로서는 이중고를 겪기 쉽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경건한 생활을 요구하면서도 현실에서는 일반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을 절대적인 가치로 요구하기 때문이다. 대학이 바로 그것이다. 믿는 집안의 아이들은 부모들이 경건성을 요구하면서도 동시에 지극히 세속적인 대학을 절대화하는 것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

소원 성취한 아버지의 갈등
나면서 맹인이었던 부모들도 수십년 동안 아들에게 소원이 있었다면 단 하나였을 것이다. 내 아들이 눈을 뜰 수만 있다면… 그 아들에게 대학이 절대적인 소망이었을까? 그런데 그 소원이 어느 날, 너무도 우연한 기회에 이루어진 것이다. 예수라는 랍비가 와서 아들의 눈을 뜨게 해 준 것이다. 수십년 동안의 부모의 한을 풀고 소원이 성취된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 부모들은 기쁨도 잠시, 부모는 아들과 함께 바리새인들의 종교 법정에 서야 했다. 그리고 심문을 당했다. 그 아들은 종교 법정에서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선지자로 증거했다.
그런데 그 부모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를 회피했다. “그러나 지금 어떻게 해서 보는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그에게 물어 보소서 그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요 9:21). 얼마나 무책임한 일인가? 평생에 소원이 이루어졌는데 자신들이 출교를 당할까봐 두려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시인하지 못하고 있는 부모들의 모습을 보라! 이 모습이 바로 오늘날의 믿는 자녀를 둔 가정들의 아이러니가 아닐는지…

이중적인 아버지의 모습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을 걱정한다. 현실적으로 그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사실 따지고 고면 걱정해야 할 대상은 정작 부모들 자신이다. 소경으로 태어나 오랫동안 걸인으로 살았던 아들은 부모가 보기에 그 자체가 걱정 덩어리였다. 그 자녀를 이미 20여 년 가까이 데리고 살았으니 그 간의 고충이 얼마나 컸겠는가? 그러나 문제는 정작 아들이 눈을 뜨게 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을 때였다. 이 일로 인해서 그 부모의 속 마음에 가장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가 드러나게 되었다.
만약 진정으로 그 아버지가 바랬던 것이 아들이 눈을 뜨는 것이었다면 출교를 당하더라도 아들의 회복을 기꺼이 법정에서 증거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아버지는 아들의 회복도 원했고 자신의 가정이 유대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기를 원했다. 참으로 이중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들에게 수십년 동안 바래왔던 소원 성취가 자신의 사회적 안전에 위기를 초래한 것이다. 진정으로 아버지는 아들이 진리의 눈을 뜨기만을 바랬던 것일까?

먼저 부모가 영적인 눈을 떠야 한다. 
소경 아들의 부모는 아들을 걱정했지만 정작 걱정했어야 했던 사람은 부모 자신이었다. 그 부모는 하나님께서 그 소경 아들을 통해 하실 ‘하나님의 일’(요 9:3)을 믿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 부모가 믿고 소망해야 했던 일은 그 아들이 눈을 뜨는 것 자체 보다도, 그 아들을 통해 하나님이 크신 일을 행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 것이었다. 만약 그랬다면 아들이 예수님에 의해 눈을 뜨게 되었을 때 아들과 함께 주님을 증거하는 일에 귀하게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는 정작 자신이 소원했던 것을 아들을 통해 이루었지만 더 중요한 메시야에 대한 믿음은 저버렸다.
이 시대의 부모들도 주님께서 바리새인들을 향한 단죄를 기억해야 한다.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요 9:41). 자녀들만 사춘기를 겪고 있는 것이 아니다. 부모들도 동일하게 영적인 사춘기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부모들은 분명히 선택해야 한다. 자녀들에게 진정으로 원하고 기도하고 있는 것이 자녀들이 진정으로 주님을 알고 주님과 동행하는 것인지를… 그것이 진정으로 자신의 마음의 핵심인지를… 자녀들의 영적 눈이 뜨여지기 전에 부모들의 영적 눈이 먼저 뜨여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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