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외로움 달래는 '동네 복덕방'
상태바
한국인 외로움 달래는 '동네 복덕방'
  • 승인 2003.05.1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릿고개’로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살아갔던 시절. 낮선 땅의 광부로 혹은 간호사로 떠나야 했던 한인 디아스포라. 독일의 우중충한 하늘 아래 어두운 색 옷을 입고 무거운 걸음으로 거리를 오갔을 한인 디아스포라들은 지하 1천 미터에서 폐가 시커멓게 되도록 날마다 탄가루를 마셔댔다. 그리고 30년이 흘러갔다.

1991년 기독교대한감리회 서울연회에서 독일 선교사로 파송된 이후 베를린에서 12년간 이들의 영혼을 돌보며 생활하고 있는 이병희목사(백림감리교회). ‘수구초심’에 병들어 가고 있는 ‘독일 속의 한국인’을 보살피는 목회자로 유명하다.

이병희목사가 이민교회를 개척하면서 겪었던 한인들의 가슴 아픈 사연의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젊은 시절을 광부로 간호사로 이곳에 왔지만 지금 그들에게 남아있는 것은 늙고 초라해진 몸밖에 없어요.” 마치 3D 업종에서 중노동에 시달리며 조국의 가족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희생되고 있는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처럼.

현재 독일에 사는 교민들은 삼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미국이나 북미주와 같은 투자이민의 형태가 아니라 1963년부터 파독 광산 근로자로 취업 나오기 시작하여 정착한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독일 속 한인들’은 미국에 정착하여 윤택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한인들과는 대조적이다. 젊었을 때 열심히 벌어서 한국의 가족들을 위해 보냈기 때문에 나이가 60이 넘었어도 야간근무, 새벽근무를 나가고 있다.

“손자들의 재롱이나 보면서 편히 쉬어야할 나이인데도 그 달 벌어 그 달 집세를 내며 생활한다.”고 이목사는 안타까운 사정을 들려줬다.

그래서 이민사회에서 교회는 누구든지 찾아와 고민을 털어 놓고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는 동네 복덕방이다. 자식들과의 갈등, 교민사회의 갈등을 신앙적으로 해소해 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곳이 교회 뿐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상한 사람, 아픈 사람, 직업이 없는 사람, 온갖 문제를 가지고 와서 위로를 받을 수 있도록 이목사는 그들의 삶의 중심에서 헌신하고 있었다.

“정이 많아 좋을 때는 가족보다도 더 잘하다가 조금 섭섭한 일이 생기면 그때부터는 다시는 안볼 사람인 것처럼 나쁜 사이로 변하게 된다.” 이것이 이민목회를 힘들게 하는 이유라고 이목사는 설명했다. 이런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은 ‘희생’뿐이고, 예수님의 사랑만이 이들의 깊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고.

지금 백림감리교회는 독일교회에 세 들어 예배를 드리고 있다. 1백여 명의 성도들이 매일 새벽기도, 수요예배, 금요 철야예배, 주일예배 등 독일교회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뜨겁게 예수님을 믿고 있다. 이 교회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성가대이다. 젊은 한인 2세들로 구성된 성가대는 ‘북한 기아돕기 성가의 밤’을 개최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젊은이들이 줄고 있는 독일교회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열정이다.

요즘 이목사는 기도제목이 하나 생겼다. 세 들어 사용하던 독일교회가 최근 교인의 감소로 문을 닫게 돼, 이목사의 교회도 문을 닫아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목사는 이 교회를 구입하기로 결심했다. 교인들의 힘을 모아보고 부족한 돈은 한국의 소속교단에 힘을 빌려보기로 했다. 이를 위해 이목사는 새벽기도를 쉬지 않고 있다.

이목사는 요즘 한국교회가 유럽의 교회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며 걱정하고 있다. “젊은 2세에게 훌륭한 조상들의 믿음을 전해주지 못해 유럽교회들이 쇠퇴하고 있다”면서 젊은이들이 사라지고 있는 한국교회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충고했다. 진솔한 기독교문화가 한국교회에 깊숙이 뿌리내려 변함없는 부흥을 기대한다고 이목사는 조언했다.

송영락기자(ysong@ucn.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