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태화의 문화칼럼] 수평시대, 문화목회는 계속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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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태화의 문화칼럼] 수평시대, 문화목회는 계속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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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12.24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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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태화의 종횡무진 문화읽기 (23)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시대는 이름하여 수평시대이다. 과거 사회에 존재했던 계급이 사라지고 모든 사람이 스마트폰 앞에 평등한 사이버인권 시대이다. 예전에는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주장했지만 이제는 스마트폰, 사이버인권 앞에 평등하다고 외칠 상황이다. 우리 시대의 평등은 역설적인 논리지만 기계로부터 왔다. 과학은 그만큼 힘있다고 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그 과학의 능력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지혜로부터 왔으니 창조주 하나님의 뜻에 맞게 잘 다스리고 사용해야 한다. 창세기 1장 27, 28절의 문화위임명령은 어느 시대를 상관하지 않고 유효한 주님의 가르치심이다.

문제는 이런 수평시대에 교회는 어떠한가. 교회 내에 아직도 구세대적 관습이 남아있지는 않은가. 그것은 교회 안의 수직구조이다. 이 수직구조가 교회를 시대에 뒤떨어지는 의상처럼 보이게 하기도 하고, 교회 밖의 모습보다 더 ‘찌질’해 웃음거리가 된다면 어찌할 것인가. 세상을 변화하고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높이면서도 세상보다도 더 구태의연하다면 어찌할 것인가. 그래서 수평시대에 ‘세상이 교회를 염려하는 상황’이 연출된 것인가. 주님은 자신의 백성들에게 “생육, 번성, 충만, 정복, 다스림”을 말씀하셨는데 교인들은 자기들만의 섬에 갇혀 사는 것은 아닌지. 교회가 현대에 존재하면서도 중세식 수도원처럼 먼 산 속에 스스로 격리시키고 있지는 않는지 되돌아 봐야 할 시각이다.

교회가 세상을 안내하기 위해서는 교회 안의 구조가 먼저 수평을 이뤄야 한다. 예수님 앞에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그런데 아직도 직분이 수직이다. 목사 밑에 장로, 장로 밑에 집사, 집사 밑에 평신도가 존재하는 듯 행동한다. 주께서는 베드로 사도를 통해 만인제사장을 가르쳤는데 교회 안 사람들은 지금도 수직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세상에서 조차 “사람 위에 사람없고, 사람 밑에 사람없다”고 말하는데…. 또한 사역에 대한 인식이 수직이다. 설교 밑에 교육, 교육 밑에 전도, 전도 밑에 봉사가 존재하듯 활동한다. 성전청소가 설교보다 비천하다는 생각은 참으로 역전된 선비사상이다. 말씀을 가르치는 자는 더 겸손해야 한다. 그럼에도 교회 안에서 상전을 차지하고 있는 현상은 어서 척결해야한다. 그렇다면 더 많이 배우신 바울이 베드로보다 높은 자리에 앉아야 한단 논리인가. 주님 앞에서는 어림도 없는 논리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는 기존 신자나 초신자나 평등하다. 초신자가 주눅들게 영성으로 기세잡으려는 촌극은 사라져야 한다. 문화목회는 수평시대에 요구되는 변신이다. 교회의 변신은 무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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